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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녜 May 29. 2024

활자로의 회귀

어릴 때부터 책이 좋았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0권에서 미지의 인물을 만나는 재미가 있어 시간이 날 때마다 독서로 소일했고, 서장에 꽂힌 수많은 책들을 들춰내며 종이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묘한 책 냄새에 흠뻑 취했다. 가끔은 내 마음에 훅 들어오는 먹먹한 이야기로 눈물이 흘러내려 책장이 젖었다. 책으로부터 지식에 대한 탐구를 갈망했고, 상상의 바다에서 헤엄을 치는 스스로에 대한 열망을 발견하기도 했다. 책은 울적한 학창 시절의 한줄기 빛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무래도 반복적으로 읽는 글자에서 하나하나 의미를 찾는 게 고역이었을까? 아니면 현실이 시궁창이어서 마음의 양식을 쌓을 여력이 없어서였을까? 텍스트에 질려 책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문장 하나하나에 가슴이 두근거려 한 장씩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기던 손가락은 TV 리모컨에 익숙해졌고, 휘황찬란한 시청각 매체로 온 감각은 무뎌졌다. 발터 뫼르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의 주인공인 공룡 미텐메츠처럼 책을 향한 여정을 꿈꾸던 희망적인 자아는 증발해 버렸다. 


  뉴욕을 여행하던 어느 날이었다. 푸르른 하늘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먹구름이 몰리더니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비를 피하기 위해 눈앞에 보이는 공립 도서관으로 재빠르게 몸을 숨겼다. 공립 도서관은 계획에 없었지만, 이왕 이곳에 발을 들였으니 도서관을 층마다 둘러보았다. 그러다 어느 한 층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곳에서 전시된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을 만났다. 그러자 이 책의 줄거리가 주마등처럼 스쳤다.


  책이 불타는 온도인 <화씨 451>은 제목처럼 책을 불태우는 방화사인 주인공 몬태그가 책을 부정하는 사회에 염증을 느끼며 그의 사상이 변화하는 발자취를 그린다. 소설은 책을 향한 사유의 중요성과 함께 TV를 주관 없이 소비하는 사회를 비판한다. 1953년 SF 소설임에도 현실을 어느 정도 고증하는 <화씨 451>. 이 작품을 마주하자마자 머리는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지더니 책으로 밤을 지새우던 어린 시절의 나를 서서히 떠올렸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화씨 451>을 발견하고 오래된 책장 사이로 옅게 나는 책 냄새를 맡으니 책을 다시 가까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수없는 책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뉴욕의 공립 도서관은 활자로의 회귀를 불러일으키며 책에서 얻는 즐거움을 다시금 깨닫게 해 주었다.


  이제는 책에서 꿈을 좇는다. 책을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내 이름 석 자가 새겨진 책을 출간하는 꿈을. 어떤 이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글들로 역인 책을 인쇄하는 꿈을. 책과 영혼의 단짝이 되어 같은 호흡으로 숨쉬기를 바라는 꿈을 말이다. 오늘도 여러 장의 파도가 넘실대는 책에서 지평선 너머의 무한대 세상을 항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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