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날, 다시 달리기로 했다. 전날 만난 친구 S 설명에 따르면 마인강변을 따라가면 프랑크푸르트 도심까지 얼마 안 걸린다고 했다. 생각보다 프랑크푸르트라는 도시가 그렇게 크지 않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또 호기심이 동했다. 어차피 마지막날인데 도심까지 되는대로 달리기로 했다.
마지막날은 전날과는 달리 아침 9시부터 회의가 잡혔다. 8시까지는 호텔에 들어와야 했다. 전날처럼 일출 시간인 7시 20분에 맞춰 달리다가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계산이 들었다. 그래서 6시 30분에 호텔을 나섰다. 아직 어두컴컴했지만 전날 달려봐서 어느 정도 길은 익숙했다. 또한 마인강을 따라 달리기 때문에 길을 잃을 염려도 없었다. 게다가 곳곳에 가로등이 있어 어두워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뿔싸! 착각이었다. 막상 나가서 조금 달리니 눈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졌다. 이런! 가로등이 없었다. 어둠 그 자체였다. 전날 후레시를 켜고 달리는 러너나 자전거가 안전을 위한 시민 의식이 발현된 것이 아니었다. 진짜로 어두컴컴한 길을 달리기 위함이었다. 역시 한두 가지 사례로 일반화시켜서 단정 지으면 안 된다. 시민의식이 아니라 필요해서 후레시를 킨 것이었다.
마인강을 따라 난 공원 산책로 저 멀리서 자전거 불빛이 보인다.
어제 달린 길이지만 막상 어두운 길을 달리니 괜스레 오싹해졌다. 뒷목을 따라 등줄기까지 소름이 돋았다. 그래도 잘 모르는 동네다 보니 어둠 속에서 괴한이 튀어나올 것 같아 무서웠다. 다행히 저 멀리 보이는 자전거 불빛이, 아니면 뒤에서 빛을 비추며 나를 스쳐 지나가는 자전거의 불빛이 반갑고 지나가니 또 아쉬웠다. 마침 한 손에 든 스마트폰을 보니 후레시 기능이 있음이 떠올랐다. 그래서 바로 후레시를 켜고 달렸다. 마음이 조금은 안정됐다. 어두운 길에 후레시 없이 달리다가는 자전거가 나를 인지 못해서 충돌 사고가 날 것 같았다.
지난주 사랑밭 마라톤 대회 이후 푹 쉬어서 그런지 이날 역시 몸과 발걸음이 가벼웠다. 스마트워치를 보니 속도는 10.1km/h였다. 호흡도 순조롭다. 아무래도 지금 나한테 맞는 속도는 10km/h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른발에 무리가 가지 않게 보폭을 좁혀 달렸는데도 생각보다 속도가 나왔다.
날이 어두웠지만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길이 낯이 익었다. 축구장, 산책로에 이어 어제 S와 저녁을 먹었던 호텔 거버뮐러에 도달하자 1km를 달렸다는 진동이 울렸다. 호텔 거버뮐러 옆 길에서 저 멀리 프랑크푸르트 도시의 마천루가 밝게 빛나고 있었다. S가 호텔 거버뮐러 인근 강변이 프랑크푸르트의 야경이 잘 보이는 핫 스폿이라고 소개했다.
마인강변에 위치한 거버뮐러 호텔(왼쪽)과 호텔 인근에서 바라본 프랑크푸르트 시내 모습.
그렇게 산책로를 따라 달렸다. 맞은편에서 어둠을 뚫고 달려오는 러너들이 보였다. 모든 러너들이 이마에 후레시를 달고 달리는 것은 아니었다. 전날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전날보다 더 이른 시간애 달려 훨씬 어두웠음에도 오히려 이날 마주친 러너 대부분이 이마에 후레시가 없었다. 나도 슬그머니 스마트폰의 후레시를 끄고 달렸다.
어제 방향을 돌렸던 다리를 하나 지났다. 저 멀리서 또 다리가 보였다. 그래 저 다리를 보고 달리자. 그렇게 3~4개 다리를 지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별생각 없이 길만 보며 달렸다. 달린다는 자체가 기분이 좋았다. 다리를 하나씩 지날 때마다 호텔 거버뮐러에서 본 프랑크푸르트의 마천루가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얼마나 달렸을까? 산책로가 끝나고 아스팔드 길이 쭉 이어졌다. 어둠이 짙게 깔린 강변에 아스팔트 길을 따라 밝게 빛나는 가로등들이 쭉 이어져 운치가 있었다. 마치 미국 워싱턴 DC의 링컨 대통령 동상이 있는 공원의 야경과 흡사했다.
프랑크푸르트에 가까워져 갈 수록 가로등이 길게 늘어선 산책로가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여기서부터는 새벽 달리기를 하는 러너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기온은 4도~5도. 이미 초겨울 날씬데 반바지에 반팔을 입고 달리는 러더, 나처럼 완전 무장을 하고 달리는 러너 등 복장이 천차만별이었다. 점점 프랑크푸르트 시내가 가까워졌다. 스마트워치를 보니 델타 호텔스 바이 메리어트에서 4km 정도 달려왔다. 1km 더 달리면 시내에 들어설 것 같았다. 하지만 괜한 욕심부리다가 늦을 수 있겠다 싶어 방향을 돌렸다.
호텔로 향해 달렸다. 올 때는 몰랐는데 방향을 바꾸니 강바람이 세게 불어왔다. 몸이 가볍다고 느낀 것이 등바람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발걸음은 여전히 가벼웠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이 페이스로 달리면서 체력을 늘려야겠다 싶었다.
마인 강변을 따라 달리면서 문뜩 다리를 하나씩 지날 때마다 프랑크푸르트 시내 사진을 찍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멈춰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다음 다리는 나무에 가려 사진 뷰가 나오는 장소가 없었다. 그렇게 달리다 사진 찍고 또 달렸다. 아스팔트 길이 끝나고 어느덧 다시 가로수 나무에 둘러싸인 산책로가 나왔다. 오늘따라 거리가 짧게만 느껴졌다.
멀리서 바라본 프랑크푸르드 시내의 모습. 왼쪽부터 가장 멀리서 찍었다.
저 멀리 델타 호텔스 바이 메리어트 간판이 보였다. 벌써 호텔이 가까워 왔다. 스마트워치를 봤다. 갈 때는 분명 4km를 달렸는데, 호텔에 다가오는데 전체 달린 거리가 7km 조금 넘었다. 갈 때랑 올 때 거리가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속도가 10.5km/h로 조금 빨라져서 그런가? 그래도 8km는 채우고 싶었다. 그래서 호텔을 지나쳤다.
마침 한국에서부터 달려보고 싶었던 구간이 있었다.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를 달리는 것이다. 이참에 마인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를 달려봐야겠다 싶었다. 마인 강변을 따라 달리면 수시로 다리를 보게 된다. 그래서 다음에 나오는 다리에 올라 달리기로 했다. 하필 다음 나온 다리가 차들이 많이 달리는 큰 다리였다. 이름은 카이저라이다리(Kaiserlei-bridge). 멀리서 보니 다리를 달려서 건너는 러너가 보였다. 계단을 올라 다리 위로 올라갔다. 차도 양 옆에 인도가 나 있었다. 막상 달리니 거센 강바람은 없었다. 다만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만이 가득했다. 그래도 다리 중간에 서서 마인강을 따라 난 프랑크푸르트를 보았다. 그리고 다리 반대편을 찍고 돌아왔다.
마인강를 가로지르는 대교 카이저라이다리에서 바라본 마인강변과 셋쨰날 달린 러닝코스(출처: 삼성헬스)
다행이었다. 그래도 8km는 달릴 체력이 남아있었다. 지난 대회에서 10km를 완주하지 못해 내심 맘에 걸렸다. 하지만 이날 8km를 달리면서 몸에 무리가 없었다. 날씨 탓일까? 대회 날은 금방 더웠고 햇살도 강했다. 하지만 마인강변은 찬 바람이 몸에 더위를 식혀줬다. 그래서 지치지 않고 달린 것 같다.
호텔로 들어가는 샛길이 눈앞에 보였다. 스마트워치를 확인했다. 8.01km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오랜만에 기분 좋게 달렸다.
다음에 다시 오게 되면 마인강을 따라 프랑크푸르트 시내까지 달려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프랑크푸르트 원정기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