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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미진진한 독자 Sep 07. 2023

엄마가 불편한데 휴대전화 사줄까?

아이들의 반응은?


아이가 핸드폰이 없으면 아이만 불편한 것은 아니다. 부모도 불편한 부분이 꽤 있다.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실시간 위치 확인이 안 되기 때문에 걱정되기도 한다. 전달사항이 생겨도 핸드폰이 없기 때문에 집에서 얼굴을 봐야 이야기할 수 있다. 부모도 기다림의 미학을 배우게 된다.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큰 마트가 있어 급하게 필요한 식재료를 심부름시키고 싶지만, 전화를 할 수 없다. 집에 오면서 사 오면 금상첨화인데 연락할 방도가 없어 내가 직접 가야 하는 불편한 상황도 있다.


아이들 학원 근처에 내가 좋아하는 꽈배기 맛집이 있다. 출출해서 꽈배기에 커피 한잔 마시면 좋은 타이밍인데 학원 마치고 집에 올 때 사 오라고 문자를 보낼 수 어 입맛만 다시며 아쉬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 엄마의 텔레파시를 받았는지 종종 사 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산타할아버지 선물 받듯 꽈배기를 받는다)


아이들이 주말 학원 보충 수업을 잊어버리고 친구들과 놀러 나갔다. 아이가 등원하지 않아 엄마 핸드폰으로 학원에서 연락이 온다. 그러나! 아이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다. 해지기 전에는 들어오는 게 우리 집 룰이니 기다리는 수밖에. 보충 스케줄을 아이도 잊고 엄마도 깜빡하고 있었던지라 뭐라 혼낼 수도 없다. 아이는 즐겁게 놀다 해맑게 들어다. 놀 때 아무도 건들지 못하는 상황은 핸드폰이 없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혜택 중 하나다.


핸드폰이 없으면 부모도 아이만큼 힘들다. 이런저런 사건을 겪다 보니 엄마가 먼저 아이에게 핸드폰을 제안할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공짜로 줄 수는 없는 법!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성적으로 내기하고자 마음먹는다. 문제는 평균을 몇 점으로 잡아야 아이가 도전할 만하다고 여길까, 신중하게 생각하고 엄마 혼자 결정한 평균 90점. 이 정도면 적당하다고 생각해 목표로 설정했다.


둥이들에게 크게 인심 쓰듯 시험 평균 90점 넘으면 핸드폰을 사주겠노라고 선한다. 그렇게 가지고 싶었던 폰인데 엄마의 제안을 기뻐할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시큰둥하다.


"엄마, 저희 핸드폰 없어도 살 수 있을 만큼 적응해서 괜찮아요. 안 사주셔도 돼요"


"엉? 왜? 조금만 열심히 해서 90점 받아보자. 이제 중3인데 공부도 해야지. 성적도 올리고 핸드폰도 당당하게 소유하고, 일석이조잖아? 안 그래?"


"엄마 평균 90점은 그냥 안 사주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에요. 저희 진짜 폰 필요 없어요."


"그럼 88점으로 해줄 게 어때? 팔팔 올림픽도 있고 팔팔한 기운도 날 것 같은 행운의 숫자 88점 어때?"


"정말 핸드폰에 관심 없어요. 무리하지 않으셔도 돼요, 엄마"


엄마 무리하지 말라니! 현실적인 게 아니고? 무리한 상황을 제시했단 말인가?

이 녀석들 핸드폰 소유욕보다 공부 회피성 욕구가 이렇게도 크다니.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되는데. 그것도 싫은가 보다. 내가 아이들에게 매달리는 형세가 되었다. 내가 계획했던 이야기 전개는 이런 흐름이 아니었는데 역시나 예측불가한 아이들이다.


아들의 모습을 보니 <여우의 신포도> 우화가 생각난다.


배고픈 여우가 돌아다니다 포도밭을 발견한다. 하지만 포도가 너무 높게 달려있어 점프하고 나무를 타봐도 포도에 닿을 수 없다. 먹지 못하게 되자 여우는 "저 포도는 어차피 신 포도를 꺼야!"라고 말하며 가버렸다는 이야기다.


우리 아이들에게 평균 90점과 핸드폰은 신 포도와 같은 존재일까? 몇 번 점프도 해보고 나무도 올라가 보려 했던 여우처럼 시도라도 해봤으면 좋았을 텐데 포기가 LTE급으로 빠르다.


<여우의 신포도> 우화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 정신 승리로 보기도 하지만, 할 수 없는 일에 집착하기보다 깔끔하게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는 이 더 낫다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힘든 목표를 설정해서 아등바등 힘들게 살기보다 처음부터 출발선에 서는 행위 자체를 거부하는 아이들이다. 게으른 게 아니라 긍정적인 마음의 소유자이자 정신적 평화주의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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