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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Jan 13. 2022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큰돈 들이지 않고 설레는 방법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아이 때문에 시작한 상담이 1년 정도 진행된 후, 원장님은 <이마고>에 대해 얘기해 주셨다. 나의 글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이마고는 어떤 것의 원형, 이미지를 뜻하는데 요즘은 부부치료에 많이 사용하는 개념이다.

남자는 어머니, 여자는 아버지와 장점도 단점도 닮은 배우자를 무의식 중에 선택하게 된다는 거다.


내 인생 한 켠에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있다면 어떻게든 돌아가 다시 채우고 싶은 마음, 어쩌면 과거를 바꾸어 보고 싶고 상대를 개조해 보고 싶은 마음이 우리 안에 있다니.


"나의 결핍을 알고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요구해야 해요."


그것은 내게 엄청난 비용을 들여 변호사를 선임하고 소송을 해야 한다는 말처럼 들렸다.

마음을 열어본다는 건 그토록 두렵고 싫은 일인가 보다.


이마고를 통해 들여다본 나의 결핍은 생각보다 쉬웠다.

나는 남자든, 여자든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을, 그 순간을 참 좋아했다.

소위 심쿵하는 순간이다.

시를 그다지 즐겨 읽지 않는 내가 저 시에 완전히 꽂혀 버린 건 단순히 좋은 시여서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 아빠는 나를 항상 "얘!"라고 퉁명스럽게 불렀다.

아빠는 성격도, 상황도 도무지 타인과의 관계에 에너지를 쏟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상함은 커녕 사소한 관심조차 내게는 느껴지지 않다. 나는 그런 순간이 싫었고 내가 무의미한 존재라고 느꼈다.


그래서 난 아무리 여러 번이어도,가까운 사람이 이름을 불러주는 것을 참 좋아했나 보다.

그런데 그걸 결혼하고 10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남편이기를 간절히 원했다는 것을.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말 그대로 대화 중에 말로써 불러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나의 존재, 지위와 타이틀 없는 <그냥 나>를 인식해 준다는 것이다.


 한동안 아침을 밖에서 먹던 남편이 이번 주부터 다시 집에서 아침을 먹는다. 아침 시간엔 출근하기 싫어서 어떻게든 눌러앉고 싶고 스트레스를 잔뜩 받은 모습이라 남편은 늘 여유가 없다. 등교 직전의 아이들 같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다.

'빨리 가야 해'를 입에 달고 있으면서도 몸은 느릿느릿 움직이고, 아무리 밥을 빨리 차려줘도 늦게 먹는다.


그런데 오늘은 남편 생일이기에 해 뜨기 전 어둑할 때 일어나 식사 준비를 하는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제 몸 하나 챙기기도 힘들어하던 사람인데?


 차려준 김에 졸리지만 자리에 앉아 남편이 밥 먹는 걸 가만히 보았다.

"애들이랑 방학 때 집에 있으니까 어때? 힘들지 않아?"

돈과 일, 성취적 목표와 관련 없는 질문이 아침 시간에 시작되었다. 흔치 않은 순간이다.


 어제 받은 지난달 나의 연주 영상을 보여주었다. 장애인단체 지원 사업으로 마련한 랜선 연주회 영상이다. 운 좋게 지인 분의 주선으로 현악 4중주 공연 영상도 찍고 연주비까지 받아왔다. (감히 아마추어로 악기를 하는 내가...)

짧은 영상이지만 전문 작업을 해 주셔서 퀄리티 좋은 연주 영상을 소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남편에게 슬쩍 보여주니 놀랍게도 영혼 없는 반응 대신 작지만 진정한 관심을 보인다.


"오우, 잘 만들어서 주네. 자막도 나오고. 이건 누가 주최하는 거야?"

"카메라는 몇 대야? 어떻게 찍어줘?"


내가 바라는 <이름 불러주기>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사소한 리액션, 그 자리에 마음이 있어주는 것, 나의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난 일에 대한 관심.


남편은 일하러 떠닜지만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오늘의 놀라운 변화를 다시금 파동처럼 느껴본다.




성취는 짜릿하고 황홀하다.

행복은 사소하고 조용하다.

인간의 삶에는 두 가지 다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성취는 잘 보이고 행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설령 찾아온다 해도.


행복이 찾아오거든

눈처럼 녹아버리기 전에

충분히 느껴보자.

깊은 행복은 파동과 같아서

중심이 존재하는 한

약간 떨어진 곳에서도

계속 느낄 수 있다.


행복의 파동이 쌓이면

성취를 이뤄갈 힘이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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