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 '한 권의 서점' 글모임 <낮의 낱말>에서 쓴 글
좋아하는 게 너무 많다. 새벽의 청과시장, 북한산 냄새, 김치찌개, 각종 냉면, 종석이(강아지)의 차박차박 발소리, 살을 에는 겨울 추위, 과즙 많은 과일, 완석이(고양이) 몸에서 나는 아기 냄새, 24시간 PC방, 코인 노래방, 원하면 언제라도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장비 렌탈샵 같은 환경들, 아침에 눈을 뜨면 내 곁에서 요리조리 굴러가는 네 개의 눈동자들.
어릴 때부터 나는 외국살이를 꿈꿔왔다. 여행이야 종종 다녔지만 사는 건 달랐다. 남들은 내게, 한국을 너무 사랑해서 넌 실패하고 돌아오게 될 거야라고 말했다. 그들이 뭘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한국이 싫어서 떠나는 건데. 바보들.
오사카로 들어가 여행하다가 도쿄에 살았다. 코딱지만한 단칸방은 숨이 막혔다. 회사에 다녀와 알바하고 부업으로 노트북을 두드리는 삶 또한 그랬다. 숨쉬고 싶다는 생각에 오키나와와 삿포로 여행도 피곤을 뚫고 강행했다. 나아진 기분은 그 때 뿐이었다. 한국에서 나를 보기 위해 친구나 가족들이 방문해도 마찬가지였다. 유리 공예 클래스도, 초밥 만들기 체험도 나를 달래주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가장 아이러니한 사실. 누군가 물어보면 일본생활 진짜 잘 해내고 돌아왔다고 말할 수 있다. 맨 땅에 머리를 들이받았음에도 나는 적응도 잘하고 목표도 달성했다. 하지만 기쁘지가 않았다. 숨이 막혀서 떠난 한국인데, 돌아올 생각을 하니 숨이 트였다.
인천공항에서 차에 짐을 싣고 돌아오는 길. 서울 표지판을 보고 엉엉 울었다. 한국에 돌아와 살고 싶었나? 아니다. 한국이 너무 그리웠나? 아니다. 한국에 영영 살고 싶은가? 절대 아니다. 왜 우는지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이 이어졌다. 귀국은 나에게 위안이 될 수도 없었다. 복학과 돈벌이는 내게 또다른 전쟁터였으니까.
몇 주 전, 친구들과 영화에 대하여 논의하다가 깨달았다. 영화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만들려 하지 않을 거라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여 만들어진 작품들을 겸허히 감상할 거라고. 내가 영화 만드는 일에 집착하는 이유는, 영화가 아닌 나를 사랑해서였다.
돌아오는 일은 쉬웠다. 나를 사랑했으니까. 나는 내가 사랑한 것들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 위에, 나를 사랑했다. 나를 사랑해서 한국에 돌아왔다. 그래서 또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에게 보다 걸맞는 삶을 찾기 위해서. 사랑이 확고해 두렵지는 않다. 최소한 무엇을 어떻게 사랑하는지는 깨달았다. 어디로 떠나도 돌아오는 일을 실패나 낙오로 치부하지 않을 자신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