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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술을 안 마신다.

by Kisun Yoon

나는 술을 안 마신다. 내가 무슨 절제를 잘해서가 아니라 단지 마셔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아서 안 마신다. 기분만 좋아진다면야 내 성격상 매일 마셨을 텐데 체질적으로 술을 못 마신다. 그리고 미국에서 술을 억지로 마셔야 할 일이 지난 15년 동안 손꼽을 정도였다. 미국에서는 술을 권하지 않지만 대학교 다닐 시절에는 술을 못 먹는다고 나한테 뭐라고 하는 친구들이 좀 있었다. 아니 더 정확히는 내가 술은 안 먹으면서 안주를 많이 먹는다고 미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나한테 안주발 세운다고 친구들이 뭐라고 하기 시작했다. 나는 친구들의 거듭된 시비에 결국 울컥해 버렸고 옆 테이블에서 먹다 남기고 간 파전을 집어 와서 나는 그걸 먹을 테니 더 이상 시비 걸지 말라고 했다. 근데 그 옆 테이블 사람들이 파전을 얌전히 먹어서 비록 먹다가 남긴 음식이었지만 상태가 아주 양호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웃던 그놈들도 좀 달라고 해서 다 같이 그 파전을 나눠먹었다. 그 후로는 그 멤버들이 술집만 가면 계산하고 나간 다른 테이블의 남긴 안주를 가져오는 장난을 하게 됐다. 그리고 점점 구체적인 행동강령도 만들었다.


우리가 아무리 돈이 없어도 남이 먹던 찌개는 손대지 말자라던가, 공깃밥은 공기까지 가지고 오면 우리 테이블에서 계산이 될 수 있으니 우리 공기랑 숟가락을 가지고 가서 밥만 퍼온다던가, 노가리와 감자튀김이 동시에 남아 있으면 단가가 더 높은 노가리를 먼저 집어와야 한다던가 하는 식이였다.


제일 당황했던 때는 계산하고 나간 줄 알고 남긴 안주를 집어 왔는데 좀 있다가 그 사람들이 자리로 돌아왔을 때였다. 이런 에피소드가 어느 개그방송에서 나왔다는데 이건 내가 겪은 실화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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