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만나는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처음 교환하는 것이 전화번호다. 서로 알아가는 첫 시작이 되는 매개물이 전화번호인 것이다. 학교에서도 새 학기가 되면 본인 전화번호와 부모님 전화번호를 조사하지 않던가? 명함에 전화번호가 적혀있지 않다면 앙꼬 없는 찐빵이라 여길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면 주민등록번호 13자리가 생기며 이 나라 국민이 되었음을 공표한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나의 존재를 상징하는 번호가 필요한데 그것이 전화번호 11자리의 역할이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 아이들은 아직 자신을 표현할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태이다.
친구들에게 연락처를 알려줄 때 엄마 번호를 알려주면 첫 반응이 부담스러워서 연락을 못 하겠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 친구 전화번호를 알아 오고 본인들이 연락하고 싶을 때 엄마 핸드폰으로 친구에게 전화한다. 그러고 보면 한쪽은 마음대로 연락하고 다른 쪽은 연락을 못 하니 뭔가 균형이 맞지 않은 듯하기도 하다. 연락의 일방향성이 우리 아이들 입장에서 본다면 크게 손해 나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연락은 닿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특히 컴퓨터게임을 할 때 서로 연락해서 함께 하는 경우가 많은데, 본인이 게임을 할 수 있을 때만 친구에게 연락하니 게임 시간을 주도적으로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 엄마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자는 문자를 보낼 수 있는 담력을 가진 학생이 없어서 다행이다.
친구들이 같이 게임을 하자고 연락이 왔더라면 오만 핑계를 대며 어떻게든 컴퓨터 게임을 하고 말 아이들이기 때문에 친구들의 연락이 봉쇄된다는 것은 게임 시간이 줄어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숫자는 '유일한 세계언어'다. 나라별로 언어도 다르고 표기 체계도 다르지만 희한하게 숫자는 아라비아 숫자를 전 세계에서 쓰고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쓰는 전화번호는 전 세계로 소통하는 문이라는 의미다.
아이가 대한민국을 넘어서려 할 때, 사회적 존재로 자신의 고유성을 정립해야 할 때, 그때 휴대전화를 손에 쥐어 주고 세상 밖으로 내보내야겠다. 주민등록번호만큼 꼭 필요한 숫자가 휴대전화 번호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