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c가 k에게 경력불문, 친분불문하고 "k님(...) 뻐...뻗치세..욧!!" 드립을 날린, 그날이었다.
(개 끌려다니듯이 쏘다닌) 순시 중에 동네 강아지 커엽다고 함부로 만지던 k가 집에서 기르는 애견, 콩이와 달리 심기 불편한 어느 개한테 물려버렸고, 한쪽 검지 손가락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사무실로 들어온 것이다.
k의 얼굴에는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 아니나 다를까. k의 애견, 콩이 오빠(멀쩡한 10살 터울의 오빠 ‘둘’을 두고, 굳이 콩이 ‘오빠’라 부르는 건 대체..) 생각하고 만진 동네 똥개가 그만 k의 검지 손가락을 물어뜯은 것이다. 부여잡은 다른 손 틈으로 피가 유전처럼 콸콸콸콸 샘솟았다. 부랴부랴 k는 회사 인싸들 모임 장소이자 사랑방인 보건실로 향했다.
전직 간호사 출신인 보건실 주인장은 특유의 배려 넘침과 진지함 그리고 순수함이 가끔 개그 캐릭터처럼 보이는 분이다. 그날도 역시 보건실 주인장은 일말이긴 하지만, 만에 하나 모를 광견병 감염 가능성과 그로 인한 폐해와 그 심각성에 대해 k에게 설명했다. 물론 k는 그러거나 말거나 평소처럼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간단한 응급치료만 받고 유유히 퇴근했다.
K를 말할 것 같으면, ‘위기탈출 넘버원 따윈 너나 가져라. 나는 일평생 신나게 놀란다.’ 마인드의 표본이라 하겠다. 잦은 술자리를 통해 유서 깊은(한민족의 얼이자 전통인) 음주가무를 몸소 실천하였으며, 비정기적으로 4족 보행을 시전하였다. 거기까지야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걸 또 굳이 다음날 출근해 사무실 직원들에게 보고하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되려 그런 상황을 즐기는 듯하다. 그 여유란 나 같은 범인 따위는 감히 범접할 수도 없는 수준으로 이래저래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데 일말의 주저함이 없는, 해학 넘치는 인물이다.(과연 선조들의 음주가무의 전통을 계승한 적통자답다.)
다만, 다음날만은 어디서 무슨 얘기를 보고, 들었는지, 출근하자마자 바로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것이 아닌가. 나는 k의 예외적인 행동을 보며 다소 의아해했지만, 이내 그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만에 하나, 진짜 재수 오지게 없으면, 진짜 4족 보행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그 흉물스러운 자세의 본인 모습이 간 밤에 뇌 주름 사이를 빛의 속도로 스쳐 지나간 것 아닐까. 등짝과 뒷덜목에 느껴지는 축축한 습기는 덤일 테고. 그게 아니면 화통하신 성격의 어머님(k 식으로 ‘옹롼씨’)에게 등짝 스매싱이라도 시원하게 맞았거나.
한편, 당일 아침. 상사 h가 회의로 자리를 비운 사이, 우린 코 앞으로 다가온 감사 준비로 대화하던 중이었다. 도중에 k는 상냥히 y에게 말했다.
“부장님. 제가 뭐 도와드릴 거 없을까요?”
불행히도 y는 k의 선의를 언제나 깐족으로 되받아쳤다. 보통 뒤이어지는, k(또는 c)의 홈런성 장타는 선택적 기억상실로 까마득히 잊어버린 나머지 가능한 짓이겠다.
“감사 준비요? 하려고 하면 엄청 많은데 말이죠… 어떻게 k님. 저번 주처럼 이번 일요일에도 정모 하실래요? 주말 정모요, 감사 준비해야죠???”
k에게 워라벨이란 단연코 수호해야 할 가치였고, 지난주의 일요일이 떠들긴 제아무리 신나게 떠들었다만, 그래도 일은 일이요 주말출근은 말 그대로 황금같은 주말에 하는 출근일 뿐이다. k는 단호하게 혀를 내밀며 장탄식을 내뱉었다.
“우웩! =ㅠ=”
y는 발끈해버렸다.
“아니… 이 양반이!!!!! 우웩이 뭐야 우웩이???”
한바탕 시끌시끌해진 행정실이 잠잠해지고, k는 본격적으로 일하기 앞서 탕비실에 본인이 마실 커피를 내리러 갔다. 다른 이들 것도 내릴까 싶었는지 바로 탕비실 옆에 위치한 내게 물었다.
“부장님. 커피 드실래요?”
y는 찬스를 놓치지 않는다. 결단코.
“저요? 커피요? 우웩!! =ㅠ=”
본래의 얘기로 다시 돌아오자. 아무래도 광견병이 걱정이 된다며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k를 두고 우린 어느 병원이 괜찮은지 회사 근처에서 평생을 산, 이 지역의 명예 딸(속칭 'ㅇㅇ의 딸')이자 살아있는 박물관, 회사의 리빙 레전드이며 유물 수집가 겸 출토 전문가인 j에게 물어봤다. j는 서슴없이 회사에서 차로 1분도 안걸리는 거리의 우외과를 추천하였다. 순간… y 머리를 스친 건 기묘하게 일치하는 라임이었다.
“우외과요? 우웩과가 아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