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골목길을 걸어가는데, 아들이 말하기를 "엄마 여기가 '노다지' 골목이야."라고 한다. 노다지라고? 무슨 말인가 싶어 들어보니 빈 병이 많이 나오는 곳이라고 한다.
엄마가 주는 카드는 쓸 때마다 가게 위치와 가격 추적을 당하기 때문에 군것질하기 위해 현금이 필요했고, 빈 병을 주워 현금으로 바꿔 사용했던 것이다.
아이들은 길에 떨어진 돈은 줍기 힘들지만, 길에 버려진 병은 줍기 쉽다며 공병 또한 돈이라며 새로운 발견을 기뻐했다. 솔직히 엄마 입장에서는 아들을 거지형색으로 만든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본인들이 고생을 사서 하겠다는데, 어떻게 하나 지켜보기로 했다.
소주병 100원, 맥주병 130원. 동네 한 바퀴 돌고 오면 아이스크림 2개 정도는 사 먹을 돈이 나온다며 본인들이 노동해서 번 돈이니 뭘 사 먹든 엄마는 상관하지 말하는 뉘앙스다.
어쩐지 운동 안 하던 녀석들인데 자주 산책 하고 오겠다고 해서 이상하게 여기던 차였다. 엄마에게 이실직고한 이후에는 당당하게 '산책하고 오겠다.' 이야기하고 나간다. 핸드폰도 없이 다니는데 혹시나 골목을 다니다가 위험할까 싶어 큰길로 다니라고 잔소리한다. 한동안 우리 집에서 산책하러 간다는 말은 동네를 돌며 빈 병을 주우러 가겠다는 말이었고, 운동도 하고돈도 벌고 그야말로 도랑치고 가재 줍는 심정으로 아들은 산책하러 다녔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을까? 아들은 동네 생태계 흐름을 읽어내고 있었다. 어느 집 앞에 맨날 OO맥주병이 자주 나오는 걸로 봐서 그 집주인은 OO술을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또 어디 어디 집은 목요일 저녁이면 술을 많이 드시는지 금요일에 가면 항상 술병을 많이 수거할 수 있는 노다지 장소가 된다고 한다. OO골목에 있는 집은 와인병이 많이 나온다고도 했다. 그래서 돈이 안 된다며 아쉬워한다. (와인병도 주워서 가게에 가져갔는데, 가게 아저씨가 안 받아 준 이후로 와인병만 보면 아쉬워했다. 국산 술을 마셔야 한다고 열변을 토한다.)
몇 년 동안, 이 동네에 살면서, 큰길만 다녔지 골목골목은 다녀볼 생각도, 다닐 기회도 없었다. 하지만 아들 녀석은 불온한 활동에 돈을 쓰기 위해, 혼나지 않고 잔소리 듣지 않고 군것질하기 위해 온 동네 방방곡곡을 매의 눈으로 병을 찾아 돌아다니며 집집마다의 특이점을 발견하고 있었다.
빈 병 줍기 용돈을 맛본 아들은 친구들에게도 공병 전도사가 되어 동네를 돌아다니며 병 줍는 놀이를 제안했다고 한다. 아들 친구들은 부끄러워서 못 하겠다고 했지만, 친구들을 데리고 다니며 병을 주웠고, 가게에 대표로 가서 병을 팔아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먹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어느 날 아들이 엄청나게 아쉬워하며 집에 들어왔다. 자신이 매번 가던 노다지 장소를 간발의 차이로 어떤 할머니께서 병을 모조리 주워 가셨다고 한다.
아차! 싶었다.
아이들은 가벼운 용돈벌이로 병을 줍고 다녔지만, 최저생계비로 살고 계신 노인분들은 공병을 판 돈이 꼭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아들의 빈 병 줍기가 생활이 어려운 분들에게는 피해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빈 병이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물건일 수도 있었던 것이다.
아이에게 내용을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하니 이해는 하지만 포기할 수 없다는 눈치였다. 엄마 몰래 한두 번 더 산책하러 나가는 듯했지만 결국 덥고 힘들다며 공병 아르바이트 생활을 끝냈다.
술을 마시고 병을 버릴 때 병 안에 쓰레기나 담배꽁초를 넣지 말자! 병을 팔기 위해서는 병 안에 있는 쓰레기를 제거해야 하기 때문에 병을 세척하는 사람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