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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Apr 28. 2022

의미론자와 당위 주의자

 Pachinko를 보며 전쟁과 불안에 대해 생각하다.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역사가 우릴 망쳐놓았지만, 뭐 상관없다.


소설 <파친코> 원문의 첫 문장이다.


책을 완독 하지 못한 채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지만, 이 드라마의 기본적인 서술 방식은 피해자의 입장임에독 놀랍도록 담담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7화에서 보여준 관동 대지진과 조선인 학살 사건은 너무도 가슴이 아팠고 생생하게 느껴졌다. 전쟁 중이 아닌데도 인간이 저렇게 갑자기 죽음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과연 인간이 동물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등골이 서늘해지고 울분이 터진다.



관동대지진


1923년 9월 1일 일본 간토·시즈오카(靜罔)·야마나시(山梨) 지방에서 일어난 대지진. 12만 가구의 집이 무너지고 45만 가구가 불탔으며, 사망자와 행방불명이 총 40만 명에 달했다. 다음날 출범한 제2차 야마모토(山本) 내각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사태 수습에 나섰으나 혼란이 더욱 심해져가자, 국민의 불만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한국인과 사회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는 소문을 조직적으로 퍼뜨렸다. 이에 격분한 일본인들은 자경단(自警團)을 조직, 관헌들과 함께 조선인을 무조건 체포·구타·학살했다. 이 사건으로 몇 명의 한국인이 학살당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2천 명·3천 명·6천 명 등의 설이 있다. 일본이 이 진재에서 입은 총피해액은 65억 엔이라 하며, 그 후 이의 복구를 위해 노력했으나, 무고한 한국인을 수천 명씩이나 학살한 일본 군벌의 잔학행위는 역사상 씻을 수 없는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    
  한국 근현대사 사전, 2005. 9. 10., 한국사 사전 편찬회




이 시대의 아이들은 의미론자들이고, 부모들은 당위 주의자입니다.

           김현수 <요즘 아이들 마음고생의 비밀>중에서

      

   파친코를 보고, 김현수 선생님의 의미론자와 당위 주의자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는 공부도, 취업도, 결혼도, 그 모든 경쟁도 이유를 묻지 말고 당연히 해야 했다. 


 '왜' 라는 질문은 인생의 효율을 떨어뜨렸고 돈이 되지 않는 일은 쓸데없는 일에 속했다. 넓은 의미의 공동체의 이익보다는 내 가족의 안위와 부의 축적이 우선이었다.

 

 전쟁을 겪은 세대와 전쟁 직후의 세대는 생존 불안에 시달렸으므로 당연히 나와 내 가족이 우선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요건, 거주할 땅과 집, 소유할 재산, 그리고 재건해 나갈 사회에서 필요한 학력과 그에 따른 사회적 지위를 위해 경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전쟁 중인 상태, 혹은 전쟁 직후 파괴된 사회에서는 그렇다.


그런데,  다음 세대도 그렇게 살아야 할까? 아니, 그렇게 살면 어떻게 될까?

우선,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고로 다시 되풀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동안 우리는 과학과 문명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우리를 지킬 수 있는 무기와 힘, 자원이 없었다. 강대국과 외교를 하려면 협상할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내놓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국민도, 왕실도, 그 어떤 정치적 지도자도 우리를 지켜낼 그 시대에 맞는 힘을 갖추지 못했다.

우리는 식민지 백성으로서 숱한 수탈과 학대, 학살을 당하고도 일본이 패전했을 때 패전국 포로, 패전국의 식민지로서 또다시 수난과 모멸을 견뎌야 했다.


 또한 내부의 갈등이 전쟁처럼 펼쳐진다.

너무 가난하고 아무것도 없을 땐 경쟁을 이용해서라도 실력을 키우고 그 분야를 발전시키는 것이 국가의 목표였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발전과 부를 이룬 후에도 여전히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함이 목적이라면, 그것은 사회 전체와 그 분야를 위해서라기보다는 개인이, 각자가 더 높이 올라가는 것에 기쁨과 안정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문제는 지나친 경쟁이 갈등을 부르게 되고 협력을 방해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의미를 추구할 수 없게 된다.

열심히 사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 무언가를 크게 희생해야 하는 경우는 어떨까? 우리는 아이폰과 AI가 존재하는 코로나 비대면 시대에 살면서도 50년, 100년 전 전쟁과 식민지 사회의 삶을 살게 되는 건 아닐까? 고민해야 할 문제들은 따로 있는데, 여전히 총성이 울리고 배를 곯는 그 시점으로 들어가 끊임없이 불안에 떨며 자꾸만 무언가를 쌓고 지켜야한다는 생각으로 가득찬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쌓아올린 것은 궁극적으로 의미와 행복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파친코의 작가 이민진이나, 영화 '미나리' 감독 정이삭은 의미론자들이다. 그들은 이미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소위 상위 집단에 속할 수 있었고 부의 축적. 세습, 사회적 지위를 지켜가며 부모님이 원한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택한 것은 부모님 세대의 지나간 삶에서 오늘의 나를 발견하고 의미를 찾아가는 일이었다. 그 길은 비효율적이고, 외롭고, 불확실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어떨까?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 우리의 뇌를 읽고 조정하는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어, 유발 하라리의 말대로 <의식과 지능이 분리되고 인간이라는 존재의 정의가 불분명해진 지금>, 우리는 또 다른 21세기형 무기 앞에서 우리를 지킬 준비가 되어 있을까? 언제 핵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이 한반도에 살면서 지나간 전쟁의 의미와 왜 우리를 지키지 못했는지,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준비해야 하는지 학교에서, 가정에서 배울 기회가 있을까?


자칫하면 종을 말살시킬 수도 있는 각종 무기와 환경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의 관심은 당장 인 서울 대학이고 스펙이고 취업이다. 영내 집 마련이다.


 이번 대통령 당선인 내각의 후보자들을 보니, 이전 정권과 다를 바 없이 내 자식에게 부와 사회적 지위를 세습해 주기 위해 법의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한 흔적이 보인다. 나와 내 가족이 소유할 부동산, 기록으로 남게 될 학력과 차지할 사회적 지위, 세습할 부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대한민국 부모로서 당연한 의무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모두가 그렇게만 사는 사회가 옳은 것일까?


일부러 가난해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이 생존보다 의미를 추구하면서 살아가도록 격려해주고 싶다.


 내가 어떤 능력을 가진다 한들 북한의 핵무기를 포기시킬 수 없고 인공지능의 무한한 발전과 인간에로의 침투를 막을 수 없겠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과거를 돌아보고 인간에 대해 고민하며 미래를 상상하고 예측하고 준비하도록 가르치고 싶다.


 그리고 오늘을 후회 없이 살도록 하고 싶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큰 파도에 휩쓸려 갈지라도 그전까지 나에게 주어진 인생을 후회 없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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