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죽였다

2019년 11월 5일 새벽 이야기

by 고양이맘마



여름, 제주도 버스 안에서




서핑 동호회에서는 여름휴가를 부산으로 가자고 했다. 남편을 두고 가기 조금 미안했지만, 1박2일이니 괜찮으리라 여겼다. 신나는 마음으로 버스를 타고 떠났다. 우리는 열 댓 명 정도 모였다. 바닷가 모래사장 위에 동남아 식 오두막을 얻었다. 사람들은 마음이 잘 맞았다.

저녁이 되어 같이 바베큐를 해 먹었다. 자꾸만 술을 권해서 불편했다. 나는 알콜 알러지가 있는데. 알록달록한 색으로 까맣게 익어가던 파프리카가 눈에 밟혔다. 왁자지껄한 사이,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혜경 씨가 다가왔다. 중년의 여성인 그는 돈도 많고 자신의 업계에서 성공한 사람이었다. 무슨 일일까. 친해져 두어 나쁠 건 없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상당히 은밀하고도 소름돋았다.

저 사람들이 당신과 나를 죽이고 보험사기를 계획 하려 해요. 머리가 잠시 멍해졌다. 내 이름을 부르는 혜경 씨의 목소리에, 갈라진 채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그저 어떡하죠라는 질문 뿐이었다.

무서웠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되려 당한다는 두려움이 컸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굴었다. 굳어버린 안면근육을 어색하게 만지작거렸다.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신나게 먹고 노는 척하다 방으로 자러 들어갔다. 온갖 생각이 많았지만 너무 긴장한 탓이었는지 피곤했다. 야속하게도 잠에 들고 말았다.


아침식사 자리에 가기까지가 잘 기억나지 않았다. 미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사람들은 모두 아무 일도 없는 척하며 웃었다. 혜경 씨는 내게 눈치를 주었다. 시행하자고. 뭐냐고 묻지도 못했다. 이미 알고 있었다. 우리가 죽기 전 그들을 먼저 죽이는 게 급선무였다. 계란 후라이를 끄적거릴 때였다. 그가 내게 고갯짓을 했다. 나는 그가 사람들이 우리를 죽일 때 쓰려던 독가스를 터뜨리는 광경을 목격했다. 옷깃으로 입과 코를 막고 냅다 도망쳤다. 밖으로 태연히 나가는 척하며 문을 바깥에서 잠가버렸다. 내가 누군가를 죽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부모를 따라 모임에 왔던 어린 아이들 몇 명이 눈에 밟혔다. 하지만 그들을 살려둘 수는 없다. 내가 죽을 테니까. 언젠가 나에게 복수할 지도 모르니까.

혜경 씨와 나는 안전히 도망쳤다. 서울로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굴었다. 며칠의 시간이 영겁 같았다. 뉴스에서는 독성 기체 물질이 폭발하여 한 서핑 동호회 일원들이 거의 사망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무서웠다. '거의'라는 단어. 세 명 정도가 살아남은 듯했다. 아찔했다. 죄책감이 나를 집어삼켰다. 어떻게 해야 내 죄를 씻을 수 있지. 아니 그 전에, 참 비겁하게도, 억울하다는 생각이 먼저 치고 올라왔다.


경찰로부터 연락이 왔다. 동호회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고. 현장에 있었던 걸로 확인되니 와서 조사에 임해달란다. 솔직한 감정으로 다른 수식어를 붙일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너무 무서웠다.

부산까지 내려가 다시 그 바닷가에 찾아갔을 때. 그대로 주저앉고 싶었다. 다리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여기서 무너지면 더더욱 의심받고 말겠지. 이를 꽉 물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살면서 숱한 거짓말들을 천연덕스럽게 해 왔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힘들었다. 사람을 죽이게 될 거라고 며칠 전의 나는 꿈도 꾸지 못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꿈 많은 아이는 사람을 죽여서 모든 게 좌절될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경찰들이 쭈뼛거리며 다가가는 나를 발견하고 막아섰다. 여기 조사받으러 온 관계자예요. 뭐라 거짓말 해야 할까. 내내 굴려도 굴려도 답이 나오지 않던 머리를 마구 몰아세웠다. 어떻게 거짓말을 해도 알리바이가 없다. 절망스럽다. 이름과 신상 정보를 불러주던 그 때. 멀리서 혜경 씨가 보였다. 눈물 콧물 범벅에 아파보였다. 아아, 이미 자백한 걸까. 그렇다면 나 또한 거짓말을 해도 소용이 없을 텐데.

공기가 조금 이상했다. 그는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울고 있었다. 경찰들이 하나 둘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죽은 줄 알았던 이들 중 두 명의 회원이 초췌한 몰골로 혜경 씨와 함께 서 있었다. 쎄하다. 뭔가 이상하다. 그래. 내가 악의로 모두를 죽였다고 말하는구나. 허탈했다. 눈치를 챈 나는 냅다 도망쳤다. 경찰들이 나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추격전은 끝이 없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무서웠다. 나는 하고 싶은 일도 꿈도 많은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내가 나 자신을 버려야 할 만큼 신분이 자체로서 불리해지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여겨졌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종석이나 완석이 없이는 살 수도 없을 것 같은데. 준비하던 프로젝트도 산더미인데. 찍고 싶은 영화도, 쓰고 싶은 글도, 마음이 터질 만큼 하나 가득인데. 왜 내 삶이 이렇게 비틀린 걸까. 나는 그저 살기 위해 발버둥쳤을 뿐인데. 억울했다.

하지만 억울함에 젖어 있을 여유는 없었다. 버스를 탔다. 겨우 숨을 돌리고 평범한 척을 했다. 기사가 나를 알아본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내가 사람들 눈을 피해 앉는 자리를 바꿀 때마다 나를 바라보았다. 백미러를 통해 눈이 자꾸 마주쳤다. 그의 표정이 심히 불안해보였다. 맨 앞 자리 왼쪽 좌석에 앉자 내게 말을 걸었다. 아가씨, 종점에서 내려요. 해 줄 이야기가 있어요. 버스 기사의 어색할 정도로 친절한 목소리에 나는 확신했다. 나를 유인하려는 거구나. 이미 신고했구나. 경찰들이 따라붙지는 않았나 창밖을 살폈다. 아직 아무도 없었다. 진작 내릴 걸. 내가 왜 바보같이 여기 가만히 타고 있었지. 무슨 여유로. 알았다고 웃어보인 나는 다음 정류장에서 문이 열리자마자 이내 쏜살같이 내려버렸다. 내가 내리려고 하는 모습을 보자마자 기사는 문을 닫았다. 다행히 순식간에 문 틈을 빠져 나와 또다시 죽어라 달렸다.

터미널. 터미널로 가야 해.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해. 내가 아는 곳에 있어야 숨기도 쉽다. 인구밀도도 높고 도움받을 사람들도 많다. 집념 하나로 빠르게 움직였다. 최대한 이상하게 보이지 않으려 노력하며 달렸다. 살아야했다. 이렇게 억울하게 생을 망칠 수는 없어. 기를 썼다.

어느 모르는 골목에 들어가자 빈 택시가 보였다. 택시 기사는 공효진 배우를 닮아 있었다. 고속버스 터미널이요. 최대한 빨리 가주세요. 헐떡거리는 백미러를 통해 나를 빤히 바라보는 눈빛이 또 의심되었다. 이미 나를 알고 있지 않을까. 지명수배령이 내려 온 부산 시민들이 다 나를 잡으려고 혈안인 건 아닐까. 마치 나니아 연대기에서처럼, 나무와 바람마저도 나를 좇고 있을 것만 같은 의심이 들었다. 내가 땀을 주륵주륵 흘리며 재촉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나. 택시 기사는 서둘러 요리조리 운전을 해 주었다. 덕분에 참 고맙게도 터미널이 머지 않아 보였다. 아직 내가 누군지 모르나보다. 다행이다. 아주 조금 마음이 놓였다.


이 또한 사치였다. 터미널이 가까워오자 창밖에서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경찰차도 아닌 일반 차량들이 나를 에워쌌다. 안에 탄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소름이 끼쳤다. 모두 아까 바닷가 숙소 앞에서 만난 경찰들이잖아. 끝인가. 이대로 잡혀야 하나. 이상할 정도로 주변에 눈길을 주지 않는 택시 기사. 나를 팔았구나. 터미널이 코 앞인데. 이럴 순 없다. 빨간 불이 되었다. 경찰들이 탄 차가 반 블럭 쯤 떨어져 있다. 차에서 뛰어내려 몸을 숙였다. 터미널로 마구 달렸다. 내가 아직 택시에서 안 내린 줄 아나보다. 그들은 나를 쫓아오지 않았다. 더 이상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가슴이 쿵쾅거렸다. 터미널에 겨우 들어가며,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서 나를 따라오던 차들의 문이 그제야 열리고 있었다. 나는 많은 인파에 자연스럽게 묻혀버렸다.

아무도 나를 못 알아보는 듯했다. 다행이다. 숨을 몰아쉬며 티켓 창구로 향했다. 서울행이요. 가장 빠른 걸로 한 장이요. 전광판을 슬쩍 보니 5분이라는 시간이 남아있었다. 직원 분은 아무 말도 없이 티켓을 끊어주었다. 반응이 심드렁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지류 티켓을 손에 쥐었다. 방금 인쇄된 따뜻함이 점점 내 이성을 되찾게 했다. 버스를 타자. 타면 아무도 일단 모를 거야. 혹시 따라오더라도 그 전에 버스가 출발해 버리겠지. 서둘러 탑승구로 달려가는 내 눈 앞에, 반갑지 않은 인물이 등장했다.

여보!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불러세웠다. 남편이 나를 막아섰다. 당신이 왜 여기 있어, 여보.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내가 지금은 안 돼, 미안해, 못 보았다고 말해 줘. 말을 남기고 마구 달리자 남편이 나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남편마저 나를 잡으려 들다니. 절망적이다. 그 다리가 참도 빠르다. 버스 출발까지 1분 남았을 때,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나는 철망으로 된 문을 쾅 닫아버렸다. 나 당신 따라가기 싫어. 나 억울해서 안 돼. 제발 저리 가 줘. 남편이 바깥에서 숨을 몰아쉬며 나를 바라보았다.


여보, 내가 경찰 분들하고 다 이야기했어. 다른 사람들이 당신 혼자 악의를 품고 죽였다고 누명 씌우더라고. 혜경 씨, 그 사람, 돈도 많고 인맥도 넓어. 다 그 사람 편이더라. 그치만 내가 싸웠어. 그 여자가 당신한테 뒤집어 씌우려던 거, 내가 찾아냈거든. 여보. 정당방위라서 아마 일이 년 내로 징역 끝날 거야. 당신 어차피 회사 다니는 것도 아니니까 커리어 끝난 거 아니야. 다시 나오고 나면 우리 같이 작품 하면 되잖아. 늘 그랬듯이. 내가 주말마다 면회 갈게. 군대 정도밖에 안 되니까 기다려 줄게. 나 당신 안 떠나. 여보, 죗값 치르고 당당하게 살자. 내가 곁에서 억울하지 않게 해 줄게.

울 정신조차 없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철망 문 바깥의 남편이 인자하게 웃어보였다. 눈물이 주륵주륵 흘렀다. 언젠가 내가 그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당신은 내 용기야. 말이 실제가 되었다. 용기를 내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모두가 잡으려 했을 때에도 도망쳤는데. 당신이 기다려 준다는 말 한 마디에 내가 제 발로 걸어나오게 되었다.


문득 눈을 떴다. 온 몸이 식은 땀 범벅이었다. 이상하게 눌려 자던 다리가 많이 뛴 것처럼 저릿저릿 아팠다.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남편이 옆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당신의 손을 잡았다. 꽉 끌어안았다. 여보 사랑해. 엉엉 울음이 나왔다. 남편이 깜짝 놀라 나를 안아주었다. 내가 당신을 정말 많이 신뢰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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