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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Oct 28. 2021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 가을 아침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날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원격수업과 등교 수업을 번갈아 하는 아이 둘을 학교에 보내며, 이사 및 인테리어 공사 준비를 하고, 남편 병원일을 돕고, 브런치에 글을 쓰고, 틈틈이 악기 연습을 하고, 기본적으로 3-4가지 일이 고정으로 순환하는 집안일을 한다. 이것이 나의 일상이다.

 언제나 그렇듯 주말은 내게 휴식보단 긴장의 연속인 경우가 많다. 원래는 월요일이 가장 한가한데, 어제는 아이들을 학교에 태워다 주고 다시 고장 난 밥솥을 들고 AS 센터를 방문하느라, 도서관에 연체된 도서를 반납하느라 쉴 틈이 없었다. 다녀와서 집안일을 하고 나니 둘째가 집에 올 시간이었고, 1시간 후 첫째가 오면 먹을 것을 챙겨주고 다시 둘째와 수영을 간다. 그런데 어제는 가다가 알레르기 결막염 증세가 있어 돌아왔다. 안과까지 갔었지만 대기가 너무 길어 돌아왔다. 집에 오니 첫째가 홈캠핑을 해야겠다며 당장 마트에 가자해서 차를 끌고 마트에 가서 원터치 텐트와 조명, 캠핑 의자 등을 사서 들어왔다. 다시 저녁을 해 먹여야 한다. 어휴.... 그리고 캠핑하느라 들떠서 늦게 자는 아이들.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오는 남편.


그래서 나에게 휴식은 오늘에야 가능했다. 첫째가 원격수업 중이었지만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 카페에 가서 플랫화이트와 토스트를 사 온다. 커피는 근처에서도 살 수 있지만 일부러 멀리까지 가 본다. 초록과 노랑, 붉은색이 섞여 있는 이 아름다운 가을을 조용히 즐겨 본다.


 내가 사는 신도시에는 고층 아파트가 숲처럼 펼쳐져 있다. 어린시절 9층짜리 아파트도 내겐 너무 높아 보였는데. 때로는 그 높은 건물 사이로 걸어가는 내가 너무 작아보인다. 그런데 오늘 걷는 우리 동네는 내 마음이 여유로워서인아늑하게 느껴진다.

 가로수에는 대비 색인 초록이 빨강과 어우러져있다. 둘 사이에 노랑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간과 공간 역시 대비되는 많은 것들이 공존하는 세상이다. 어른과 아이, 전쟁을 겪은 세대와 밀레니얼 세대, 외국인과 한국인, 남자와 여자, 주류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마이너리티.

초록에서 노랑으로, 노랑에서 붉은 색으로 넘어가는 계절이 스펙트럼처럼 느껴진다.


 계절의 변화를 잘 느끼지 못할 만큼 여유없이 살아오기도 했지만, 일을 쉬면서 느낀 계절의 변화는 그때그때 달랐다.

나의 내면에 어떤 생각이 가득한지에 따라 보이는 것도 달랐던 것이다. 지금 내겐 양끝에 서 있는 대비되는 가치들이 어떻게 화해하고 공존할 수 있는지가 관심사인가보다.

 

 박용만 회장의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를 보면,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입니까?"

라는 질문에 그는 잠시 생각해 본 뒤 "어제저녁 식사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가족과의 저녁식사 시간,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다."고 대답한다.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오징어 게임의 오일남을 연기한 오영수 배우처럼,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 배우처럼 70대에도 월드 스타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그 순간만이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나의 오늘 아침 산책처럼 특별할 것 없고 누가 알아주지 않는, 돈 되지 않는 산책이야말로 나에겐 행복의 순간이다. 이 아름다움을, 이 여유로움을 예전엔 알지 못했구나. 계절은 오고 가고 매년 반복되었는데 나는 몰랐구나.

가을 아침 공기를 한껏 들이마셔 본다. 나의 이 행복한 시간을 기억하리라. 들숨에 한껏 담아 집으로 가져가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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