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가도 모르겠는, 가까우나 먼 존재
삶에서 선택하지 못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바로 생명과 가족이다. 처량한 울음소리로 세상을 깨우며 생을 시작하는 것은 내 의지가 아니다. 부모님의 선택으로 나는 우주에서 이름 석 자로 존재하기 시작한다. 신생아로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두 명의 낯선 이가 나의 부모님이란다. '부모님'이라 일컫는 당신들의 손에 이끌려 '집'이라 불리는 곳에 머무른다. 나를 먹이고 재우며 어화둥둥 키우시는 두 어른을 부모님으로 받아들일 때쯤 오동통한 나의 볼살을 꼬집는 4살짜리 소녀가 나에게 '언니'라고 불러보라고 한다. 나를 성가시게 하지만, 그 모습이 썩 귀여우니 봐주기로 한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이 된다.
그런데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자아가 성장하다 보니 평생의 난제가 생애를 거쳐 떠돈다. 나와 결이 맞지 않는 사람과 법적으로 평생 함께해야 한다는 운명이 그것이다. 성격이 달라서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오해가 쌓인다. 남에게는 "그럴 수 있지" 하며 이해심이 많고 너그러운 사람이 되다가도 가족에게는 유난히 엄격해진다.
가족과 해외에서 여행하고 있을 때였다. 오랜만에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한 곳에 모여서 기뻤던 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사소한 의견으로 말다툼이 오고 갔다. 되돌아보면 별거 아닌 것에 집착하며 쌈닭처럼 서로를 물어뜯었다. 한동안 서로에게 말 한마디를 붙이지 않고 거리를 걸었다. 그러다가 어느 작은 기념품 가게에서 아기자기한 열쇠고리 하나를 발견한 가족 구성원 한 명이 "어머, 이거 귀엽다" 하며 입을 뗐다. 그러자 "그래, 이거 하나 사자!" 하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정적은 깨졌고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우리 가족은 여행을 마무리했다.
그날 이후로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곱씹는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당연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족 앞에서 밑바닥의 인성을 드러내는 것에 개의치 않아 하는 이유 또한 무엇일까?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이 관계가 투명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여 유지될 수 있는 것은, 가족의 사전적 정의에서 등장하는 '같은 핏줄에 의하여 연결된 인연'인 '혈연'에 기인해서일까? 그렇다면 피를 함께 나누었다는 이유로 진흙탕 같은 이 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닐까?
그럼에도 나 홀로 타향살이로 속이 헛헛해서 그리운 존재는 미운 정 고운 정이 엉긴 가족이다. 가족에게서 벗어나겠다며 아등바등 둥지를 떠났다가 결국 돌아온 탕자를 묵묵히 맞이해 주는 이 또한 가족이다. '가족'이라는 단어의 힘으로 모난 내 모습을 받아들이는 가족이 고마울 때가 있다. 이렇게나 복잡다단하고 얽히고설킨 관계가 또 다른 세상에서 실재하긴 할까? 가족은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명제다.
가족은 알다가도 모르겠는, 가까우나 먼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