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친한 친구가 애인과 헤어졌다. 둘은 4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했다. 친구가 헤어졌다고 하는데 내 기분이 다 싱숭생숭했다. 그의 애인과 한 번쯤 만나본 적이 있는 사이여서일까. 애인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하던 친구의 모습이 기억나 마음 한 구석이 아렸다. 둘은 평생 함께, 지금 모습 그대로 만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참 예쁜 사람들이어서 안타까웠다.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2주 후였나. 친구의 애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만나도 되는 걸까. 친구에 대한 배신은 아닌가. 그렇다고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고. 혹여나 내가 둘을 다시 잇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우리는 파스타와 화덕피자를 먹었다. 찬찬히 얘기를 듣자니 그들의 연애는 내가 알고 있던 이야기와 많이 달랐다. 친구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입을 열지 않았다고 했다. 애인은 무슨 말이라도 좀 해 봐, 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친구는 그저 눈물만 또르륵 흘렸다. 워낙 말이 없고 생각이 많아 행동하기까지 오래 걸리는 친구인 줄은 알고 있었다. 제 애인에게만은 다를 줄 알았다. 아니었나보다.
그는 내 친구를 위해 4년이 넘는 시간을 꾹 참아왔다. 평생 돌보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단다. 당연히 결혼할 거라 여겼고, 모든 시간도 돈도 노력도 다 베풀 수 있는 사람이라 믿었단다. 하지만 친구는 애인에게 많은 거짓을 말했다. 흔한 연애처럼 바람을 피웠다거나 몰래 놀러 나갔다거나 하는 일들은 아니었다. 다만, 애인이 미래를 함께 할 사람이라 여기지 않은 듯했다. 내게는 그 사람과 영영 함께 있고 싶다고 말했었는데. 어쩌면 생각만큼 행동이 따라주지 못한 걸지도 모른다. 친구는 워낙 느리니 말이다.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동시에 밉다고도 했다. 애인은 진취적이고 모험심 강한 사람이다. 친구는 조용히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다. 나는 둘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에 오히려 만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거라 여겼다. 예상이 틀렸다. 사랑은 결국 영역을 침범해야지만 흔적이 남는 감정이었던 걸까. 친구의 삶에 자신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걔는 원래 외로운 사람이에요, 하자 애인도 동의했다. 외로움에서 벗어날 생각도 의지도 필요도 없는 내 친구. 헤어진 뒤 어느 비 오는 날, 헤어진 애인에게 날씨가 내 기분 같아라는 한 줄의 카톡을 남기고 웅크린 내 친구.
애인은 마지막에 내 친구에게 편지를 남겼다. 정말로 정말로 헤어지기 전에 하고픈 말을 남기고 싶었다고 한다. 몇 번이나 입을 열었음에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편지라는 수단이 그에게 얼마나 아픈 족쇄 같았을까. 그 족쇄를 받아드는 내 친구 또한 기분이 어땠을까. 둘을 생각하니 내가 다 울 것 같았다. 감정과잉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제 둘은 각각 새로운 연애를 막 시작했다. 가슴 아프게도, 둘은 각각 서로를 닮은 연인을 만난다. 외모야 다를지 몰라도 옷 입는 스타일부터 목소리, 말하는 방식, 생각하는 태도까지 똑 닮았다. 모르겠지. 나만 아는 이 비밀은 즐겁지도 설레지도 않다. 그렇게 사랑할 거면 서로를 선택하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킨다. 너무 힘들었겠지. 견디는 힘듦보다 헤어지는 게 더 아파서 참았던 날들이 너무 많이 지났나보다. 결국 어느 날 견디는 힘듦이 더 커져서, 둘은 서로를 놓아주었나보다. 차마 내가 감히 다시 잘 해 보라고 말을 꺼낼 수 없다.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줄 뿐.
새 연인과 이전보다 발전된 사랑을 해도, 결국 돌아돌아 서로를 다시 만나도 좋다. 당신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둘은 아직도 문득 내게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그에게 애인이 생겼다는 말은 전하지 않는다. 서로의 색이 너무 짙다. 가을색을 닮은 두 사람 모두 그저 잘 지낸다고 대답한다. 거짓도 진실도 아닌 어느 중간점의 말.
둘을 생각하면 여전히 가슴이 아리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방관자로서도 참여자로서도 존재하는 것이 어색하다. 서로 사랑하라거나 잊으라거나 말할 수가 없다. 그저 내가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헤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동시에 그들이 헤어짐을 넘어서라도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