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학이 너무 싫다.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진 것들도 많지만, 유치원부터 지금까지 달라지지 않은 몇가지 것들 중 나의 '수학 알레르기증'이 있다.
수학은 일단 인정머리가 없다.
국어와 사회처럼 아주 약간의 단어차이를 허용하는 포용이 없다. 그냥 토씨하나 틀리면 끝인 것이다. 내생각엔 이것도 맞는 거 같은데, 아니란다. 아주 철두철미하시다.
그래도 어쨌든 몇년 이상을 계속 배우긴 해야 하니 부모님은 걱정이 되셨는지 학습지를 결국 시키셨다.내 생각엔 아마도 학교보다는 재미있게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약간은 가지셨던 것 같다.
어림도 없다.
수학 학습지를 풀려면 시간이 정말 너무 길게 걸렸다. 처음 쉬운 단계에서는 슥슥 풀었지만, 뒤로 갈 수록 빈칸이 많아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풀 수가 없는데, 틀린게 많으면 또 혼난다.
빈칸으로 내버려두면 고민도 안했다고 혼난다.
그래서 나는 금단의 영역에 손을 대고 말았다.
사실 처음에는 너무 모르겠어서 슬쩍 보고 스스로 풀어보려던 심산이었다.
아니 이렇게 푸는 거였다니! 너무 간단하잖아!
그러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슬금슬금 진하게 표시된 답안이 더 눈에 들어왔다. 어차피 베낄 것이라면,
'답안만 조금 고민한 척 잘 꾸며내면 되지 않을까'
들킬까봐 조마조마했던 초반을 지나, 한동안 즐거운 학습지 생활이 이어졌다. 그리고 답안을 쓰는 나의 기술도 점점 일취월장 발전했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난 진심으로 엄마가 그걸 잡아낼 줄 몰랐다.
나름 고민한척 연필을 떨면서 쓰기도 했고,
중간에 긋고 다시 계산한 척도 했으며
문제에다가 밑줄도 그었는데!
"너, 이거 진짜 니가 풀었어?" 라고 호랑이 눈빛으로 쳐다보는 엄마의 눈빛에 오그라드는 느낌이 든다.
"아아니~내가 풀었지! 조금 고민하긴 했어!"라고 말은 하지만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풀어봐 그럼."
내 앞에 놓여진 백지만큼이나 머리 속이 하얘진다.
내가 풀었던 문제들도 있었는데, 우연인지 내가 베낀 문제를 고르셨던 것이다. 운이 나쁘다.
정말 우리집은 매를 안들었는데, 이날은 정말 엎드려뻗쳐서 많이 맞았다. 아 서럽다. 진짜 어떻게 엄마는 알아낸걸까. 앞으로 저 수학문제들은 또 어떻게 푸나.
쇼파에서 엉엉 울고 한참이 지나자 엄마가 밥먹으라고 부르신다. 안먹는다고 하기엔 너무 울어서 배가 고파 어기적어기적 식탁으로 간다.
메뉴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케챱이 듬뿍 들어가서 약간 질척한 오므라이스다. 어른이 되고서야 오므라이스는 간단해보이지만 야채 손질이니 뭐니 손이 꽤나 가는 귀찮은 음식이란 걸 알았지만.
엄마표 오므라이스는 정말 맛있었고, 세상에서 제일서러운 오므라이스로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아직도 모르겠다. 엄마는 언제부터 나의 사기행각을 알고있었을까. 진짜 필압까지 조절해가면서 고민한척을 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알았지.
분명한건 수학은 여전히 싫지만 오므라이스는 서러웠어도 여전히 맛있다.
p.s. 그리고 수학을 여전히 못하지만 다른 분야를 잘 살려서 어른으로 꽤 잘 살고 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