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을 교훈 삼아 글을 묶어 브런치 북을 만들었다. 브런치 북으로 만들면서 아들이 말한 '더 이상 피해자 만들면 안 된다'는 말이 다시금 생각난다. 아들은 혹시나 부모님들이 이 글을 읽고 '이 정도면 아이들 핸드폰 없어도 살 만하겠는걸?'이라고 여길까 봐 걱정한다. 만약 자녀들 스마트폰 사용 습관이 마음에 안 들면 '너희 쌍둥이들처럼 스마트폰 없이 살게 해 줄까?'라고 협박(?)용으로 이용되는 건 아닌지 의심하기도 한다.
엄마가 쓴 글이 조회수가 많이 나오면 좋아하면서도 내심 초조해하는 얼굴빛이다. (아들아, 엄마가 그렇게까지 영향력 있는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란다. 괜한 걱정이란다)
이 글의 내용을 싫어할 사람들이 또 있다. 핸드폰을 만드는 삼성, 애플과 같은 전자기기 회사와 SKT, KT, LG유플러스 같은 통신 회사에서 이 글의 존재를 안다면 금서로 정할지도 모르겠다. (금서로 정해도 좋으니 제발 읽어만 주셔도 감사하겠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적을 위해서는 상품을 팔아야 하고, 어른만 고객이 아니라 심지어 초등학생까지 고객이 되는 전자기기 시장에서 '휴대전화 없이 사는 삶'에 대한 도전 이야기는 분명 자본주의의 역린을 건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분위기에 잘 휩쓸린다. 아이가 학교를 다녀와서'나만 핸드폰이 없어'라고 말하면 그때부터 부모들의 고민이 시작된다. 아이들 모두 스마트폰이 있다는데 우리 아이만 없다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까 봐 사주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생긴다. 하지만 이 글을 읽은 부모라면 '중2도 핸드폰 없이 잘만 살더라'라고 생각하며 조금이라도 늦게 전자기기를 사주는 부모님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아들이 우려하던 그런 상황!
아들의 삶에 스마트 폰이 등장하면서 올바른 사용 습관을 키우기 위해 온 가족이 고군분투했다. 다양한 기술적 제한과 규제를 시도해 보았지만 결국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인 상황에서 고양이를 탓할 수는 없다. 그냥 생선을 맡기지 않는 방법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처음부터 없었으면 금단증상을 겪지 않아도 되겠지만 생선을 줬다가 뺏으니 그 맛을 본 고양이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의 반 타의 반 잘 견뎌냈고 지금은 스마트 폰 없이도 불안해하지 않고 융통성을 발휘하며 잘살고 있다.
맹자 등문공편에 이웃집 닭을 매일 훔치는 사람 이야기가 나온다.
날마다 이웃집 닭을 훔치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그 자에게 '이런 짓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다'라고 일러주자, 그 사람은 '훔치는 숫자를 차츰 줄여 한 달에 한 마리씩 훔치다가 내년까지 기다린 후에 그만두겠다'라고 말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 사람은 '훔치는 숫자를 차츰 줄여 한 달에 한 마리씩 훔치다가 내년까지 기다린 후에 그만두겠다'라고 말하는 이야기가 있다.
나쁜 습관은 단번에 끊어 내기는 쉽지 않으니 조금씩 줄여서 없앤다는 생각이 합리적일까?
스마트 폰을 똑똑하게 사용하지 못하고 중독 증세를 보여 장점보다 단점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 때는 도마뱀 꼬리 자르듯 바로 그만두어야지 조금씩 줄여보겠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어른이 되면 스마트 폰 없이는 사회생활을 할 수 없어 의식주처럼 반드시 지녀야 하는 물건이 된다. 스마트 폰이 없어도 이해받고 지낼 수 있을 때 불편하게 살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핸드폰 게임보다는 친구와 함께하는 운동을 좋아하고, SNS의 단편적 정보와 의미 없이 소비되는 영상보다는 책을 읽으며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부모 마음에 불편한 길을 선택했다. 아이가 커서 부모가 된다면 지금 엄마, 아빠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