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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미진진한 독자 Nov 01. 2023

아빠를 지킬&하이드로 만드는 앵순이

아빠는 이중인격자

부모와 자식 사이에 큰 소리가 오갈 때가 있다. 아이들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행동을 하거나, 정리 정돈 및 청소가 되어 있지 않았을 때, 아빠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다행히 성적으로 혼을 내거나 화내는 일은 없다(성적으로 화를 냈다면 화병 걸렸을 수도 있겠다).


작은 습관 하나하나가 부모에게 모두 잔소리거리다. 옷을 뒤집어 벗어놓거나 양말을 말아서 벗어놓는 행동, 흩어져 있는 지우개 가루, 치우지 않은 과자봉지, 닦지 않은 음료 흘린 자국 등 아빠의 심기가 매우 불편한 날 어김없이 두 아이는 아빠에게 호출되어 두 손을 공손하게 모으고 아빠의 훈계를 듣고 있게 된다.


아빠는 어째 잔소리하다가 더 열이 받는지 목소리에 점점 노기(怒氣)가 느껴진다. 습관이라는 습관은 모두 잔소리의 소재가 되어간다. 밥 먹는 태도부터 시작해서 용돈 사용하는 사용처까지 한 번씩은 아빠의 입에 오르내리는 단골 소재들이 다시 등장한다. 습관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 내려가고, 행동은 과거부터 현재를 지나 미래에 닥칠 염려되는 부분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마 아이들도 아빠가 화나서 소환하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근엄하고 진지한 분위기에 반려조 앵순이가 동참하기 시작했다. 아빠가 아이들을 혼내고 있으면 새도 분위기를 파악한다. '포르르' 날아와 아이들의 어깨에 앉아서 아빠의 잔소리를 함께 감당해 준다. 마치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격언을 아는 것처럼 두 명이 감당하고 있는 아빠 잔소리의 무게를 셋이 나누어 듣고 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아빠의 분노하는 감정과는 다르게 엄마는 왠지 그 모습이 대견하고 감격스럽게 느껴진다.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양껏 한 뒤 아빠는 갑자기 '앵순이! 앵순이!' 하면서 자신에게 날아온 앵순이를 바라본다. 목소리가 급 다정다감하게 바뀌었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여길 만큼 아이들을 대할 때의 노기 섞인 목소리 톤과는 180도 다른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앵무새를 불렀다. 아이들도 아빠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앵순이를 부르는 것을 듣고 마치 지킬 앤 하이드를 본 것처럼 놀란다. 아빠를 이중인격자로 만들 수 있는 존재가 앵순이다.

앵순이 덕분에 분노 가득했던 공기가 한 번에 사라진다. 부정적 감정은 빨리 잊는 게 상책이다. 아이들은 아빠의 잔소리 폭풍에서 든든하게 아군이 되어준 앵순이에게 깊은 교감을 느낀다. 말로 전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교감이 아빠 덕분에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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