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핸드폰을 없앴다는 사실을 직장동료에게 이야기하자 그 정도면 아동학대라고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웃어넘겼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진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동학대는 신체학대, 정서학대, 성학대, 방임이 있다. 핸드폰을 사주지 않는 행위는 정서학대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서적 학대란? 성인이 아동에게 행하는 언어적 모욕, 정서적 위협, 감금이나 억제, 기타 가학적인 행위를 말하며 언어적, 정신적, 심리적 학대라고도 한다.
<아동권리 보장원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정서적 학대 예시>
다른 예시는 해당 사항이 없어 보이는데 '아동의 정서 발달 및 연령상 감당하기 어려운 것을 강요하는 행위' 부분이 마음에 살짝 걸린다. 감금이나 약취 및 유인, 아동 노동 착취 같은 묵직한 이야기가 뒤따르고 있지만 '연령상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표현에 시선이 간다.
중학생이 핸드폰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일까? 모두가 가진 것을 소유하지 못한 박탈감을 정서적 학대로 연결 지을 수 있을까? 금전적으로 힘든 상황이라 요금을 낼 수 없어 핸드폰을 소유하지 못하는 경우라고는 대한민국에서는 생각지 않으니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까? 생각이 많아진다.
예전에는 집이 부자인 친구들만 휴대전화가 있었다. 그때는 박탈감보다는 선망과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가진 자보다 가지지 못한 것이 평범한 경우에 속했기 때문에 가진 자가 특별했다. 하지만 모두 가지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없는 자가 특별하고 특수한 경우가 된다.
<멋진 신세계>라는 소설에서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는 야만인 '조'라는 사람이 나온다. 심지어 고생하는 권리, 걱정하는 권리를 주장한다. 그는 불운이나 불쾌한 상황도 없으며, 고통을 인내할 필요도 없는 세계. 도덕적 훈련과 인성도 약물로 해결할 수 있는 유토피가 같은 멋진 신세계를 역겨운 문명의 산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림이었다. 오히려 권리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 것들의 가치를 주장하며, 회피하고 제거하고 싶은 감각들이 인간다움을 만들어 주는 재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물질이 풍부한 상황이 정신적 풍요로움으로 비례하여 나타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결핍이 필요한 건 아닐까 생각한다. 모든 것에는 대가가 있고 가치 있는 것은 특히 대가가 크다. 우리가 치러내고 있는 대가가 큰 걸로 보아 이 일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닐까 뒤집어 생각해 본다.
남들이 볼 수 없는 세계, 인지하지 못하는 세계를 찾아내고 발견하는 것이 창의성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조금 불편하고 고통스럽지만, 핸드폰 화면이라는 작은 세상에서 벗어나 넓고 큰 세계를 꿈꾸기 위한 대가라 생각하면 부모 입장만 대변하는 말일까? 세상의흐름과 역행하는 불편할 권리를 통해 정서적 학대가 아니라 정서를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