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린이 다이어리 50
"성인병이냐? 골병 사이이냐?"
무슨 소리냐 하면!
내가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순전히 건강 때문이었다. 30대를 지나 40대 중반이 되면서 어느새 몸이 불었다. 동작 하나하나도 버거울 때가 많았다. 안 그래도 '운동을 좀 해야지'하는 생각이 늘 머리에 있었다.
결정적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당뇨로 고생을 하셨다. 당뇨인데 운동도 안 하고, 식단도 건강 식단을 지키기 어려워하셨다. 그러다나 당뇨가 결국 치매로 이어졌고, 치매로 수년간 투병을 하시다가 작년(2023년)에 돌아가셨다.
게다가 어느새 내 주변을 둘러보면 성인병을 앓고 있는 동년배들이 많았다.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등 낯설었던 병명이 어느새 익숙해졌다. 그만큼 성인병이 내 가까이 와 있었다. 나도 건강검진을 받으면 발병은 하지 않았지만 항상 위험군에 있었다. 체중은 과체중인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성인병은 아니지만 나 역시 수면무호흡 증상, 족저근막염 증상이 있었다. 수면 무호흡은 자다가 기도가 막혀 숨을 못 쉬는 증상이다. 자면서 어느 순간 숨이 막힌다. 목구멍이 막혀 공기가 목으로 들어오지 않는 느낌이다. 그렇게 괴로워하다가 목구멍이 뚫리면서 잠에서 깨곤 했다. 이렇게 자다가 호흡이 막혀 '이러다 죽겠다' 싶었다. 대학 병원에 갔더니 나이가 들고, 살이 찌고 늘어지면서 기도가 좁아졌다는 설명이었다. 그래서 수면 무호흡증을 방지하기 위해 산소 호흡 장비도 샀지만, 코와 입에 산소 호흡기를 대고 자는 것이 영 적응이 안 됐다. 신경 쓰여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몇 번 하다가 말았다.
지금 다시 나를 괴롭히고 있는 족저근막염 증상도 체중이 불면서 나타났다. 몸이 무거워지면서 발에 가해지는 무게와 충격도 커지면서, 족저근막염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수면 무호흡증이나 족저근막염의 근본적인 원인은 '살'이었다. 살이 몸 곳곳에 붙고, 체중이 무거워지면서 몸에 무리가 가해진 것이다. 그래서 운동을 해서 살을 '꼭' 빼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스노보드, 농구, 수상스키, 헬스, 필라테스 등 여러 운동을 해봤다. 다행히 어려서부터 운동하는 것을 좋아했다. 사실 체중 감량에 큰 효과는 없었지만 헬스나 필라테스를 통해 꾸준히 운동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었다.
그러다가 3년 전 모임 필라테스 LS 원장님 권유로 시작한 '스위치온 다이어트'를 계기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탄수화물을 줄여 식단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인데, 식단과 함께 운동을 할 것을 추천하고 있었다. (스위치온 다이어트를 하면서 '박영우 박사의 스위치온 다이어트' 책을 3번 읽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달리기였다. 체중이 줄고, 혈액 순환이 잘되니 성인병의 위협에서 벗어났다. 게다가 체력까지 좋아지니 하루하루가 활기찼다. 그래서 달리면 달릴수록 달리기의 매력에 푹 빠졌다. 지난 2년간 매일 5km 이상 달리다시피 했다.
문제는 너무 푹 빠졌다. 다이어트 식단을 계속 유지할 순 없어서, 어느 정도 체중 감량 후 정상 식단으로 돌아왔다. 대신 운동을 꾸준히 했다. 그런데 어느새 몸이 운동량에 적응을 한 건지, 잘 먹어서 그런 것인지, 다시 체중이 야금야금 늘어갔다. 게다가 휴식 없이 매일 달리니 몸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동안 잊고 있었던 족저근막염 증상이 다시 나타났다. 그래도 올해 상반기에는 발바닥이 불편해도 조금 달리면 증상이 사라졌다. 그래서 달렸다. 그런데 지난 10월 말 안양천에서 열린 사랑밭 기부런 'Bravo ur Running' 대회 참가하고 나서 족저근막염 증상이 심해졌다. 대회를 마치고 나서 오른발로 땅을 디딜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이 찾아왔다. 마치 날카로운 바늘로 오른발 뒤꿈치 앞부분을 마구 찌르는 듯한 통증이었다. 이러다가 평생 달리기를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결국 발병이 났다.
다행히 발만 그렇다. 무릎이나 발목은 괜찮다.
그래서 그 후 쭉 쉬고 있다. 그나마 11월에 독일 프랑크푸르트 출장 갔을 때, 마인강을 따라 난 길게 난 산책로를 보고 살살 달리긴 했지만, 그 후 발바닥에 충격이 가지 않는 걷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발의 불편함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반년전만 해도 이 정도면 달려도 되겠다 싶어서 달렸다. 그런데 이번엔 진짜 아팠다. 달리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쉬면 좀 낫겠지 했는데, 아무래도 통증이 지속되는 것이 예전 같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 재활의학과 의사인 친구 역시 이번엔 통증이 없어질 때까지 달리지 말라고 충고했다. 내가 운동 중독인 것을 알아서 웬만해서는 말리지 않던 친구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이번에는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비싸긴 하지만 충격파 치료가 제법 효과가 있다. 치료를 받을 때는 정말 아프다. 게다가 충격파로 인한 통증의 종류도 부위별로 다 다르다. 망치로 세게 때리는 듯 한, 또는 뜨겁게 달궈진 쇠를 대는 듯 한, 뾰족한 물체로 찌르는 듯한 다양한 통증이 느껴진다. 아프긴 하지만 치료를 받고 나면 통증이 있는 부위에 통증이 사라지고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이후 통증이 없어질 때까지 무리하면 안 된다.
달리기를 쉬니 몸이 근질근질했다. 피트니스에서 근육 운동이나 필라테스 동작을 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유산소 운동이 필요했다. 걷기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자전거를 탔는데, 피트니스에 있는 자전거가 등받이가 있는 자전거여서 등을 등받이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상체에 긴장감 없이 늘어지는 느낌이 싫었다. 스테퍼를 해보았다. 뭔가 깔짝 깔짝 걷는 것이 운동하는 것 같지 않았다. 이럴 때 회사 피트니스에 '천국의 계단'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다시 러닝머신에 올라 걷기에 기울기를 넣었더니 그나마 운동한 기분이 났다. 나에게 운동한 기분은 땀 흠뻑이다. 양손으로 얼굴에 땀을 쓸어내릴 정도로 땀이 나야 운동을 한 것 같다. 당분간은 기울기를 10 이상으로 높여 걷고 있다.
달리기를 못하니 자연스럽게 대체 운동을 고민하게 됐다. 자전거를 사서 자전거를 타볼까? 그러려니 자전거를 사야 하고, 자전거를 끌고 다니는 것이 번거로울 것 같다. 수영을 배워볼까? 겨울인데 추울 것 같다. 그리고 근처에 수영장을 찾아야 한다. 이 역시 번거롭다. 등산을 해볼까? 등산하기 위해 차를 끌고 산을 찾아가야 한다. 귀찮다. 돌이켜보면 달리기의 가장 큰 장점이 간편하고 어디서든 달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집 밖에 나가 일산호수공원까지 10분이면 간다. 게다가 가는 길도 달려서 간다. 자전거, 수영, 등산 모두 다 제대로 해보진 않았지만 왠지 달리기가 주는 쾌감과 성취감에 못 미칠 것 같다.
나에게 달리기의 매력 중 하나가 야외 달리기였다. 그런 맥락으로 보면 그나마 대체 운동으로 자전거나 등산이 가장 낫지 않을까 싶다. 계속 고민 중이다.
그리고 걷는 자세, 달리는 자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있다. 발로 땅을 디딜 때 너무 쿵쿵 딛는 것이 아닐까? 충격이 덜 가도록 발바닥이 뒤꿈치부터 지면에 부드럽게 닿도록 연습을 해야 할까? 그러면 발바닥에 가해지는 충격이 적지 않을까?
아프니까 생각이 많아진다.
결국 성인병을 피해 달리기를 시작했지만, 무리해서 골병이 들었다. 그래도 성인병과 골병 사이에서 다시 선택하라면 달리기를 선택할 것이다.
지금은 달리고 싶은 충동을 참는 법을 연습 중이다. 러닝머신 위를 걸으면서도 수차례 '살살 뛰어도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발이 조금만 괜찮다 싶으면 그만큼 달리고 싶어 몸과 마음이 근질근질하다. 그래도 불편함이 없어질 때까지는 참아보기로 했다. 건강할 때는 하기 힘들었던 쉬는 연습을 아프고 나서야 하고 있다. 나의 미련함이란.
그래도 달리기에 빠진 것에 후회는 없다. 다만 다시 달리고 싶을 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