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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Dec 02. 2021

예민함, 불편함과 우월함 사이

예민한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프렌치토스트를 만들 때 꼭 필요한 건 무얼까?

계란, 우유, 식빵, 토핑용 과일........

모두 다 필요하겠지만 나에게 중요한 것은 슈가파우더, 그리고 슈가파우더를 내려줄 수 있는 베이킹용 <고운 체> 다. 보통 주방에서 쓰는 체로는 어림도 없다.

일반 설탕이 아닌 슈가 파우더가 곱게 뿌려진 프렌치토스트는 카페에서 내놓은 만 원 남짓의 브런치 메뉴 못지않게 먹음직스럽기 때문이다.




 한 EBS 육아 프로그램에서 <예민한 아이>란 아주 고운 체와 같다는 말이 있었다. 체가 고우면 다양한 크기의 재료를 내려 줄 수 없지만, 다 내려보겠다고 통과시키면 먹통이 되어 버린다. 예민한 아이를 고치려고 하면 아이 자체의 고유한 특성이 망가진다는 뜻으로 들렸다.


 예. 민. 함.

이 단어를 듣는 순간 긍정적인 느낌을 받는 한국인은 얼마나 될까?


예민하다는 것은 일단 보통사람들보다 자극을 더 많이, 더 강하게 받아들이고 반응한다는 의미다.


 감수성이 높고 예민한 성향은 사실 굉장한 재능이다. 높은 감수성 덕분에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일상의 변화에 굉장히 민감하다. 예민한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성향을 삶을 힘들게 하는 요인으로 경험하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이런 성향이 가진 장점을 이용하고 누린다.


지난가을 김경일 교수님의 <대담한 대담> 강의를 들었다. 강의 주제는 <인간의 오감 그리고 식스 센스>였다. 예민한 사람들이 감각이 발달한 탓에 많은 요소에 영향을 받게 되는데 그 점을 미리 알고 있으면 사소한 영향에 덜 흔들리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지만, 내 귀에 유난히 들어온 말씀은

<심리학적 우월함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것을 더 많이 느끼는 예민함에 있다>는 구절이었다.(여기서 심리학이란 교수님의 전공인 인지심리학일 것이다)


그 누구도 예민함을 우월함으로 표현해 준 적은 없었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예민한 아이들을 키우면서 지난 10년간 내 마음속의 가장 큰 이슈이자 고민은 <예민함>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우월함은 감각 측면에서, 말하자면 슈가 파우더를 내려 줄 수 있다는 특별함에 근거한 우월함이라고 밝혀두고 싶다. 이 우월함의 반대편에 열등함이 있을까 염려된다. 내가 언급하는 우월함은 사람의 능력을 수치로 나타내 한 줄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다중지능, 혹은 다중 재능으로 각자 우월한 분야가 있음에 가깝다.


<예민함이라는 무기>의 일부 내용을 발췌하여 정리해 본다.



<스스로 희생자가 되려는 자녀>

예민하지 않은 아이는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가족 내의 불균형, 부당함, 숨겨진 문제들에 대해 잘 지각하지 못한다. 반면 예민한 아이는 가족 상황을 빠르게 읽어내어 더 쉽게 말려 들어갈 수 있다. 더욱이 자기 자신보다는 가족의 화목한 분위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자꾸 얽힌 걸 풀어내려고 한다.


<정신적 학대와 독점에 익숙한 부모>

자신의 삶의 과제를 주체적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부모는 아이에게 자신의 숙제를 위임하는 경우가 있다. 예민한 아이들은 특히 이런 짐을 기꺼이 짊어지고자 한다.


<예민해서 행복한 사람들>

예민한 기질을 타고났으나 이런 성향을 가지고 전혀 문제없이 잘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지각과 신체의 한계를 존중하고 존중받아온 사람들이다.

부모가 자녀를 맘대로 좌지우지하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야망을 아이에게 전가하거나 암묵적으로 강요하지 않는 분위기가 도움이 된다. 이런 부모들은 아이들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성공시킬 것인지에만 몰두하지 않는다. 부모 스스로가 독립적으로 스스로를 실현해 나가고 성장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반면 자신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만큼 살게 된 것처럼 자신의 아이도 자신처럼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수성가형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기 쉽다. 이들은 현대사회의 표준에 맞추는 것을 교육이라 생각하며, 근면과 노력을 통해 무엇인가를 이루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자녀들이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휴.... 정말 가슴에 와서 박히는 문구들이 많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러 전문가들이 쓴 책을 읽고 조언을 듣고 종합해서 나름 내 것으로 소화한 뒤 우리 가정에 적용해 보는 일이다.


예민한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수많은 질문을 던져 왔던 나에게, 이 책의 한 문단을 인용하면서 고민과 성찰의 글을 마친다.


부모는 유전자 말고도 다양한 것을 아이에게 물려준다. 인생의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어떤 의식을 가지고 삶을 살아갈 것인지, 삶의 도전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 부모가 생각하고 살아가는 모습들이 모두 아이에게 영향을 미친다. 예민한 아이를 기르는 부모라면 이 점을 의식하고 아이에게 좋은 모범을 보여주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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