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일랜드 캠핑에 대한 이야기

by kittens

이전 애킬 (Achill) 섬 포스팅에 이어서, 아직 포스팅할 여행지가 많이 남아있지만, 일단은 아일랜드의 캠핑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한국에서 난 자동차 운전을 좋아해서 여행을 꽤 다녔다. 당시 직장이 샌프란시스코의 스타트업이었는데 원격으로 근무했기 때문에 한국 어디서든지 일할 수 있었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집에 있었던 시간이 반틈, 여행을 다니는 시간이 반틈이라 할 만큼 자주 돌아다녔다. 그렇게 쏘다닐 때도 캠핑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난 캠핑을 할 만큼 부지런하지도 않았고, 자가용도 트렁크가 앞에 있었는데 앞의 트렁크가 일반 승용차보다 작았다. 거기에 캠핑 장비가 들어갈 여유가 없었다. 또 한국은 설악산, 지리산, 남해 등에 있는 모텔에서 평일에는 현찰 박치기로 꽤 싸게, 캠핑장 가격보다도 더 싸게 숙박할 수 있는 경우도 많았다.


이후 아일랜드로 왔다. 그리고 한국식으로 여행했는데, 아일랜드의 숙박비는 거의 스위스에 맞먹을만큼 비싸다. 한국에 비해 평균적으로 약 3-4배 정도 비싸다고 보면 된다. 내 기억에 한국 시골의 시설 깔끔한 모텔이 평일에 현금으로 3-4만원 정도했었다. 아일랜드는 비슷한 조건에 100-110유로 정도한다. 또 모텔이 아니고 호텔의 경우 3성급이 한국에서 10만 원대 초반이면, 여기는 200-300유로 정도한다. 1박에 말이다. 이게 동행이랑 갈 때는 그나마 괜찮은데, 혼자 가서 자전거를 탈 때는 돈이 너무나도 아까웠다. 특히 하루 종일 자전거니, 운전이니, 쏘다니고 겨우 밤에만 들어와서 자는데 말이다.


사실 지금 캠핑에 대해서 적고 있지만 한국에서 온 단기 유학생, 워홀러, 주재원이면 아일랜드 국내 여행은 그렇게 많이 안 할 거다. 너무 비싸니까. 솔직히 아일랜드에 거주하는 나로서도 추천하는 건 스페인이나 프랑스 여행이다. LCC 덕분에 비행기값이 기차값보다 싸고, 그쪽 나라는 물가나 숙박비도 아일랜드보다 훨씬 저렴하다. 그래도 여기 서쪽 아일랜드는 나름 북유럽의 감성이 있어서, 이런 걸 좋아하면 비싼 물가를 감안하더라도 애정을 붙일 수 있다.


나도 처음 몇 개월은 내가 과연 이 나라에 정을 붙일 수 있을까, 긴가민가했다. 아일랜드 거주 초기엔 장기 여행보다는 직업적 안정과 사회 적응에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6개월 정도가 지나고, 회사도 안정화되고, 자동차도 구매하게 되면서 아일랜드 여행에 눈을 뜨게 된 거다. 난 어릴 때 호주 시드니에서 살았었는데,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일랜드가 시드니보다 내게 더 좋다. 한국 << 넘사벽 << 시드니 < 아일랜드 이런 느낌이다.


사실 나도 시작은 아일랜드 여행 50 : 유럽 여행 50으로 하려고 했다. 그때 코로나가 터지고 만 것이다. 한국은 유럽에 비해서 코로나 대처를 훨씬 잘 했으나, 유럽은 많이 힘들었다. 아일랜드도 처음엔 집 주변 10km 봉쇄 정책도 있었고, 이후에 봉쇄가 좀 풀린 뒤에도 여행객용 비행기는 절대 뜨지 않았다. 따라서 강제로 국내 여행만 다녀야 했었다. 물론, 지금은 편도 10-20유로짜리 라이언에어 티켓으로 뻔질나게 유럽 본토를 잘 다니고 있다.


자동차의 경우도 아일랜드에서는 한국처럼 작은 앞트렁크가 있는 차를 사지 않고, 아예 길게 보고 가족형 SUV를 샀다. 그래서 캠핑 장비를 넣기도 안성맞춤이고, 이게 위에서 말한 비싼 숙박비와 맞물리면서 캠핑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어떤 취미를 처음 시작할 때는, 성능을 마지노선까지 끌어내린 제일 싼 장비를 임대해서 써보고 그 취미가 내게 맞는지 알아보는 게 좋다. 나도 지인이 오랫동안 안 쓴 4인용 폴텐트를 빌렸다. 내 첫 캠핑은 아일랜드 중부 지역의 Athlone이라는 곳 옆의 Lough Ree 캠핑장이었다. 아일랜드어로 Lough가 호수, Ree가 왕이라서 왕의 호수 캠핑장이다. 지금도 아일랜드 캠핑장하면 순위권에 들어가는 멋진 캠핑장이다. 텐트 설치는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고, 가격은 엄청 쌌고, 분위기는 끝내줬다. 정말 만족했다.

IMG_7951.jpeg Lough Ree 캠핑장. 지인한테 대여한 4인 폴텐트


이후 시나브로 나만의 4인 폴텐트를 샀고, 좀 쓰다가 현재 애용하는 4인용 에어텐트로 정착했다. 이후 열심히 캠핑을 다녔다. 특히 늦봄부터 가을까지는 캠핑이 70%, 일반 숙소가 30% 정도의 비율이 됐다. 물론 같은 가격이면 숙소가 언제나 편한데, 캠핑장 가격으로는 구해봤자 호스텔 수준의 숙소만 구할 수 있다. 호스텔이랑 비교했을 때는 난 개인 공간이 더 널널한 캠핑이 좋았다. 그리고 B&B나 호텔에 머무는 건 아주 가끔 특가로 정말 괜찮은 가격이 뜰 때나, 동행이랑 같이 가서 분위기잡고 싶을 때만 갔다.


한국에서 캠핑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다만, 한국도 캠핑붐이 많이 불었다. 내가 아일랜드에서 캠핑 노하우를 배우고, 캠핑 장비를 구매할 때에 영어권 유튜브를 50%, 한국어 유튜브를 50% 정도 참고했다. 한국사람이 은근히 손재주도 있고 이런 아기자기하게 꾸미는 걸 잘해서 괜찮은 팁이 꽤 있었다.

IMG_7952.jpeg


캠핑의 장점은 가격이다. 보통 아일랜드의 캠핑장 가격은 1박에 20유로 정도. 한화로 3만 원이다. 이건 여담이지만 오랫동안 유럽에서 유로화로 월급을 받다 보면 1유로가 한국돈 천 원처럼 느껴진다. 실제로는 1500-1600 정도지만. 어쨌든 내겐 이게 2만 원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최근에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던가 물가 상승이라던가 해서 23-24유로 정도로 오르는 캠핑장도 종종 있다. 단, 여기서 백패킹이나 자전거로 캠핑한다면 보통 5유로는 할인해 준다.


하나 재미있는 건, 한국의 캠핑장 이용료가 국민 소득에 비해 꽤 비싸다. 일박에 4-5만 원 정도? 아일랜드보다 더 비싼 거다. 이는 스위스도 마찬가지라, 물가가 하늘을 뚫는 스위스에서도 캠핑장 가격은 20-25유로 (스위스프랑) 정도다. 이렇게보면 한국에서의 캠핑은 가성비로 따졌을 때는 거의 이점이 없을 수도 있다.


캠핑은 기본 이용료에 더해서 부대 비용이 나간다. 등산이나 자전거 등의 야외 활동을 하면 씻어야 한다. 온수 샤워비는 평균 5분에 1유로. 운 좋으면 공짜고 운 나쁘면 5분에 2유로다. 온수를 2유로 받는 캠핑장은 왠만하면 다시 안 가는 편이다. 그리고 아일랜드는 여름에도 밤은 추워서 한여름이 아니고선 전기장판이 필수다. 침낭으로 비벼볼 수도 있는데, 전기장판과 전기히터 조합의 안락함을 한 번 느껴보면 난방기구는 꼭 챙겨가게 된다.


전기는 보통 1박에 5유로를 받는다. 한국은 캠핑장 전기 이용에 대해서 상당히 빡빡하게 구는데 아일랜드는 왠만한 전기 기구는 다 갖다 써도 될 만큼 널널하다. 심지어 어떤 경우는 옆 텐트에서 전기차에 캠핑장 전기를 꽂아서 충전하는 걸 본 적도 있다. 주인장이랑 얘기해봐도 전기를 많이 쓰긴 하지만 당장은 문제가 안 되니까 그냥 냅둔다고 했다. 그만큼 널널하다는 소리다. 난 그래서 일반적으로 전기히터, 전기장판, 전기포트, 카메라/드론 충전기 정도로 전기를 소모하며, 특히 히터랑 전기 장판은 밤새 내내 틀어둔다.


이렇게 가격을 전부 따져보면 일박에 한국의 모텔 포지션인 B&B가 110-120유로일 때, 캠핑은 26-28유로 정도가 나온다. 하루가 아니고 2박, 3박 이렇게 숙박 일수가 올라가면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이다.


캠핑의 또 하나의 장점은 부엌 시설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캠핑장에 전자레인지는 거의 다 있고, 심지어 오븐이 있는 곳도 있다. 그래서 주변 마트에서 음식 사서 데워먹기도 편하고, 더 건강하게 먹으려면 집에서 도시락을 싸 가기도 한다. 아이스박스나 캠핑장의 공용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데워먹으면 그만이다. 난 그렇게 주식은 집에서 싸간 도시락이나 마트 음식으로 해결하고, 1-2끼만 특히 자전거 완주를 축하할 때는 좀 좋은 펍에서 술과 함께 분위기있게 먹는다.


아일랜드 캠핑의 또 다른 장점은 다. 아일랜드에서 뷰가 좋은 숙소를 이용하려면 4성급-5성급 되는 호텔의 스위트룸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그럼 진짜 여름엔 1박에 백만 원이 깨질 수도 있다. 캠핑은 그 뷰에 못지 않게 싱그러운 잔디밭, 예쁜 해안, 시원한 절벽을 다 가지고 있다. 한국의 파쇄석이나 데크 캠핑장과는 다르게 아일랜드는 적어도 내가 다닌 캠핑장은 100% 잔디밭이었다. 이 캠핑의 뷰를 이길 유일한 것은 와일드캠핑이라는 백패킹 캠핑밖에 없다고 본다.


1편은 여기까지, 2편에서 단점과 주의할 것으로 마무리하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한국인이 잘 모르는 아일랜드 여행 - Achill 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