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독일의 가을이다.
아침 7시, 기온은 5도. 아침 공기가 차다. 겨울의 서늘함이 느껴졌다.
내가 묵은 델타호텔스바이메리어트(Delta Hotels By Marriot) 정문을 나서니, 아침 이슬에 땅이 축축했다. 호텔 본관과 왼편 주차 건물 사이에 작은 길이 나있었다. 가을 냄새가 물씬 나게, 바닥에 노랗게 바랜 낙엽들이 가득했다. 작은 길을 올라서니 강변을 따라 쭉 나있는 산책로가 나타났다.
델타호텔스바이메리어드와 주차장 건물 사이에 마인강변으로 나가는 길이 나있다. 11월 초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출장을 다녀왔다. 숙소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오펜바흐 사이에 위치한 델타호텔스바이메리어트. 출장 오기 전에 숙소 근처의 러닝코스를 검색했다. 가장 대표적인 러닝코스가 바로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관통하는 마인(Main) 강을 따라 난 강변로였다.
챗GPT에 따르면 프랑크푸르트와 오펜바흐는 마인강을 사이에 두고 인접해 있는 독일의 두 도시로,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의 금융 중심지이며 국제적인 경제와 문화의 허브로서 많은 관광객과 비즈니스 방문객이 찾는다. 이에 반해 오펜바흐는 전통적으로 가죽 산업의 중심지였으며, 현재는 다양한 창업 및 예술 활동이 활발한 도시로 발전하고 있다. 이 지역에는 현대자동차나 금호타이어 유럽 본사도 위치했다.
마인강은 독일의 남부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강으로 프랑크푸르트와 오펜바흐를 가로지르고 있다. 강 주변에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많은 문화 및 역사적인 장소가 위치해 있다는 설명이다.
출장을 앞두고 나에게 중요한 것은 러닝코스가 있느냐였다. 어지간히 달리기에 빠졌구나 싶다. 첫날 호텔에 밤에 도착해서 직접 나가서 주변을 둘러볼 기회가 없었다. 이럴 때 구글맵이 유용하다. 구글맵으로 호텔 주변을 살펴봤다. 챗GPT는 마인 강변을 따라 러닝코스가 조성되어 있다 했지만, 구글맵으로 보면 강변 공원은 찾을 수가 없었다. 거리보기로 봐도 갓길에 차들이 주차한 도로밖에 안보였다. 정말 달릴만한 길이 있는 건지, 아니면 내가 있는 호텔 주변에는 강변 공원이 없는 건지 고민스러웠다.
다음날 아침 일단 마인강 구경이라도 하기로 하고 짐을 청했다.
날씨 어플을 보니 일출은 오전 7시 22분이었다. 아무래도 처음 방문한 도시에서 처음 달리는 것이라 날이 밝을 때 달리고 싶었다. 프랑크푸르트에 거주하는 독일 친구에게 물으니 프랑크푸르트가 치안이 좋은 도시라 했다. 달리는데 위험 요소는 없지만 다소 쌀쌀한 날씨가 오히려 위험하다고 했다. 다행히 둘째 날 오전 일정이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일출 시간 맞춰 7시쯤 운동복을 주섬 주섬 입고 나섰다. 복장은 반팔 기능성 티셔츠, 회색 방풍 재킷, 그리고 긴 추리닝 바지.
왼쪽에 마인강을 끼고 조성된 산책로가 나있다. 이 길을 자전거를 타거나 나 같은 러너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호텔에 난 샛길을 따라가니 양 옆으로 마인강을 따라 난 긴 산책로가 보였다. 한강고수부지나 안양천체육공원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공원이 아니라 그냥 강을 따라 난 길이 쭉 이어져 있었다. 눈앞에 이마에 후레시가 달린 머리띠를 하고 후레시를 밝게 킨 러너가 달려 지나갔다. 그리고 저 멀리서 후레시를 킨 자전거가 오고 있었다. 그래. 여기다. 여기서 달리면 되겠구나.
어느 방향으로 달릴까 고민하다가 일산호수공원을 달리던 습관대로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달렸다. 몸의 습관이 참 무섭다. 자동적으로 오른쪽으로 달리다니. 나중에 알고 보니 오른쪽이 오펜바흐 방향이었다. 마인강을 따라 난 아스팔트 길가에 노란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아스팔트 길 옆으로는 가로수 나무가 열을 맞춰 서있었다. 그리고 그 왼쪽 옆에 마인강이 보였다. 폭은 한강과 비슷해 보였다. 이제 막 해가 떠서 그런지 강물색이 어두웠다.
찬 공기를 마시며 천천히 달렸다. 겨울을 연상케 하는 공기가 오히려 시원하고 개운했다. 시차적응을 못해 밤새 뒤척이며 잠을 못 이뤘는데, 몽롱한 정신이 깨는 것 같았다. 길을 따라 달리다 보니 서서히 날이 밝아왔다. 새벽인데도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히려 러너의 수가 적었다. 자전거도 그렇고, 러너들도 머리에 밝게 빛나는 후레시를 달고 달리고 있었다. 이게 독일 사람들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전을 위해 후레시를 켜고 있었다. 일산호수공원에 새벽에 나서면 날이 어두워도 가로수 불빛에 의지해 달리거나 산책하는 사람들은 자주 봤지만, 머리에 후레시를 달고 달리는 러너는 못 봤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나 혼자만 후레시 없이 달리고 있었다. 참 인상적이었다.
마인강변을 따라 오펜바흐 방향으로 달리니 어느새 산책로는 사라지고 도시가 나왔다. 어차피 오늘은 첫날이라 천천히 달리기로 했다. 사랑밭 마라톤 대회 참가한 이후 오른발 족저근막염이 심해져서, 일주일간 달리기를 쉬었다. 해외라고 의욕을 가지고 달려서 다시 아플까 봐 걱정돼서 살살 달렸다. 한 1km 정도 달렸을까. 큰 다리를 지나자 산책로가 끝나고 도로가 나왔다. 길가에는 차들이 주차해 있었다. 산책로가 도심으로 바뀌었다. 너무 멀리 가면 돌아올 때 힘들까 봐 방향을 반대로 돌려서 달렸다. 확실히 반대 방향인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길은 산책로가 쭉 이어져 있었다. 달리기 좋았다. 마인강 중간중간에 크고 작은 다리가 나왔다. 나중에 이 다리를 한번 건너볼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다시 호텔을 지나 달리니 축구장이 나왔다. 이 역시 독일다웠다. 우리나라였으면 농구코트, 축구장 등이 있었을 텐데, 축구장만 있었다. 축구장을 지나니 산책로가 나왔다. 산책로를 따라 양 옆에 큰 가로수 나무가 서있고 중간중간 노란 은행나무가 보였다. 짙은 초록과 노란 은행잎이 어우러져 있다. 길 옆으로는 노랗게 바랜 나뭇잎들이 수북하게 흩어져 있다. 그리고 그 옆으로 고요하지만 검은 마인강이 펼쳐져 있다. 마인강은 마치 멈춰있는 듯 잔 파도조차 없었다.
마인 강변을 따라 달리다 보면 독일스러운 건물이 보였다. 그리고 맨 오른쪽 가을을 알리는 은행나무잎이 활짝핀 나무 2그루가 인상적이었다. 그럼에도 그 풍경이 왠지 이국적이었다. 일산호수공원 가을 길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독일이라 그런지 말로 표현하기 어렵게 색달랐다. 그리고 산책길 중간중간에 TV에서나 보던 옛 독일 건물들이 보였다. 한참을 달렸을까 마인강변에 위치한 거버뮐러(Gerbermuhle) 건물이 보였다. 처음에 울타리가 쳐져있고, 피크닉 테이블과 마당, 그리고 그네가 있어서 유치원인가 싶었다. 나중에 프랑크푸르트에 파견 나와있는 대학 동기 S에게 들으니 호텔이었다. 이날 이 호텔 식당에서 S와 저녁을 먹었으면서 들었다.
천천히, 달리는 도중 사진을 찍으며 달리다가 큰 다리를 만났다. 스마트워치를 보니 어느새 4km를 넘게 달렸다. 오스트하펜브릿지(Osthafen-bridge)까지만 달리고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 이날 6.05km를 달렸다. 대회 이후 오랜만에 달린 것 치고는 가볍게 달린 느낌이었다.
항상 느끼는 바지만, 새로운 도시를 찾아 한번 달리고 나면 그 도시의 낯섦이 사라진다. 잠깐 달렸다는 자체만으로 도시에 한층 더 친밀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새벽길이 안전함을 알게 되자 한결 마음이 놓였다.
마인강변을 따라 조성된 공원 산책로(왼쪽)과 둘째날 달린 코스(출처: 삼성헬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