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weet little kitty Nov 14. 2022

손이 없는 자들의 시대

손 없음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하여

아이의 문예창작 수업 과제김훈의 단편소설 <손>이 주어졌다. 아이가 감상문 쓰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나도 함께 읽었다. 작가는 물에 빠진 소녀를 구하는 과정에서 잡았던 손의 느낌을 소방 구조사로부터 전해 듣고, 새로운 이야기를 덧입혔다고 한다. 


소설은 철호 어머니의 시점으로 기술된다. 철호는 군입대 전 잔인한 성폭행 사건의 주범으로 군 복무 중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는다. 철호 어머니는 참고인 신분으로 경찰서를 방문하게 되고, 성폭행 피해자인 연옥의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현실에서라면 사건 후 물에 뛰어들어 사망한 피해자의 아버지와 가해자의 어머니가 서로 만날 일은 없겠지만, 소설 속에서 두 사람은 어떤 거친 말이나 폭력 없이 차분하고 냉정하게 마주한다.


철호 어머니 무책임, 무관심한 남편게 일방적으로 이혼당하면서 고향에서는 수치스러운 존재가 되었고. 양육권을 빼앗겼다. 그러나 철호를 찾아오기 위해 강력하게 저항하 대신 꼬박꼬박 양육비를 보낸다. 철호는 몇 년 뒤 엄마의 주소를 알아내어 아빠와 할머니로부터 탈출한다. 철호를 키우는 동안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양육비를 받지 못했고 직장생활은 너무 바빴다. 호는 밖으로 돌았다.


반면 연옥의 아버지는 된 노동의 세월이 몸에 드러나는 사내였고, 눈과 코가 새카맣고 털은 하얀 개를 경찰서 데려왔다. 경찰서 면담 이후 철호 어머니의 과거 회상이 이어지고, 그녀연옥 아버지의 거처를 수소문하여 옷 선물을 들고 찾아가려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지난주 심리학 강의 시간에 한 상담사 선생님이 증례를 질문했다. 등교거부 및 청소년 우울증을 앓고 있는 한 여중생의 사례다. 소녀는 아들을 간절히 원하는 집안에서 셋째 딸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산후 우울증 증세를 보였고, 외할머니는 '네가 아들이었어야 하는데'라는 말을 쉽게 하곤 했다. 아이는 자신이 백일 무렵 거실의 풍경을 자주 꿈으로 꾼다고 했다. 어머니는 팔은 있으나 손이 없는 사람으로, 가족들은 소파에 앉아 TV를 주로 본다. 그렇지만 자신은 이런 현실이 괜찮다고 생각한다. 무기력한 거실의 모습, 같은 꿈이 반복된다.

 

교수님은 팔은 있으나 손이 없다는 것은 어머니가 나를 돌봐주지만 세밀하게 돌보지 못한다고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해 주셨다. 먹이고 재우고 키워주지만, 정서적 어려움에 대한 관심과 공감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사례의 소녀는 아들이 아닌 딸로 태어나 존재가 거절당하는 절망을 공감받지 못했고, 자신을 부적절한 존재라고 생각해 왔다. 학교는 <부모>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에, 학교에 가기 두려워하는 것은 팔은 있으나 손이 없는 어머니의 품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두렵고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일 수 있다고 한다.


철호는 경찰 조사에서  "예쁜데 만질 수 없어서요."라는 진술 기록을 남겼다. 어쩌면 철호는 손으로 타인과 접촉할 수 없는 사람일지 모른다. 가출을 해도 연락하지 않는 아버지와, 온종일 늦게까지 일하며 이혼 후 주변인들로부터 인격적 모독까지 감내해야 했던 어머니 밑에서, 철호는 이 상징하는 공감과 세밀한 보살핌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기에 따스한 인간의 손길과 체온을 원한다. 철호는 손으로 만질 수 없으면 폭력을 휘둘러서라도 상대에게 닿으려고 했다.


반면 연옥은 물에 뛰어들었다고 하나, 구조되었을 때 온기가 남아있었고 구조사의 겨드랑이에 손을 꽉 껴 넣었다. 몸집은 가녀렸어도 아귀힘이 셌다. 그녀의 손은 살기 위한 의지를 담은 몸부림이었을까. 타인의 손으로 상처받았지만 다시 손을 뻗어 매달릴만큼 강한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가해자 어머니와 마주하는 자리에 나타나지 않은 그녀의 어머니는 손이 있는 사람이었을까. 어쩌면 아내 없이 딸을 키우며 목수일로 생계를 이어왔을 아버지는 손이 있는 사람이었을까.


내 머릿속엔 <손> 없이 자란 아이들이 성장하여 처절하게 비틀린 방법으로 타인과 접촉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러나 철호 어머니의 시점으로 보면 그녀 역시 결혼 생활 중에도, 이혼을 겪을 때에도, 이혼 후에도 <손> 없이 살아온 지독한 <손> 결핍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결핍은 결핍을 낳고, 극심한 결핍은 비극을 낳는다.


경찰 조사의 용건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사적으로 연옥의 아버지를 만나려고 하는 철호 어머니는 정신 나간 여자 같다. 그녀 영롱한 생명이라고 느꼈던 그 개는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손을 제공받은 존재였다. 고향의 얼어붙은 하천에 빠져 비명을 지르며 홀로 떠내려간 개와는 대조된다. 슬픔 속에서도 연옥의 아버지는 경찰서 출입규정을 뛰어넘어 개를 데리고 들어왔다. 그저 먹이고 재워주며 키우는 동물에 그치지 않고, 힘겹고 슬순간에도 함께 할 수 있는 존재. 출입이 허락되지 않을 경찰서라는 공간까지 기어이 데리고 올 수 있는 존재. 그들은 손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 개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며 대화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는 철호 어머니는 연옥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고자 결심한다.



손이 있는 자들과 손이 없는 자들이 공존하는 시대다. 손 없이 팔로 지휘, 통제만 하는 자들이 의사결정권과 수사권을 가지고 있다. 손으로 일하는 자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이런 부조리는 비극적 사고로 이어진다. 철호 어머니가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나름 철호를 키웠지만, 성폭행범으로 징역 10년을 살게 되고, 피해자인 연옥은 물에 뛰어들어 죽은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억울하다. 불가피한 일이었다. 일부러 그런게 아니다.'라고 변명하는 대신, 피해자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고자 한다. 비난과 거절을 감수하고서 말이다. 그녀가 변화를 시도한 것처럼 우리에겐 변화가 필요하다. 팔만 가지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손없는 자들의 말과 행동을 보면 철호 어머니처럼 변화를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이제 우리는 손이 있는 자들에게 의사결정권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없는 자들의 시대는 끝나야 한다. 도한 통제욕구와 전능적 환상으로 가득 찬 손 없는 자들의 질주가 언제까지 지속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감히 말해 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