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도 역은 졸다가 실수로 다녀온 적이 있다. 하지만 당고개 역은 가 본 적이 없다. 시나리오가 써지지 않아 직접 가 보았다. 매일같이 타는 4호선, 이제야 종점을 가 보다니 나도 참 늦다.
온갖 식당들이 다 저렴했다. 저녁밥을 배불리 먹고 간 게 아쉬울 정도였다. 개중에 아주 신박한 가게가 있었다. 손님이 알아서 이미 조리된 메뉴들을 골라 안주 삼아 술을 마시는 가게였다. 처음 보는 형태의 운영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아 다음 날 먹을 샌드위치만 한 개 샀다. 그런데도 사장님은 내게 남편 분이 만드셨다며 이말년 캐릭터를 패러디한 인형을 선물로 주셨다. 심지어 커다란 뚱캔 탄산음료도 개당 천 원에 팔더라. 남는 게 있긴 할까.
사장님은 여유로운 분이셨다. 가게 밖 테이블에서 숯불을 피워 반조리 껍데기에 소주를 드시던 남편 분 또한 닮아있었다. 언젠가 내가 원하는 미래가 결국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대단히 성공한 사람이나 대단한 부자가 되고 싶지 않다. 생각만 해도 피로가 몰려온다. 나의 행복은 소박하다. 좋은 사람, 좋은 음식, 좋은 작품. 이 세 개면 된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괜찮은 작품을 감상하고 이에 대해 생각을 나눌 차분한 사람들.
전에는 이런 꿈을 가지는 게 죄스러웠다. 한 사람의 몫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생각을 한다. 소박하고 행복한 내 삶을 사는 게 중요할까, 화려하고 고된 성공을 통해 세상에 기여하는 게 중요할까. 우리 할머니는 평생 나를 고생않고 평범케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다더라. 그 기도를 마지막으로 무의미하다 여겼던 게 스물 두 살 때였나.
길다란 역의 종점에서 삶의 끝을 고민한다. 어느 쪽도 행복하기만 할 수는 없다. 삶은 원래 공허한 것이고, 나는 원래 부족한 사람이다. 행복을 찾는 자체로서 욕심일 수 있다. 당장 단편 시나리오 한 편도 완성하지 못하는 내가 어디 가서 4년제 영화과를 졸업했소 하고 명함을 내밀 수나 있겠나.
영화를 사랑하면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가만히 감상이나 하겠지. 모두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제 얘기를 외치고 싶어 견디지 못해 작품을 만들러 뛰쳐 나온다. 학교를 다니는 내내 나는 한 번도 영화를 사랑한 적이 없다. 도대체 나는 뭘 사랑하여 이토록 갖은 고생을 다 하는지 끝없이 궁금했다. 잦은 휴학과 복학 끝에, 졸업반 귀퉁이에 서서 깨달은 사실. 나는 나를 가장 사랑한다.
당고개는 멀다. 멀어서야 비로소 가는 데 가치가 생긴다. 나를 사랑하는 내가 나만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 일. 참 어렵다. 그저 하루종일 누워서 이불에서 뒹굴거리고나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