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일산호수공원을 달리며 호수교 밑에 들어서고 있다. 천천히 달리기의 단점 중 하나는 사진을 찍으면 걷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더 빨리! 더 오래!'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 한동안 더 빨리 그리고 더 오래 달리는 것이 잘 달리는 것인 줄 알았다. 아니 그래야만 운동이 되는 줄 알았다. 빡시게 운동해서 땀을 한 바가지 흘리야지 운동 효과가 있을 것이라 믿었다.
특히 러닝머신을 달릴 때 나를 강하게 몰아붙였다. 그래서 평일 회사 피트니스에서 최소 5km를 달렸다. 5km 구간을 달리면서 속도를 조금씩 높이거나, 인터벌 달리기를 하거나, 30분 이상 같은 속도로 달렸다. 그러고 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으로 흠뻑 젖는다. 이런 패턴을 꾸준하게 유지했다.
야외를 달릴 때는 오히려 여유롭게 달렸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는 진심으로 열심히 달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꾀가 생겼다. 최근에는 실외를 달릴 때는 5km를 30분~32분에 달리고 있다. 새벽에 집에서 일산호수공원까지 워밍업 개념으로 천천히 달리다가 호수공원에 들어서면 나도 모르게 속도가 빨라진다. 원래는 호수공원까지 걸어가서 호수공원 들어서면서부터 달렸다. 그런데 어느 날 걷는 거리가 낭비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집에서 호수공원까지 워밍업 해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천천히 달리고 있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2년간 강한 강도로만 달리니, 말 그대로 슬럼프 또는 권태기가 왔다. 게다가 올해부터 몸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족저근막염, 발목 통증 등 잔부상이 이어지며 휴식이 절실했다. 그래서 휴식 개념으로 평일에 2일은 러닝머신에서 걸었다. 그랬더니 운동량이 성에 안 찼다. 20분 이상 빠른 걸음인 6.5km/h로 걸으면 그래도 땀은 났다. 하지만 심장에 자극이 너무 약했다. 매일같이 심장이 생동감을 뽐내며 팔딱팔딱 뛰도록 운동을 하다가, 너무 점잖게 운동을 해서 그런지 심장이 돌덩이에 눌린 듯 답답했다.
그래서 천천히 달리기를 시작했다. 속도는 빨리 걷는 속도인 6.5km/h~7km/h. 그래도 성에 안 차지만 걷는 것보다는 운동을 하는 기분이었다. 평소 달리기보다 강도가 낮고, 호흡도 안정적이었다. 그리고 20분 이상 달리면 적당히 땀도 났다. 결정적으로 편했다. 그래서 괜히 몸이 무겁거나 전날 잠을 잘 못 잔 날은 천천히 달렸다. 꾀를 부렸다.
천천히 달리는 것은 의외로 어렵다. 평소 보폭으로 천천히 달리려면 다리를 천천히 들어서 천천히 땅을 디뎌야 한다. 그런데 이게 달리는 것도 아닌 걷는 것도 아닌 어정쩡하기만 하다. 아니 오히려 큰 보복으로 걷게 된다. 그래서 평소보다 보폭을 최대한 좁혀서 달렸다. 평소 보통 달리기 보폭의 1/3 정도 생각하고 짧게 끊으면 다리가 움직이는 속도가 평상시 달리는 속도로 유지된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역시, 일산호수공원을 천천히 달리면서 거리를 늘려갔다. 나의 운동 멘토인 모임필라테스(Moim Pilates)의 LS 원장님이 천천히 달려보라고 추천했다. 아마 내 기억엔 매우 빠르게 걷는 속도인 8.0km/h로 달려보라 했었다. 첫날 막상 저속으로 달리려니 달리기 자세가 안 나왔다 그래서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살짝 달리기 모드로 바꾸니 달리기가 유지됐다. 그렇게 달리는 거리를 500m, 1km, 2km, 3km, 4km, 그리고 호수공원 1바퀴(4.71km)까지 늘렸다.
그래서 다시 천천히 달리기를 할 때 크게 어렵지 않았다. 다만, 러닝 머신에서 천천히 달렸다. 실외에서 달리면 러닝머신처럼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마냥 스마트 워치만 보고 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대략 감으로 대화할 수 있는 정도의 심박을 유지하면서 달린다. 천천히 달린다고 달렸지만, 스마트 워치를 보면 속도가 9km/h~10km/h였다. 물론 일본 삿포로나 여수에서는 관광모드로 천천히 달린다고 했지만 그래도 9km/h 속도로 달렸을 것 같다. 반면 러닝머신은 속도를 고정해 놓고 달릴 수 있기 때문에 천천히 달리기 연습하기에 좋다.
※ 지난 8월 여수 오동도 방파제를 달렸다. 천천히 달리기의 단점 중 하나는 사진을 찍으면 걷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천천히 달리면 체력 소모가 적어서 덜 힘들다는 장점(?) 외에 다른 장점이 있다. 내 자세를 점검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아무래도 빠르게 달릴 때보다는 내가 달리는 자세에 집중이 잘 된다.
빨리 달리면서 자세를 점검하기가 어렵다. 아니 지속적으로 자세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속도가 빠를수록 체력 소모가 크고, 심박수가 빨라진다. 자세에 집중을 해도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호흡에 신경을 쓰고 있다. 모든 에너지가 달리는데 집중되어 자세를 차분히 신경 쓸 여유가 없다. 하지만 호흡이 안정되는 수준을 유지하면서 천천히 달리면 자세에 대해 좀 더 집중을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신경 쓰는 부분은 등과 무릎의 움직임이다. 달리기를 하면서 새삼 깨달은 것 중 하나는 태어나서 자연스럽게 몸에 익은 달리기 자세가 좋은 자세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상체를 기울여서 달렸다고 생각했지만, 등이 말린 채 구부정하게 달렸다. 그러니 하체와 팔로만 달렸다. 코어 근육을 제대로 사용 못 했다.
그래서 달리면서 내 몸과 다리가 움직이는 메커니즘을 조금씩 교정(?)하고 있다. 전문 코치에게 배우진 않지만, 달리다 보면 자세를 미묘하게 바꿨을 때, 움직임이 유독 가볍거나 힘이 잘 분산되는 자세가 있다. 그 느낌을 찾아 달리기 자세를 교정하고 있다. 물론 유튜브나 달리기 자세에 대한 책을 보며 힌트를 얻기도 한다.
최근에는 코어를 쓰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달리면서, 혹은 걸으면서 코어에 자극이 오는 느낌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특히 아랫배. 평소에 등을 구부정하게 말아서 움직이니 코어를 쓸 일이 적었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졌다. 나는 상체를 지면과 수직으로 세웠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10도 정도 앞으로 몸이 기울인 자세였다.
꾸준히 배우고 있는 필라테스의 장점 중 하나가 내 자세를 제대로 알게 된다는 것이다. 평소 서있거나 걷는 내 자세가 얼마나 밸런스가 깨지고 나쁜 자세였는지 깨닫고 이를 바른 자세로 교정해 나가는 것이 필라테스의 효과다. 나 또한 LS 원장님에게 팔라테스를 배우면서 바른 자세 만들기를 몸에 익히고 있다.
내가 느끼기에 평소 흉추가 과도하게 굽혀져 있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최근에는 가슴을 펴고 굽혀진 척추를 세우는 연습을 하고 있다. 등을 펴는 연습을 하면서 이 자세를 걷거나 달리는 자세에 적용해 봤다. 특히 등을 펴서 상체를 꼿꼿하게 세우니 드디어 아랫배에 자극이 느껴졌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태어나서 이런 느낌 처음이었다. 그래서 쇄골을 뒤로 펴고, 등을 세우고 아랫배를 당긴 자세를 유지하면서 달리고자 한다.
그리고 하체 움직임도 자세를 수정하고 있다. 상체가 먼저 앞으로 나가고 다리가 몸에 끌려 나오듯이 달렸다. 그것을 상체를 세우고 무릎이 먼저 상체보다 앞으로 나가도록 연습 중이다. 이 자세로 달리면 다리가 한결 가벼웠기 때문이다. 느낌적으로 이야기하면 러닝머신보다 내 하체가 더 빠르게 움직이는 기분으로 달리는 연습을 하고 있다.
한두 번으로 자세가 바뀔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 식으로 연습을 하다 보면 자세가 자연스럽게 몸에 익을 것이다. 억지로 의식하지 않아도, 속도가 빨라져도 새로운 자세가 나오도록 연습하고 있다.
또한 느리게 달리기로 달리는 시간을 늘리고 있다. 필라테스 강사 이슬기님의 '백 년 체력을 위한 달리기 처방전' 책을 보면, 내가 천천히 달리기로 거리를 늘렸듯이 달리는 시간을 늘리는 방법이 소개됐다. 이에 착안해서 천천히 달리기로 달리는 시간을 늘려보고 있다. 내 체력을 한 시간 이상 달릴 수 있도록 적응을 시키는 것이다. 내년까지 10km를 넘어 하프마라톤을 달릴 수 있는 체력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시험 삼아 한 시간 동안 천천히 달렸다. 그 결과 온몸이 땀범벅이었고, 허벅지 근육이 묵직한 것이 운동 효과가 느껴졌다.
물론 이 악물고 힘을 쥐어짜 내면서 달리면, 단 시간 내에 거리와 시간을 늘릴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 괴로울 것 같다. 차라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금씩 점진적으로 늘려가는 것이 몸에 무리가 적을 것 같다. 게다가 요즘 잔부상이 많아서 세게 달리고 싶지 않다. 고백하자면 편하게 운동하고 싶은 마음도 쪼금 있는 것이 사실이다. 확실히 슬럼프다. 그래도 쉬는 것보다는 달리는 방법에 변주를 줘 기분 전환을 시도해 보고 있다. 지금까지는 성공적이다.
빠르게 달리는 것만이 운동이 아니다. 천천히 달려도 충분히 내가 원하는 운동 효과를 낼 수 있다. 가끔은 페이스를 낮추는 것이 스스로를 점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너무 편안함에 안주하게 되면 운동 효과가 없어지겠지만, 휴식 겸 천천히 달리기를 곁들이는 것은 한 단계 더 도약의 기회가 될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