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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Oct 31. 2021

1차원이 되고 싶어

너와 내가 연결되는 그 곳, 태어나서 처음 안긴 엄마의 품 같은

아. 박상영!


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내가 한숨과 함께 내뱉은 말이었다.

순식간에 몰입하게 하는 재미와 더불어 우리 사회의 폐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코끝을 취하게 하는 커피향처럼 다가왔다가 쓰디쓴 카페인의 추억으로 혀 끝에 녹아드는 느낌이랄까.


이 소설은 현재 유명한 상담가가 된 자아가, 중고등학교 시절 입시경쟁,  학교폭력, 가정불화를 겪으면서 동성친구를 사랑하게 되었으나 상처로 끝나는, 그리고 주변 인물들 역시 서로 상처를  주고받은 채 어른이 되어가는 이야기다. 물론 자신의 상처치부를 드러내는 가운데 주변인물들과 사회 의 치부가 함께 드러나는 점에서 줄줄이 사탕 같도 하다.


 단순히 퀴어 소설도, 단순 10대들의 이야기도 아니다. (소설 속 10대들은 2002년에 대학생이었던 나보다 정서적으로 성숙하고 심오하다). 이건 그냥, 박. 상. 영. 그의 인생 story telling이다.


박상영의 소설을 좋아하는 건 무엇보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몰입하게 만드는 스토리 전개와, 중간중간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유머코드. 이토록 우울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이렇게 재미있게 쓸 수 있다니. 어두운 이야기를 꺼낸 용기도 대단하지만 결국 그걸 어떻게 풀어나갔느냐가 그만의 력이 아닐까?


 파도처럼 밀려드는 생각에 책을 덮고도 한동안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1. 열심히 살았는데, 행복하지 않다면 왜 그럴까?

2. 퀴어, 동성애란 차별받거나 음지에 가둘 문제는 아니지만 그것이 어떤 결핍에서 시작되었다면 그건 무엇일까?

3. 작가가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서 결국 이루고 싶었던 건 무엇일까?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궁금했던 건

"<1차원이 되고 싶어> , 이 매혹적인 제목의 의미는 무엇일까?" 였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가장 절박한 방식으로 서로를 끌어안았다.
 그 순간 세상이, 우리가 속한 차원의 세상이 멈춰버렸다.
 그 순간 우리는 하나였고, 우리였으며, 우리인 채로 고유했다. 나에게 있어서 그 순간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심지어 나머지 인생 전부와도 바꿀 수 있는 어떤 것이 되어버렸다.

                     <1차원이 되고 싶어> p.218 중에서


그의 또 다른 소설을 인용해 본다.

-우리가 무슨 관계인 것 같아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대답 없이 일어나려는 그를 잡았다. 이대로 그를 보낼 수는 없었다.
<중략>
그는 언제나처럼 측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랑, 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죠?
나도 모르게 그의 뺨을 후려쳤다.

                             박상영,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중에서


사랑, 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죠?

에서 소설 속 자아는 나도 모르게 그의 뺨을 때리고 목을 조른다. 소설 속  '영'은 <사랑>이라고 생각했고, '형'은 친밀한 상대이자 <성적 욕구를 채워주기 위한 도구>로 생각했다는 뜻인 것 같다.

영은 자신이 원하는 것에 솔직하고 사랑을 위해 가진 것을 내려놓고자 하는 반면, 형은 자신이 원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껴 부정하고 싶고, 가진 것을 잃게 될 까봐 두려다.


 <1차원이 되고 싶어>의 나와 윤도 역시 윤도는 나를 좋아하면서도 나와의 관계를 부끄러워하고 부정한다.

하지만 두 사람이 원했던 것은 같다.

1차원이 되는 것. 너와 나라는 점을 연결하여 선분이 되는 것, 아무런 조건없이 진정한 애착이 생는 것.


우리는 3차원의 세계를 너무 열심히 건설하느라 1차원이 무너진 것을 모르고 있었다. 선분 없이 면이 존재할 수 없고 면 없이 입체가 존재할 수 없는데도 말이다. 엄마 품에 안겨 걱정과 갈등 없이 만족스러운 기처럼, 우리에겐 존재로서 충분한 1차원의 순간이 필요하다.

 


 사회 각 분야에서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에 태어난 박상영 세대들을 마주하게 된다. 나는 79년생과 함께 공부한 이른 80년생. 말하자면 70년대 생의 정서와 문화를 그대로 이어 받았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여러모로 낯이 뜨거워다. 박상영 세대 받아온 교육70년대생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지독한 서열주의, 인서울 대학 숭배, 그 목표를 정확히 겨냥한 학원 교육.

 그리고 20대 중반이 되어 사회에 나왔을 때에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마주한다.


 적어도 우리는 받아온 교육에 상응하는 사회생활이 가능했고, 고성장 시대의 마지막 단물을 먹고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IMF 시기에 중고등학생이었고, 사회에 나왔을 땐 4차산혁명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살아야 했다.


 일방적이고 효율만을 강조한 교육을 강요한 기성세대들은 이제 와서 '너만의 색깔이 뭐냐, 너의 스토리는 무엇이냐? 너만 할 줄 아는 것은 뭐가 있냐?' 며 사회로 진입하는 그들의 30대를 혼란에 빠뜨린다. 우리세대만큼 취업이 쉽지 않다. 20, 30대에 어느 정도의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도 많이 깨져 버렸다. 변화의 길목에서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갈피를 잡기 힘들다.


 어쩌면 그들의 이야기는 이전 세대들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이 그대로 축적되어 나타난 최종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성취와 성과만을 목표로 달려간 부모들, 폭력을 교육이라고 믿으며 가르친 학교, 그럼에도 뻔뻔스럽게 그들에게 지독한 결핍속에서 성공과 행복을 알아서 쟁취하라는 사회.


 마치 주식시장의 꼭대기에서 우리세대만 탈출하고 그들을 남겨놓아 서서히 내리막길로 떨어뜨리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초반 유행했던 싸이월드, 토스트가 무한 리필되는 예쁜 카페 캔모아 등을 접할 때 이 소설은 참 풋풋하고 순수하게 느껴진다. 박상영의 이전 소설들과 비교해 볼 때, <다시 데뷔하는 기분>이라는 그의 말이 이해가 된다. 어쩌면 나도 지나왔을 그 시절을,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깊이 공감하고 즐기게 된다.


사실 나는 구원의 서사를 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에게 몸을 기댄 채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는 관계를, 그 시절 내 삶에는 주어지지 않았던 구원의 존재를 가상의 세계 속에서나마 찾아내고 싶었다.
 그러나 종국에 이 소설은 실패의 기록으로 남을 것 같다. 구원을 바라며 허공에 손을 뻗었던 한 인간이 결국에는 누구에게도 가닿지 못한 채 홀로 남겨지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 말이다.

                             <1차원이 되고 싶어> 작가의 말 중에서

 

작가를 포함한 예술가의 직업적 장점은 시공을 뛰어넘어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내가 속한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침으로서 인생의 의미를 찾고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특정한 직업은 연결된 사람들의 범위 내에서 영향을 끼칠 수 있지만 예술가는 좋은 작품을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하면 그것이 때로는 사회를 바꾸기도 할 만큼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상영 작가는 이 소설을 실패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미 그 안에 훌륭한 메시지가 충분히 담겼고, 아프지만 솔직한 이야기를 통해 메시지가 전달된다. 구원이란 그저 메시지 전달만으로 충분하다. 이 책을 읽은 누군가가 무너지지 않을 만큼 견고한 3차원 세상을 위해 1차원부터 만들어 보자. 그것이 곧 구원이며 시행착오를 통한 인간의 배움이자 진보일 것이다.

 

어둡고 아픈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주신 박상영 작가에게 진심으로 사랑과 존경을 표한다.




배우가 연기하는 장편소설 『1차원이 되고 싶어』 | 박상영 | 북트레일러


https://youtu.be/ii6kSwXgv-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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