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들끼리의 유행어 '대가리 박아?'의 탄생
점심시간이었다. 그날 점심 메뉴가 무엇이었는지 기억할 순 없지만, 다들 만족스러운 식사였던 건 확실했다. 사무실을 모두 비울 순 없는 터라, y는 먼저 부지런히 식판을 비운 뒤, 자리로 돌아와 다른 직원들을 식당으로 보내곤 했다. 텅 빈 사무실에는 오로지 상사 h와 둘 뿐이었고, 고요하다 못해 절망적인 적막함이 감돌았다. 아니나 다를까 적막을 깬 건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온 k였다.
k는 사무실로 헐래 벌떡 들어와서는 코트를 집어 들었다. 밖은 포근한 초가을이었다. 코트가 꼭 필요한 날씨는 아니었다. h가 물었다. “어디 가냐?” 상사 h는 평소 눈치는 빠르지만, 제 맘에 안 들면 상대방이 무슨 감정을 느끼던, 그러거나 말거나 식으로(심지어 그것이 선의라며!!!!!) 자기 멋대로 지껄이고, 행동하는 이였다. h의 질문에 k는 별 고민 없이 다른 직원들과 점심시간에 바람 좀 쐬고 오겠다 말했다.
h의 성격을 잘 아는 나는 뜨헉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h는 반색하며 자리 박차고 일어났다.
“그래? 나도 가자.”
순간 일그러진 표정의 k를 뒤로 하고, h는 그저 천진난만한 5살 아이의 얼굴로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이내 y와 눈이 마주친 k는 ‘망해쓰요!’라는 얼굴로 h를 뒤따라 나섰다.
한편, 밖에서 k를 기다리던 j와 c는 신난 표정으로 사무실을 뛰쳐나오는 h와 난감한 표정으로 뒤따라 오는 k를 발견하곤 식겁한다. 그들이 예상한 평화로운 산책 시간은 그렇게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사라져 버렸다. 졸지에 그들은 h를 따라 회사 인근 동네를 개 끌려가듯이 돌아다녀야만 했다. 작금의 상황이 어찌나 어이없었는지 c는 당시 겨우 출근 1개월 정도 된 상황에서 나이, 이전 경력과 상관없이 엄연한 직장 선배이자 아직은 관계가 서먹서먹하던 k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k님(...) 뻐..... 뻗치세....욧!!!!!!!!”
그날 오후. 해가 슬슬 최고점에서 내려올 무렵. k와 y는 평소처럼 채팅창으로 그날 있었던 일련의 상황과 대사들을 킬킬거리고 있었다. 이 둘은 상황의 과장과 극적 효과를 투하하는데 능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물론 가장 큰 공통분모라면 단연 깐족과 뼈 때리기였지만. 대부분의 분야(?)에서 극단적으로 갈리는 성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런 점 하나만은 환상의 콤비였다. 그런 이들에게 앞서 점심시간의 일들은 놓칠 수 없는 에피소드. 이들은 간단한 채팅으로 가지런하게 상황을 재정리했다. 그 과정 중 c의 멘트를 이렇게 변질됐다.
‘주사님???? 대가리 박으세요...’
y는 누군가를 놀릴 기회만 생기면, 이 대사를 써먹었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y는 상대를 잘못 만났음을 뼈저리게 깨달아야만 했다. 깐족과 뼈 때리기라면 둘도 없는 재능으로 똘똘 뭉친 직원 k와 c는 y의 공격을 묻고 더블로 되받아쳤다. 늘. 마치 우완 정통파 투수가 던지는, 회심의 직구를 정타로(경쾌한 딱 소리와 함께) 장외홈런으로 넘기듯이. 계속되는 뼈 때리기와 깐족 티키타카 속에서 갈수록 그들의 내공은 깊어졌고, 하는 짓(?)에 비해 상처를 잘 받는 y는 더 이상 수습할 수 없는 내상을 입기라도 하면, 자진 납세 내지 셀프 상황 수습을 이런 식이라도 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분, 저 대가리 박아요?”
그것마저도 타자치기 귀찮은, 어느 날. y는 채팅창에 그것들의 초성만 따서 간단히 올렸다.
"ㄷㄱㄹ ㅂ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