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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녜 Apr 17. 2024

팔레트

좋아하는 것으로 인생을 채우다.


한때 퇴근길 만원 버스에서 흥얼거리던 노래가 있었다.


  "하긴 그래도 여전히 코린 음악은 좋더라. Hot Pink보다 진한 보라색을 더 좋아해. 또 뭐더라 단추 있는 Pajamas, Lipstick, 좀 짓궂은 장난들. I like it. I'm twenty five. 날 좋아하는 거 알아. I got this. I'm truly fine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날."


  사랑스러운 가사의 주인공은 국민 가수인 아이유 님의 <팔레트>다. 노래는 주인공이 좋아하는 것을 하나둘씩 나열하며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자신을 조금씩 알 것 같다고 고백한다. 여린 손으로 써 내린 가사가 영특하고 야무지다. 서른네 살의 나는 여전히 스스로를 정의하기 어려운데 말이다.


  요즘에는 사는 게 무엇인지 사유한다. 직장에서 인정받아 초고속으로 승진해서 기뻤던 것도 잠시, 일에 치이는 횟수가 빈번해지는 것을 목도하니 내가 무얼 하고 있는 건지 싶었다. 그렇다고 일을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나 열정을 쏟아야 하는 이유를 몰랐다. 해외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향수병을 이겨내야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버티는 것이 답이라며 몸을 혹사시켰다.


  그렇게 퇴사하고 한국에서 약 1년 가까이의 시간을 보냈지만, 나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앎에도 통장 잔고가 쨍그랑 떨어지는 소리에 현실이 급급하다. 그렇다고 '좋아한다'라고 정의하는 일에서 '성공'이라는 단어를 뗄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다. 아니, 사실은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일련의 시련을 마주하며 나에게 질문을 냅다 던진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좋아하는 것에 무지하고 살고 있지는 않은가? 좋아하는 일로 내 인생이 풍성해질까? 그렇다면 진정으로 내 삶을 사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잘 살고 있는가? 아니면 하릴없이 사는 것인가? 결국 나는 누구인가? 머릿속으로 수많은 물음에 도돌이표를 찍는다.


  현재 얻은 것은 하나뿐이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것을 계속하는 것이다. 사소한 것이라도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오롯이 나를 알아가기 위해서. 나를 탐구하는 수단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것이다. 한동안 두려웠던 글을 다시 쓰는 것도 "좋아해서"다. 글이 모두에게 공감을 얻지 못해도, 문장이 매끄럽지 않아도, 공식적으로 작가로 등단할 수준이 아니더라도, 글쓰기를 계속할 것이다. 글이 좋다고 느끼니까.


  팔레트는 '수채화나 유화를 그릴 때에, 그림물감을 짜내어 섞기 위한 판'을 뜻한다. 지금부터라도 소소하지만 나를 행복하게 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하나둘씩 팔레트에 채운다. '책 읽기', '여행하기', '글쓰기', '사진 찍기', '산책하기'라는 물감을 팔레트에 짜고 인생이라는 캔버스를 그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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