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는 하프 마라톤, 10km, 5km 참가자 순으로 출발했다. 8시 30분이 다가오자 하프 마라톤 참가자들이 출발선 가까이 오라는 안내가 나왔다. 아침 날씨가 살짝 구름이 끼고 선선했음에도 출발 사인을 기다리는 러너들의 열기로 주변이 후끈후끈 달아올랐다. 웅성 웅성 소리에 저 앞에 사회자의 진행소리가 잘 들리지 않지만, 곧 하프 마라톤이 출발한다는 내용이었다.
하프마라톤 참가자들이 출발 신호와 함께 함성을 지르면서 출발하자, 그 빈자리를 10km 참가자들이 앞으로 나가면서 매웠다. 10km 대회는 하프 마라톤 시작 10분 뒤인 8시 40분 출발이었다. 5km 대회 참가하는 P 대리는 뒤로 이동했다.
곧 출발이다. 두근두근 했다. 어제의 불안감은 사라지고, 출발 신호가 나면 이 많은 인파가 어떻게 달려 나갈지 궁금했다.
진행자가 10km는 참가자가 4000명으로 4 차례로 나눠서 출발할 것이고 설명했다. 어차피 10km부터는 기록은 배번표에 붙어있는 마이크로칩으로 측정되니, 출발 시간이 달라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다만, 내 마음은 빨리 출발하고 싶어 살짝 안달이 났다.
나는 운이 좋게도 첫 번째 그룹의 마지막이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P 과장은 3번째 그룹으로 나보다 5분 늦게 출발했다고 한다.
"구팔! 칠! 육! 오! 사! 삼! 이! 일! 출발!'
진행자의 출발 사인과 함께 10km 참가자들이 함성을 지르며 마치 걷는 속도로 달리듯이 천천히 앞으로 나갔다. 앞 주자들이 달려 나가면서, 서서히 뒤 그룹도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드라마나 TV에서 보듯이 출발 신호와 함께 우르르 달려 나가는 것은 선두에 선 참가자들의 이야기였다. 중간에서는 인파로 인해 쉽게 나가기 힘들었다.
코스는 평화의 광장에서 시작해 별자리 광장-메트로폴리스길-연결브릿지-난지천공원-노을계단부근에서 반환해서 돌아오는 길이다. 사실 인파에 파 묻혀, 앞 주자들을 따라갔더니 대회가 끝나고 나서 떠올려봐도 어디가 어디인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앞 주자들을 따라가며 조금씩 속도를 높였다. 별자리 광장을 지나 메트로폴리스길이 나오는데 내리막 길이었다. 시작부터 내리막 길이 나오면서 속도가 붙는 느낌이다. 평상시 일산호수공원을 달리면서 스마트워치를 거의 보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만은 오버페이스가 되지 않게 속도를 확인했다. 12km/h. 확실히 대회라 그런지 평소보다 페이스가 빨랐다. 다만, 몸이 무리하는 느낌은 없었다. 다리가 가벼웠다. 2년간 호수공원을 달리면서 내 몸 상태에 대한 감각이 생겼다. 조금 속도가 붙었지만 무리한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래서 현재 속도로 계속 달렸다. 코스 중간중간에서 응원단들의 힘내라는 외침을 들으니, 한층 더 힘이 나는 것 같았다.
메트로폴리스길을 지나 연결브릿지를 건너 난지천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사이에서 행사 요원들이 차량 통제를 하는 것이 보였다. 차도 몇 대 서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니 문뜩 '저 차들은 언제까지 대기하는 걸까? 아마도 러너들이 계속 달려 나오거나, 반환점을 돈 러너들이 계속 지나갈 텐데 무작정 기다릴 리는 없을 테고, 그렇다고 차량을 위해 러너들을 세우고 차량이 지나가도록 대기시키는 걸까?'라는 호기심이 들었다. 그 와중에 별 걱정을 다 한다 싶었다. 그리고 난지천공원에 들어서자마자 다시 달리기에 몰입했다.
어느덧 1km 사인을 지나쳤다. 체감 거리는 짧게 느껴졌다. '벌써 1km야?'라는 생각이 드는데 옆에서 다른 누군가가 "5분 30초 지났어!"라고 외쳤다. 다시 속도를 확인해 보니 12.3km/h이었다. 나 홀로 빠르게 치고 나가는 느낌은 아니었다. 나보다 느린 러너는 지나쳤지만 대체로 큰 흐름에 맞춰 달렸다. 내 주변에 나랑 페이스가 비슷한 러너들이 나와 함께 달리고 있었다. 호흡은 크게 힘들지 않았다. 아니. 내 호흡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인파 속에서 달리는 데 몰입했다.
러너들마다 속도가 제각각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앞사람을 추월하고 달리다 보면, 뒤에서 강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더니 나를 지나쳐 갔다. 새벽에 혼자 한적한 호수공원을 달리는 것과는 달랐다. 러너들이 많다 보니 내 페이스에 맞춰 추월하거나, 내 속도를 늦추거나, 아니면 추월하기 위해 빈 공간을 찾아 좌우로 이동해야 했다. 자칫하면 러너들끼리 부딪혀 사고가 날 수 있어, 주변 러너들의 움직임에 신경 쓰며 달렸다.
일산호수공원에서 달릴 때는 괜찮았는데, 2km가 되니 입이 마른 것이 느껴졌다. 다행히 2.5km 사인이 보이면서 음료수를 놔둔 책상이 보였다. 다들 달리면서 물 컵을 잡았다. 나도 곁으로 다가가서 컵을 잡는데, 어라? 이게 쉽지가 않았다. 달리는 속도가 있고, 앞사람과의 거리를 조절하다 보니 내 속도를 유지하며 컵을 잡아 드는 타이밍을 잡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속도를 늦추기 싫었다. 자칫하면 컵을 놓쳐 옆으로 쏟을 뻔했다. 용케 컵을 들었는데, 팔 진동으로 1/3은 이미 컵 밖으로 쏟아졌다. 겨우 컵을 입에 가져다 한 모금 마시고 입안을 헹구고 옆으로 사람이 없는 곳에 뱉었다. 그냥 물이었다.
대체 나는 왜 포카리 스위트 같은 이온음료를 기대했던 걸까? 게다가 시원한 느낌도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바짝 말라가는 입안에 물기가 돌아왔다.
마음 같아서는 남은 물을 얼굴에 뿌리면 한층 더 시원할 것 같았지만, 자칫 뒤의 러너에게 물이 튈 것 같았다. 그래서 빈 컵을 테이블 밑에 마련된 쓰레기 봉지에 던졌다.
'나는 매너 있는 러너다'라며 속으로 외쳤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얼굴에 뿌리지 말고, 컵을 머리 위로 들어 머리로 뿌리면 뒷사람에게 튈 걱정을 안 해도 됐다.
희한한 것은 대회의 거리와 스마트워치가 측정하는 거리가 500m 정도 차이가 나는 것 같았다. 2.5km 구간에서 2km가 지났다는 진동이 느껴졌다.
한 1km 정도 더 달렸을까? 저쪽에서 자전거를 탄 행사 관계자가 호루라기를 불면서 길 왼쪽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곧이어 반환점을 돈 하프마라톤 선두 주자가 달려왔다.
'와! 진짜 빨리 달린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다 보니 저 앞에 '10km 반환점'이 보였다. 5km를 달렸다. 앞 선 주자들을 따라 반환점을 돌았다. 지금까지는 앞선 주자들의 등을 보며 달렸다. 달리는 코스 구경도 할 법하지만, 러너들 사이에 파묻혀 주변 경관을 보며 달릴 여유가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스팔트로 된 공원을 지나 언덕길을 달리다가 다리를 건넜고, 흙길로 된 길을 달리다가, 반환점을 돈 하프마라톤 선두주자를 만났다. 달리면서 우거진 나무의 푸른빛을 잠시 본 것이 기억의 전부였다.
대회 전 만난 견뚜기, K대리, P과장이 파이팅 포즈를 취하고 있다.(맨 왼쪽) 10km 참가자들이 출발을 앞두고 '10km' 깃발 아래 모여있다.(가운데, 오른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