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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의귀인 Jan 07. 2017

셔터 함부로 누르지 마라

그래 봤자, 직딩의 사진 #042

약 6개월간 사진 수강을 시작했다. 신선한 분들을 만나고 새로운 사진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느낌이다. 이번 주까지 세 번의 강의를 받았고 한 번의 과제 제출이 있었다. 이제부터 브런치에 포스팅하는 사진과 글은 그 수업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을 것 같다.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되고 어쨌든 오늘이 그 첫 번째 글이다. 혹시라도 나의 반성문처럼 느껴진다면 의도를 잘 파악하신 것으로 보면 된다.

한발 들어 / 강남역 6번출구 계단


한컷, 한컷이 목숨과도 같았던 때가 있었다


수업시간, 이 말씀을 처음 들었을 때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졌다. 디지털카메라가 대중화되기 전만 해도 35밀리 필름 사진의 한번 호흡은 24컷 혹은 36컷이 전부였다. 게다가 현상, 인화하기 전까지 본인이 촬영한 사진을 확인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즉 잘된 것을 좀 더 잘 찍어 보려 해도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에 사진가들은 그 호흡이 바뀌는 필름마다 새로운 마음가짐과 시도가 끊임없이 이루어졌을 것이라... 그 결과 한컷을 촬영하기 위한 노력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을 것이다.

보행자 통로 / 올림픽 공원 입구


나는 사진 한컷의 소중함을 몰랐다


손톱만 한 메모리 카드 한 장에 RAW 파일을 수천 장 저장할 수 있으니, 한컷에 쏟는 정성이 얼마나 될까? 그냥 셔터를 누를 뿐이고, 생각이란 거? 절대 없었다. 그저 피사체 바라보고 손가락만 움직인다. 실수? 본인이 실수한 것도 모르고 넘어간다. 아니 알면서도 고칠 생각도 안 하는 거지.


"해상도가 높기 때문에 대충 찍고 크롭 하면 되지 뭐."

"노출? 라이트룸으로 노출 보정하면 되지 뭐."

"역광? 그냥 HDR 키면 되지 뭐."

"빛? 난 밝은 렌즈라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됨."

"플래시? 그거 뭐하러 가지고 다녀? 귀찮게."

"취미인데 뭐, 대충 찍자."

"귀찮은데 그냥 프로그램 모드로 찍지 뭐."

"대충 길거리 찍고 흑백으로 바꾸면 멋있어 보이잖아."

"내 카메라는 연사 기능 죽이잖아. 연사로 막 찍으면 됨"

"여기는 세 번 정도 출사 왔으니 이제 난 완벽해! 졸업했다 치고 다른데 가볼까?"

"내가 못 찍은 것이 아니라 모델이 별로야. 모델이 더 예뻐야 됨."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그냥 흘려보냈을까? 1년 우리는 동안 찍은 수많은 사진 중에 땀방울을 흘릴 정도로 정말 신중하게 셔터를 눌러본 적이 있을까? 몰입을 통해 상대방의 숨소리는 물론 자신의 숨소리까지 느껴본 적이 있는가? 단 한 장이라도?


셔터를 누르기 전에 준비가 완벽해야 한다


이 말은 사진에 있어서 '진리'라고 본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이 결과물이 거의 끝나는 순간 이기 때문이다. 셔터를 누르기 전 얼마나 깊은 고민과 생각, 준비가 철저했느냐? 가 그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그 사실을 망각하고 사진을 찍는 것은 아닐까?

프레임에 넣고 싶은 것과 빼고 싶은 것을 명확하게 계산하여 프레임에 담아야 한다. 카메라에서 측정하는 '적정노출'을 고집하기보다 의도, 자신의 메시지에 맞춰 밝기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조리개를 이용한 심도와, 셔터스피드를 이용한 '역동성' 또한 셔터를 누르기 전에 계산에 포함되어야 한다.

이렇게 고려해야 될 부분을 명확하게 그린 상태가 되어야 비로소 셔터를 누를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가로, 세로, 대각선 / 남대문 시장에서


흑백 사진이라면 흑백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흑백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그냥 찍고 흑백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흑백의 눈을 가져야 한다. 흑백 필름을 사용하던 과거의 사진가들은 뷰파인더를 통해 세상을 흑백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은 컬러이지만 흑백으로 바뀌었을 때 어떻게 보일까? 어떤 컬러는 어느 정도의 명도를 갖게 될까? 예측을 하며 셔터를 눌러야 한다.

컬러와 흑백으로 많이 찍어보는 방법밖에 없다. 이 색들의 조합이 흑백으로 바뀌면 어떤 느낌을 줄 것인가? 를 예측해야 한다. 컬러사진일 때와 흑백사진일 때 히스토그램이 미세한 편차가 생기는 것도 머릿속에 미리 그려둘 필요가 있다.

오늘도 혼밥 / 남대문 시장에서


우리가 사진을 찍으며 오랫동안 무심결에 그냥 지나쳤던 수많은 것들이 있다. 실내 촬영을 하다 태양이 일시적으로 구름에 가려져 실내로 들어오는 빛의 양이 바뀌었을 때. 다이얼을 돌려서 노출 보정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

'귀찮아 그냥 찍고 라이트룸으로 보정하자.'라고 스스로 얼마나 많이 '그냥'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가? 아주 사소한 것일 수 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뭐 그까짓 거... 뭐 그렇게 까지...


그 차이다


큰 차이가 아니다. 미립자와 같은 미세한 차이.

엇갈린 시선


좋은 사진과 그렇지 않은 사진은 바로 그 차이로부터 시작한다. 피사체를 대하는 마음가짐과 자세. 셔터를 누르기 전 주변의 상황 변화에 얼마큼 민감하게 반응하고 행동할 수 있는지, 자신의 감정과 원하는 메시지를 얼마큼 정성스럽게 담으려고 노력하는지... 셔터를 누르기 전, 그 차이 말이다.


우리의 셔터는 제대로 준비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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