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합격 여부에 따라 퇴사를 정할 계획이었다. 그 사이, 외부 강의가 시작되어 회사를 다니면서 강의를 들었다. 고작 일주일에 하루 듣는 수업인데도 너무나 피곤했다. 그도 그럴것이 매주 누군가의 소설을 읽고 합평을 준비해야 했고, 내 소설도 부지런히 써야 했다. 소설을 안 쓴 지 3년은 되어 소설을 어떻게 쓰는 건지 다 까먹고 말았다. 그래도 어찌어찌 완성이란 것을(내가 보기에도 허술했다) 해서 갔는데, 합평에서 본격적으로 소설이 도입하기 전에 준비 단계의 상태를 본 것 같다는 평을 들었다. 이제 앞으로 시작될 이들의 모습이 궁금하다고 그랬다. 소설이 아니었던 거다. 오랜만에 쓴 소설에서도 좋은 평가를 듣지 못해 기운이 빠졌다. 그래도 포토폴리오에 낼 소설이 그것뿐이었다. 이전에 학부생 때 쓴 소설은 이 소설보다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소설 1편과 그나마 마음에 들었던 시 5편을 같이 제출했다.
면접에서는 교수님 두 분이 계셨다. 이 회사를 나오는 것이 아깝지 않느냐고, 주로 현실적인 걱정을 해주셨다. 그리고 한 교수님은 시가 더 재밌다고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말이 되는 소리는 겨우 하나밖에 하지 않은 채 혼란스러운 질문들을 쳐냈고, 면접이 끝나고 나서는 왠지 붙을 것 같은 마음과 떨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공존했다. 그때 나는 회사 근처의 LH도 신청했기에 학교가 떨어지면 이참에 독립이나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합격도 불합격도 어쨌든 장점은 있는 것이었다.
퇴근하던 길에 나는 합격을 확인했다.
이때는 괜찮을까, 퇴사는 어떻게 말하지, 회사는 언제까지 다니지, 앞으로 돈은 어떻게 쓰지, 정말 학교에 다시 돌아가도 되는 걸까? 달라지는 게 있을까? 정확히 말하면 학교에 다닌다고 등단하고 글을 전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 이런 걱정과 고민이 뒤섞여 쉽사리 기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주변인들의 축하가 있었다. 다들 나를 축하해준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그들의 축하로 대학원에 간다고 하는 게 많은 고민이 있을지언정 그래도 축하받을 일이라는 걸 상기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나를 조금 더 믿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학교에 가게 된 것이 어쨌든 미래에 대해 고민한 결과니까, 나는 나 자신에게도 축하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학교에 가서도 계속 고민은 이어졌다. 학교에 다니고 한 달 동안은 회사와 병행하였기에 나는 회사원도 학생도 아닌 상태였다. 몸이 두 개로 쪼개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 학교에 익숙해지는 것이 거의 큰 목표였다. 배움의 상태로, 학생의 모드로 전환하는 것이 은근 어려웠고, 오랜만에 문학을 접하려니 너무 낯설었다. 걱정과 다르게 적응을 잘한 것 같다. 그건 지인들의 몫이 컸다.
아직 등단을 한 건 아니지만, 어렴풋이 소설을 쓰는 게 어떤 건지 알아가고 있다. 그런 움직임 하나하나가 내게는 너무나 소중하다. 이제 만으로 서른이 되었다. 서른이 되기 전에 뭔가를 이루고 싶었는데 명확히 이루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쪽으로 가닿고 있다고 느낀다. 계속 하다보면 어디론가는 향할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 아직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