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게임과 나의 독서 사이

독서와 게임이 대동소이하다고?

by 흥미진진한 독자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 게임과 독서라는 두 행위는 하늘과 땅 차이다. 아이들에게 독서는 권장하지만, 게임은 권장하지 않는다. 독서중독이라는 표현은 왠지 뿌듯한데 게임중독이라는 단어는 벗어나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독서와 게임은 효용성이 같다는 비상식적인 논리를 가진 분이 계시니 바로 우리 집 그이다.

남편의 논리를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게임은 돈이 들지 않는다.

친구를 만나려면 밥도 사 먹어야 하고, 수다를 떨려면 술값이 든다. 밖에 나간다는 것은 돈을 소비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집에서 혼자 컴퓨터만 있으면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게임은 훌륭한 살림 절약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린고비 남편답게 절대 게임 캐릭터나 무기에 돈을 쓰지 않고 철저하게 시간을 투자해서 레벨 업한다.


내가 보기에는 시간도 돈인데 시간이 줄줄 새어나가는 것에는 감흥이 없나 보다. 돈 쓰면서 게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이 의견은 수용하겠다.



둘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

독서는 읽고 생각하는 사고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온전히 쉴 수 있는 취미가 아니라고 남편은 생각한다. 내가 책을 읽고 있으면 공부하지 말고 쉬라고 한다. '책 읽는 게 무슨 공부야. 나는 이게 쉬는 건데?'라고 말하면 남편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멋진데? 대단한데? 이런 감정은 전혀 없다.) 그리고 게임이 얼마나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는지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캠핑하러 가서 불멍, 물멍이라는 '멍 때리'는 행위를 집에서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게임이라는 것! 실제로 남편은 LOL(리그오브레전드) 게임 방송을 틀어놓고 재미있게 보는 듯하더니 멍하게 있다 잠들어 버린다. 남편에게 게임 방송은 '멍 때리기'가 아니고 그냥 '멍'이다. 멍멍멍!


셋째, 근심·걱정을 잊게 해 준다.

살면서 걱정거리는 누구나 있다. 계속 생각을 붙들고 있으면 걱정이 쌓인다. 하지만 게임을 하는 동안만은 모든 걱정을 힘들이지 않고 끊어 낼 수 있다는 것이 남편의 게임 예찬론이다. 그동안 살아온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인정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근심을 잊겠다고 게임 삼매경에 빠져있으면 옆 사람 근심·걱정이 늘어난다는 생각은 못 한다. 게임을 할 때 내 표정 좀 봐봐.



넷째, 게임은 주도적인 삶을 위한 도구다.

독서는 누가 써 놓은 이야기를 읽는 수동적인 과정이라면 게임은 내가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능동적인 행위라고 남편은 말한다. 같은 게임이지만 나의 선택에 따라 이야기 전개가 달라지기 때문에 할 때마다 새롭다는 논리! 집안일은 능동적이지 못하면서 게임에만 능동성을 발휘하는 모습이 탐탁지 않다.


남편이 게임 방송을 보거나 게임하는 행위를 싫어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돈을 쓰는 것도 아니고 성인이 본인 여가 시간을 본인이 활용하겠다는데 나는 왜 그 모습에 화가 날까? 아마 게임은 나쁘다는 고정관념과 시간 사용의 융통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갑자기 물이 끓어 넘친다고 할 때, 게임은 중간에 STOP 했다가 다시 할 수 없다. 하지만 독서는 쉬었다가 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당연히 움직이게 되는 상황이 싫다.

독서는 훌륭한 것이고 게임은 천하에 쓸모없는 것이라는 아내의 생각에 반해 게임도 장점이 있다고 꾸역꾸역 주장하는 남편의 논리가 신선한 점도 있다.


사회적 통념에 사로잡혀 가치를 판단하는 나!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남편?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참 잘 어울린다. 자석도 N극과 S극이 붙는 법이다.



(ft. 열띤 게임예찬론에도 불구하고 자식이 게임하는 모습은 보기 싫나 보다. 이거 완전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아냐? 결국 게임할 때 눈치 안 보고 하려고 본인에게만 통하는 억지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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