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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존재로 태어나 보통의 존재로 살아간다.

특별한 탄생에서 보통의 어른으로.

by 키수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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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특별한’ 존재로 태어난다. 단 하나의 기회를 얻기 위해 질주했던 3억 대 1의 경쟁률을 이겨내고 세상의 빛을 본 존재이니 분명, 특별한이다. 게다가 태어난 순간부터 부모님뿐만 아니라 조부모, 삼촌, 고모들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되니 우리 생의 출발은 특별했다고 말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잔인하게도 특별한 존재로 태어난 우리를 다시 한데 모아서 특별한 중에 특별한을 선발하는 절차를 진행한다. 경쟁을 붙이고 평가를 하고 시험에 들게 하면서 특별한 중 특별한을 가려낸다. 나이를 먹으며, 삶의 무대를 거치며, 또래들과 관계를 형성하며 우리는 세상의 평가 앞에 서게 된다. 평가는 길고 꾸준하게 진행되는데, 삶에서 마주하는 경쟁, 도전, 시련 등이 모두 이에 해당될 것이다.


특별한으로 태어난 모든 존재는 세상의 모진 잣대에서도 끝까지 특별한이고 싶지만, 승자의 수는 정해져 있고 승자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은 좁디좁다. 달력을 넘기며 하나의 삶의 과정을 거치고, 숨이 막히는 경쟁에 치이면서 우리는 ‘특별한’으로 남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몸소 체감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도전의 끈을 놓지 않고 다시 한번 삶에 의욕을 불태우며, ‘그래도 나는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을 이어간다. 나는 아직 젊으니깐.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벽 앞에서 좌절한다. 이 벽 뒤에 존재하는 세상으로 너무나도 가고 싶지만, 숨이 차고 다리가 저린다. 이 벽만 넘어서면 나는 계속 ‘특별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손을 뻗어내고 벽을 오르는 일이 힘에 부친다. 아등바등 최선을 다해 매달려 있던 벽에서 그렇게 미끄러지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깨닫기 시작한다. 어쩌면 나는 더 이상 ‘특별한’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내게 허락됐던 ‘특별한’이라는 수식어가 이제는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특별한 존재들이 모인 이 세상에서 나는 어쩌면 ‘보통의’, ‘평범함’ 존재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나는 어른이 돼도 여전히 ‘특별한’일 줄 알았다. 어린 시절 나를 특별한 존재로 인식했듯이, 어른이 된 나도 역시나 ‘특별한’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나보다 앞서 세상을 살아간 다른 존재를 무시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하면 훨씬 나을 것이라고. 나는 저렇게 살지 않을 것이라고.


젖살이 있던 자리에 거무튀튀한 수렴이 자리 잡고,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하는 일이 많아졌다. 나도 모르게 먹게 된 나이에 걸맞게 행동해야 하고, 살아온 시간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그 변화 속에서 내가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특별한’이라는 수식어는 멀어져 간다. 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의, 평범한’ 존재이다. 여전히 가족들과 친구들 사이에서는 ‘특별한’이지만, 그 특별한 들이 모여 사는 거대한 세상에선 ‘보통의, 평범한’ 존재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특별한 존재가 보통의 존재로 거듭나는 일이 아닐까. 특별한 존재로 인식했던 본인을 평범한 존재로 인식하게 되는 그 과정을 우리는 어른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제는 어쩌면 영영 닿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빛바랜 내 꿈들 앞에서, 내가 견뎌야 할 삶의 무게와 책임 앞에서 나는 나를 ‘보통의, 평범한’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내 삶도 내가 어릴 적 보았던 그 어른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아프게 받아들인다.


나는 그렇게 보통의 어른, 평범한 어른이 되어간다. 특별한 존재로 태어나, 평범한 존재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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