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주고받는 사이
“친구가 두 번 사줬으면 네가 한 번이라도 꼭 사는 거야.”
엄만 어릴 적부터 관계를 유연하게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지금 아이를 함께 양육하고 계시는데 딸아이에게도 알려주고 계시고, 가끔 친구가 방과 후에 간식을 사줘서 먹고 왔다는 이야기를 들으시면 용돈을 주시며 다시 한번 강조하셨다.
엄마는 지금 동네에서 딸아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핵인싸이다. 동네를 다니다 보면 대부분 아는 분들로 엄마와 인사를 하신다. 심지어 엄마는 기억나지 않지만, 상대 쪽에서 먼저 인사를 하시는 경우도 많다. 덕분에 우리 가족들도 많이 알려져 있다. 요즘은 아이와 자주 다니시다 보니 아이 주머니에 용돈이 들어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20대에서 30대가 될 때, 30대에서 40대가 될 때 크게 앓았던 적이 없다. 누군가는 서른이 두려워서 서른 앓이, 마흔이 두려워서 마흔 앓이를 한다고 하는데 29살 때 무언가 쫓기는 마음에 황망해서 김해남 작가의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라는 책을 한 권 읽었다. 나에게 서른은 키워드가 ‘안정’이었는데 마주하고 보니 ‘뭐야! 서른에 절대 안정될 수 없는 구조인데!’라는 것을 확신했다. 경제적인 부분, 나의 삶은 여전히 불안정했고, 앞만 보며 달려가고 있었다. 무엇이 안정인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니 결혼과 출산의 격동기를 지나고, 경제적인 부분은 여전히 불안정하고, 진로 부분도 늘 고민이지만 ‘나’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된다고 할까. 그러니 안정이 되는 거 같다. 그 안에는 대인관계에 대한 정리와 지금-여기의 나를 직시하고 있다.
내담자, 즉 타인의 마음을 알아가고, 때론 마음을 읽어주고, 함께 나누는 상담사라는 업을 갖고 살며, 나의 마음도 잘 살펴보고 나아가고 있다. 수많은 내담자는 일(학업)과 관계(가족, 친구, 회사 동료 등)의 어려움으로 짐을 짊어지고 와 툭 내어놓는다. 그들이 살아온 삶의 역사를 풀어놓고 보며 대인관계 패턴과 모양을 함께 마주하다 보면, 나의 일과 관계에 대해 마주하기도 한다.
대인관계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다. 그 마음 안에는 경제적인 부분, 즉 사사로운 선물이라는 이름도 포함이 되어야 관계가 유지된다는 것을 친정엄마의 말씀과 나의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생일이나 SNS에 일상을 기록하며 힘들다고 징징대면 툭 하고 그들의 마음이 도착한다. 생일이면 1년에 한 번 선물과 함께 메시지를 마음을 보내주는 친구, 사회생활 하며 만난 동료, 그림책 세상에서 만나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 내 수업을 들었던 참여자인데 이제는 도반으로 함께 성장하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있다. 자주 만나지 않아도 그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메모를 꼭 해놓고 나 또한 그들에게 응원을 보낼 준비를 한다.
‘심리상담사와 함께하는 그림책테라피’를 2017년부터 공부하며 진행하고 있는데, 매달 함께하며 울고 웃었던 인연들이 지금도 연결되어 있다. 지금까지 수업에 들으며, 우린 함께 성장하고 있다. 오프라인 수업을 했을 때는 멀리 지방에서 대전까지 오신 분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이 어떤 마음을 안고 차를 타고, 기차를 타고 대전까지 왔는지 알고 있다. 간절함이 가득 찼을 것이다. 나 또한 간절함으로 여기저기 공부하러 다니는 사람이니까. 그들의 진심을 알고 있으니 더 열심히 하고, 그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려고 한다.
책 두 권을 출간했을 때도 연결되었던 인연들, 숨어있는 독자들은 나에게 마음을 보내준다. 내 책을 읽고 자신을 돌아보며 행복하다는 메시지를 주었을 때 참 벅차오르고,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마음을 주고받는 사이는 빚지는 삶이다. 그 빚은 부담되기보다 감사하며 살아가라고, 겸손하게 살아가라고, 진정성을 갖고 살아가라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빚지는 삶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