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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보기시스템 Dec 01. 2021

조금 느리지만 잘 나아가고 있어요.

그림책<돌 씹어 먹는 아이>

“뭘 해야할지 모를 때 그냥 서 있다가 혼났습니다.”   

  

오늘도 상담실에 들어오자마자 커피포트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책상 위의 과자를 하나, 둘씩 쉬지않고 먹으며 상담이 시작되기를 기다립니다. 용사는 초콜릿이 덮여진 과자를 좋아합니다.    


다른 용사들에 비해 행동이 느리고, 대화할 때 대답이 느려서 조금 더 기다리는 용사가 있습니다. 상담 초기에는 상담실 문을 노크 없이 벌컥벌컥 열고 들어오거나 상담 후 인사를 하지 않고 가는 행동에 당황스러웠습니다. 몇 회기를 관찰하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했습니다. 그 이후로 노크를 하고 들어와도 되는지 문 앞에서 이야기 하고 들어오고, 상담이 끝나면 인사를 하고 돌아갑니다. 간부님들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도 같은 행동을 하면 곤란할 수 있는데 이제 상병이 되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적응이 어느 정도 된 듯 합니다.    

 

발음이 정확하지 않고, 한 문장을 말할 때 시간이 오래 걸리고, 목소리가 작아 몸을 앞으로 더 숙여 귀를 기울여야 들을 수 있습니다. 상담이 끝나면 에너지가 많이 소진되긴 하지만 용사의 속도로 한걸음씩 나아가는 모습이 기특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혼자 다닐 때가 더 많지만 때론 다른 용사들과 PX에서 나오는 모습을 볼 때 제 기분이 좋아집니다.  

      

“생활관이나 업무를 할 때 조금 편해진 용사가 있을까요?”

혼자 다니는 모습을 자주 봐서 다른 용사들과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선임 이름을 이야기 하며 물어보면 잘 대답해주고, 조금은 편하다고 합니다.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용사가 자주 하는 말은 자신의 성격이 고민이고, 다른 용사들과 잘 지내고 싶은데 어렵다고 합니다. 혼자 있는건 싫고, 다른 사람들에게 크게 관심이 없만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하고 싶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관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요?”

“음.. 전에 상담관님이 말씀하신 대로... 서-선임이 PX 갈 때 같이 가자고 말을 하고, (침묵) 사람들과 모여있을 때... 가끔 이해가 안될 때가 있어도 웃으면 따라 웃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고 나면 00씨 마음이 어떠세요?”

“그래도 조금은 가까워진거 같습니다. 하지만 잘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다른 용사들과 다른점이 있는건지, 자신만 잘 지내고 있지 않다고, 더 나아지는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용사는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조금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송미경 글, 세르주 블로크 그림의 그림책<돌 씹어 먹는 아이>에서 돌을 먹을 때 기분이 좋고, 다양한 돌을 마주하며 좋아합니다. 하지만 가까운 가족에게도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가족들이 알게 되면 실망할까봐 여행을 떠나기로 합니다. 우연히 가게 된 돌산에서 자신과 비슷한 상황의 아이들을 만나 편한 마음으로 돌을 씹어 먹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계속 이렇게 돌을 먹어도 되는지 고민하는 아이에게 수염이 하얀 할아버지는 ‘지금의 모습도 괜찮다라’는 의미로 따뜻한 말을 해주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집으로 돌아가서 “나는 돌 씹어 먹는 아이예요.”라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니 흙 퍼 먹는 아빠, 녹슨 못과 볼트를 먹는 엄마, 지우개 먹는 누나라고 그동안 숨겨왔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족이 한바탕 울고나니 가족간의 거리가 더 가까워지고, 점점 더 마음이 편해진 것을 느꼈습니다.



돌을 씹어 먹는다고 해서, 흙을 퍼 먹는다고 해서, 녹슨 못과 볼트를 먹는다고 해서, 지우개를 먹는다고 해서 자신의 고유한 모습과 가족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또한, 내 모습이 이상하다고 해서 누군가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이 용사는 눈치가 없고, 행동이 느려서 주변 동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완전하지 않은 존재로 누구에게나 부족한 기능은 있습니다. 그렇다고 주변에서 질책을 하거나 행동을 수정하도록 강요할 수 없습니다. 간혹 후임이 들어오면 선임이 적응의 시간이 필요한데 기다려주지 못하고 자신의 기준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타인을 보며 그런 마음이 생길 때 자신의 모습도 살펴봐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그 용사를 기다렸을 때 천천히 자기만의 속도로 따라오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제 곧 전역을 앞두고 있습니다. 1년 6개월 동안 고군분투하며 자기만의 속도대로 노력하며 스스로를 잘 지켜왔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저 또한 이 용사를 1년의 시간동안 만나며 더 폭넓게 사람을 이해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상담관으로서 나중에 기억하지 못할 수 있겠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었던 한 사람이 있었다고 생각해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림책으로쓰담쓰담 - 셀프테라피]

Q. 나는 어떤 특별한 사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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