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를 고군분투하며 보낼 때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 한다. 어떤 이는 야자수 아래 선베드에 누워 새파란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를 듣는 상상을 하는가 하면, 다른 이는 몸 채 만 한 배낭 하나를 메고 낯선 땅에서 새로운 오감을 원한다. '여행'이라는 단어는 늘 설렘을 준다. 생각만 해도 잠시라도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마법을 부린다. 그래서 어쩌면 모두가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여행을 바라는 게 아닐까 싶다.
쉼 없이 여행하려고 노력했다. 자그마한 변화 하나라도 꺼리는 내가 유일하게 용기 내어 실행할 수 있는 행위, 여행. 가까운 곳이든 먼 나라든 그곳을 두 발로 누비면서 신비로운 경험을 안고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는 여행의 매력에 푹 빠져 언제든지 유람하려고 한다. 특히나 생경한 언어에 나 홀로 이방인인 이국 땅을 여행할 때면 일분일초가 더더욱 특별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여행의 의미를 곱씹기 시작했다. 여행에서 일상으로 복귀할 때마다 허무한 감정을 한동안 떨쳐내기 어려웠다. 여행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에 때로는 좌절했다. 인생은 여행만큼 아름답지가 않구나. 여행에서 얻은 쾌락으로 생을 근근이 이어가고 있구나. 여행하는 동안 얻었던 희열은 무엇 때문에 일상생활까지 당도하지 않을까? 한탄을 하니 여행은 생명수이자 독이었다. 여행은 양가적인 음수(飮水)에 불과한 것이었다.
여행이란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을 뜻한다. 그러나 '여행'이라는 단어를 다르게 정의하고 싶다. 사실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순간이 일련의 여행이라고 말이다. 나에게는 그저 보통날의 파편에 불과한 것이 다른 이에게는 남다른 하루의 한 조각이 될 수 있다. 출근길에 활짝 핀 샛노란 꽃을 발견하는 것이, 골목길에서 우연히 사랑스러운 길고양이를 마주하는 것이, 집에서 가족과 색다른 저녁 한 끼를 해결하는 것이 찰나의 여행이 될 수 있다. 물리적으로 어디를 향할 필요가 없다. 그저 하루를 여행하듯 보내다 보면 여행이 삶에서 녹아들 것이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이라는 문구가 있다. 여행에서 얻는 행복감이 일상에서 이어지고, 일상에서 줍는 별난 순간이 여행으로 연결되는 순환을 저 문구가 집약해서 설명한다. 의미를 어떻게 부여하느냐에 따라서 일상은 여행이 될 수 있고, 여행도 일상이 될 수 있다. 우주를 유영하는 인간에게 있어 여행은 인생의 기나긴 여정을 의미하는 게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같이 여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