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앞에 주저하는 모든 이들이게.
이터널 선샤인은 지인에게 영화 추천을 부탁할 때면 늘 언급되는 영화 중 하나였다. 누가 봐도 감성이 가득한 친구부터 분위기라고는 거의 없을 것 같았던 근육질의 군대 선임까지, 이터널 선샤인은 늘 꼭 봐야 하는 영화라고 말했다.
근데 사람이란 동물이 꼭 누가 하라고 말하면 안 하게 되는 성질이 있다. 주변에서 꼭 보라는 말을 계속 들으니 공부하려고 책상에 앉았다가도, 엄마가 공부 좀 하라고 말하면 되레 다시 침대에 누웠던 사춘기 시절의 나처럼 몇 번을 보려고 하다가 말았었다.
그리고 오늘 창으로 선샤인이 이터널하게 떨어지는 일요일 오후에, 드디어 이터널 선샤인을 보게 됐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여자친구였던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즐릿)과 헤어진 여파에 크게 괴로워하던 조엘(짐 캐리)은 그녀와 다시 시작하기 위해 그녀를 찾아간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녀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마치 기억에 아예 없는 사람처럼.
그는 그녀가 선택적으로 기억을 지워준다는 라쿠나(Lacuna - 라틴어로 잃어버린 조각이란 뜻)에서 본인의 기억을 지웠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사실에 더욱더 괴로워하던 조엘은 결국 본인도 그녀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라쿠나를 찾는다.
기억은 가장 최근의 기억부터 지워지기 시작한다. 잦아졌던 싸움의 장면들이 먼저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첫 만남으로 가까워질수록 그는 추억의 애틋함과 정겨움을 느끼기 시작하고, 기억이 지워지는 걸 멈추기 위해 그녀를 다른 기억 속에 숨기는 등 애를 쓴다. 하지만 기억은 모두 지워지고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음 날 아침 눈을 뜨게 된다. 마치 그녀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던 사람처럼.
기억은 모두 지워졌다. 그런데 감정은 남아 있다. 정체가 모호한 감정이 계속해서 그를 사로잡는다.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힌 그는 느닷없이 몬토크 해변으로 향한다. 그는 그곳에서 오렌지색 후드티를 입은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클레멘타인. 두 남녀는 다시 서로에게 끌리기 시작한다.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라쿠나의 직원이 회원들의 자료를 각 회원들에게 송부하며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과거의 녹음테이프를 들으며 그들에게 있었던 일을 알게 된다. 헤어지기 직전 서로가 서로를 힐난하는 목소리를 직접 들으며 상처 받는 모습을 감추지 못한다. 지금의 이 떨림이 결국은 서로를 향하는 칼이 되어 상처를 주었고, 그 상처에 견디지 못한 과거의 나는 사랑했던 상대방을 인위적으로 지워냈다는 걸 알게 된 두 사람. 둘은 서로를 마주 본다.
한때 열렬히 사랑했지만 결국은 헤어진 어떤 이의 손을 다시 잡는 일은 망설여진다. 지금은 너무나 다시 안기고 싶은 상대의 품이지만, 과거의 나는 그 품 속에서 수없이 작아지고 부서졌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선뜻 다시 관계를 시작하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은 다시 상대를 원하고 머리는 이 관계를 부정하는 갈등 속에서 애를 먹는다. 좋았던 추억과 아팠던 추억을 애써 구분 지으며 현명하게 판단하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정답을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비단 헤어진 관계만 어려운 것이 아니다. 만남이 기쁨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성인은 새로운 사랑 앞에서 주저하는 경우들이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나를 외롭게 만드는 일일 수도 있음을 경험적으로 아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누군가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고 마음을 여는 일은 쉽지가 않다. 언제 엄습할지 모르는 두려움과 열린 마음에 제약 없이 찾아들지도 모르는 상처를 감내할 용기가 필요하다.
사랑은 셀 수 없이 많은 우연이 겹쳐야만 가능한 것이다. 두 사람이 딛고 서 있는 현실 중 어느 하나라도 어긋난다면, 서로의 생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 채 그저 스쳐 지나가거나 상처만 줄 뿐이다. 그래서 사랑은 불안정하고 불안하며 때로는 아프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얼음판 위에 선 모습과 유사하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누워있던 언 찰스 강처럼.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다시 손을 잡는다. 아팠던 경험을 뒤로하고 다시 한번 속아보기로 한다. 그 지난함을 몰라서가 아니고, 겁나지 않아서가 아니다. 지금 이 사람과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기에 다시 한번 용기를 내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 앞에 서 있는 '한 사람'을 사랑하지 말아야 할 이성적 이유들이 산재한 상황 속에서도 기어코 사랑을 시작한다. 기어코 '한 사람'을 '그 사람'으로 만들어내는 지난한 여정을 시작한다. 현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현실을 알지만 그럼에도 이 사람과 이 순간을 놓칠 수 없어서이다.
우리는 이성과 감성 사이 어딘가에 선 존재들이다.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감성적으로 느끼는 존재로 만들어졌다. 사랑을 관장하는 영역은 감성이다. 우리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몸소 그 예를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이성적 판단이 사랑의 작용을 방해하려 해도, 결국은 감성과 감정이 시키는 대로 향하는 경우가 많다.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다면 말이다.
이성으로 사랑을 인공 잉태하려는 이들이 득실득실한 이 시대에, 이터널 선샤인은 사랑은 우뇌와 감정으로 하는 것임을 다시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