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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녜 Jun 05. 2024

카페

공간이 주는 힘

수능이 끝나고 대학교를 갓 졸업한 친척 언니의 손에 이끌려 '카페'라는 곳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다. 초록색 눈과 코 그리고 입으로 된 여성 얼굴을 로고로 한 카페였다. 드디어 성인이 되었다는 나를 축하하며 언니는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주었다.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처음으로 마셨을 때 한약같이 그 쓴맛은 여전히 잊지 못한다. '이런 것을 왜 사 먹지?'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도 잠시. 오렌지빛 햇볕이 스며드는 카페의 오후가 좋았다. 책을 읽는 손님, 담소를 나누는 무리,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푸른 눈의 이방인을 바라보며 카페에서 보내는 시간이 궁금해졌다.


  그날부터였을까? 나는 카페와 사랑에 빠졌다. 강의가 끝나면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아쉬워 카페를 서성였다. 조심스럽게 카페 문을 열면 방울이 달랑달랑 내는 소리에 기분이 유쾌했다. 처음에는 핫초코를 주문했다가 새로운 메뉴를 도전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커피에 초콜릿 향을 더한 모카에 취했고, 어느샌가 아메리카노를 곧 즐겨 마시는 어엿한 어른이 되었다.


  카페에서 하는 것은 별거 없다. 노트북으로 공부하거나 손끝으로 책장을 넘긴다. 창가 가까이에 있는 자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카페에서 흐르는 감미로운 재즈의 선율에 흥얼거린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카페'라는 공간에서 '온전한 나'로 자리를 잡으며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종이에 한두 자씩 글을 써 내려간다. 향긋한 커피 향을 흠씬 머금은 카페. 그곳에서 나는 오롯이 나에게 집중한다. 카페는 나만의 보금자리다.


  카페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모임 장소이자 설레는 데이트의 시작점은 늘 카페다. 부드러운 라테 한 모금에 디저트를 한입 먹으며 누군가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숨이 넘어가도록 왁자지껄 웃거나 조용히 눈물을 훔치며 서로의 어깨를 토닥인다. 무엇이 되었든 내가 사랑하는 공간에서 사랑하는 이와 시간을 보내며 소소한 행복을 얻는다. 카페는 나에게 즐거운 놀이공원이다.


  카페에서 매번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새로운 카페에서 느끼는 오감은 다르다. 그곳의 온도, 공기 그리고 습도가 만들어낸 분위기로 카페를 유랑하는 이방인이 되어 오묘한 감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런데 이것이 더할 수 없이 반가워 카페 호핑을 멈출 수 없다. 카페가 이미 삶의 활력소로 자리했으니 말이다.


  공간이 주는 힘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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