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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녜 Jun 12. 2024

커피

삶의 미학을 담다.

창문 너머로 오렌지빛 햇살이 스며드는 침실. 뽀송뽀송한 이불을 붙잡고 한동안 침대에서 몸을 뒤척인다. 그러다 향긋한 커피 냄새에 이끌려 거실로 뚜벅뚜벅 걸음을 옮긴다. 소파에 앉아 사랑하는 이가 타주는 따뜻한 블랙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과일향을 머금은 신맛을 시작으로 캐러멜의 단맛, 그리고 입안에 감도는 부드러운 맛까지 음미한다. 커피 한 잔을 비우고 나니 비로소 잠에서 깬다. 또 다른 아침을 시작한다.


  커피는 약 6세기경부터 지금까지 각성제이자 약재로, 혹은 기호식품으로 자리해 왔다. 인간에게서 오랫동안 사랑받은 커피. 나 또한 어느덧 커피를 10년 이상 즐겨 마시니 커피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커피를 향한 애정은 카페 호핑 투어(Cafe hopping tour)에서 시작되었다. 카페별로 커피 맛이 다르거니와 주력으로 밀고 있는 음료수가 따로 있다. 게다가 카페마다 풍기는 분위기까지 제각각이니 카페 호핑 투어가 즐겁지 아니한가! 커피는 시각과 후각, 미각을 자극하며 단조로운 일상을 특별한 순간으로 환기시킨다.


  커피를 가볍게 들이마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커피에 대한 모든 것이 알고 싶어졌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바리스타 수업에 임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커피를 깊이 탐구하게 되었다. 커피의 역사, 품종 및 종류, 커피를 볶거나 만드는 방법, 커피 용어 같은 지식들을 하나둘씩 습득하니 커피가 더욱더 흥미로웠다.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직접 내리고 커피 머신으로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니 커피는 열정으로 불렸다.


  커피를 만드는 데 규칙이 있다.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릴 때 물의 온도, 원두의 용량 및 분쇄도, 시간이 중요하다. 30초간 뜸을 들이는 과정부터 100ml - 50ml - 100ml를 3분 이내로 내려야 커피의 완성도가 높아진다. 커피를 빠르게 추출하면 신맛이 강해지고 너무 느리게 뽑으면 쓴맛이 감돈다. 분쇄된 원두가 고우면 에스프레소는 느리게 나오고 그 굵기가 굵으면 속도가 빨라진다. 원두 종류와 추출 도구에 따라서 커피의 풍미도 달라진다.


  커피를 공부할수록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듯이 기분이 짜릿하다. 특히 핸드드립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기 어렵다. 핸드드립으로 최상의 커피를 내놓으려면 시간을 준수해야 한다. 맛이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기 위해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아야 한다.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뜸을 들이는 30초 동안 분쇄된 커피에서 이산화탄소가 방출되고 가루가 머핀처럼 부풀어 올라야 밸런스 있는 커피를 내릴 수 있다. 추출 방법도 중요하다. 가운데는 물을 빠르게 붓고 가장자리에 느리게 부어야 커피가 골고루 추출된다.


  커피를 배우기 전까지는 쉴 틈 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남들의 시선이 두려워 속도를 가늠하지 못한 채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허물만 남은 몸뚱어리였다. 가스라이팅으로 정신은 텅 비었고, 공황장애로 숨이 턱 막혔다. 지난 나날들은 공백 없이 무의미한 글자로만 빼곡히 채워진 일기장이었다. 그런데 습관이 무섭다고 이전처럼 하루빨리 '무엇'이라도 하며 몸을 굴려야 할 것 같았다.


  이때 커피를 마주했다. 커피는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를, 언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배터리가 방전되다 못해 터지기 직전인 나를 붙잡으며 나만의 속도로 한 걸음, 두 걸음 내딛는 방법을 일러준다. 최고의 커피를 선보이기 위한 과정이 있듯이 지금이 최상의 컨디션을 끌어올리려 마음을 단단히 쌓고 있는 때라고 일깨워준다. 그렇게 커피에서 알맞은 타이밍과 함께 시간의 가치를 따르며, 상태에 따라 속도를 조절하는 방법을 익힌다.


  삶의 미학을 담고 있는 커피. '커피'라는 존재는 마음속에서 땅을 넓히며 또 하나의 꿈으로 새싹을 틔우고 있다. 오늘도 향기로운 커피를 맡으며 설레는 하루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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