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전직장 동료에게 초대받아 심리정서, 복지 영역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교육복지센터에 다녀왔다. 양육자들과 그림책에 기대어 삶의 이야기를 꺼내어보는 시간을 이끌고 왔다. 동료는 재단의 여러 기관을 거쳐 센터장의 자리까지 올라가서 몇 년 전의 그 모습 그대로, 아니 좀 더 안정된 모습으로 나를 맞이해주었다. 나도 좀 더 버텼다면 비슷한 위치에 있을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힘들다고 도망쳐 나온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립지는 않다.
아이들과 분리되 오롯이 ‘엄마’, ‘양육자’라는 이름으로 서 있는 그녀들은 다행히 애써 괜찮은 척하지 않았다. 신유미 글, 그림의 그림책 <산의 노래>를 함께 읽고 ‘현재 어느 계절을 살고 있는지?’라는 질문에 누군가는 ‘여름을 살고 있는데, 배를 타고 망망대해에 떠 있고 나아가고 있지만,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이에요.’라고 씁쓸한 미소와 함께 이야기했다. 누가 그의 아픔을 다 알 수 있을까. 그저 잘하고 있다고, 지금으로 충분하다고 마음을 보내주었다. 우리는 울고, 웃고, 박수 쳐주고, 손잡아 주고, 안아주었다.
동료도 센터장의 이름을 떼고 참여자로서 프로그램에 같이 참여하였다. 프로그램이 시작되자마자 자기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싶은 자신을 철장 안에 스스로 가둔 그녀의 마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돌덩이를 이고 지고 다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늘 밝은 미소로 타인에게 관대한 그녀는 스스로에게는 가혹하다. 복잡한 감정들이 턱까지 꽉 차올라 있는 모습이 느껴졌다. 편도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아이 둘을 키우며 출퇴근하고, 칼퇴근은 분명 못할 것이고, 재단의 업무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또한, 사람을 상대하는 업무이고, 팀원들의 감정을 하나하나 살펴야 하니 집에 가면 온몸이 으스러질 것이다. 퇴근하면 또다시 집으로 출근. 꼭 나를 보는 듯했다. 꾸역꾸역 감정을 삼키고, 말을 삼키며 살아내겠지.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됐다. 잠시라도 그 감정 덩어리들을 한 덩어리, 한 덩어리, 한 덩어리 꺼내놓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작년 겨울, 책이 두 권 출간되었을 때 그녀는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고 환호해 주었다. 그리고 200명이 넘는 단톡방에 홍보해주었다. 그 감사함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언젠가 빚을 꼭 갚으리라 생각했다. 프로그램 강사로 요청이 들어왔을 때 강사비를 말하기도 전에 흔쾌히 간다고 했던 적은 흔하지 않다. 그녀였기에 달려간다고 했다. 다행히도 병원 정기검진과 같은 날이어서 시간이 되었다. 그녀는 오히려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프로그램 후 집에 가는 길 참여하셨던 어머니들이 너무 좋다고 하시며 돌아가시는 모습 보며 울컥했고, 함께 했던 직원 선생님도 먹먹하고, 힘이 되었다고, 나에게 대단한 힘을 가졌다고 했다. 오히려 좋은 에너지를 가득 받아왔다.
그녀가 여러 기관에서 원하지 않는 업무를 하며 잘 버티고, 지금까지 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녀는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이 쉽지 않다. 그녀가 하고 싶은 일 즐겁게 오랫동안 하기를 바란다.
하루하루 애쓰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해주고 싶다.
“살살하자. 좋아하는 일 오래 하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