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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경진 Jan 13. 2021

5000원의 행복

[13] 2021.01.13

운이 좋았다. 아빠가 공무원이셨던 덕에 IMF를 조용히 지나왔다. 작은 규모의 회사였지만,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취직을 했다.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일을 꾸준히 했고, 몇 번의 부침은 있었지만 스스로 돈을 벌어 여행도 많이 다녔다. 부자는 아니었지만 가난하지도 않았다. 생각보다 초년운이 좋은 인간이었을 거다.


어떤 선택을 망설이게 하는 이유는 많았지만, ‘돈’이 그 자리에 오는 경우는 적었다. 그러다 회사를 그만두고 덩그러니 혼자가 된 후부터는 종종 돈 얘기를 했다. 물건을 살 때마다 가격표를 봤고, 가능하면 더 싼 것을 골랐다. 다행히도 싼 가격의 많은 물건은 오히려 버려지는 게 더 많다는 것을 오랜 자취의 경험으로 알았고, 나를 더 돌보기로 결심한 시기여서 아주 최악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도 한 번씩 떠오르는 것이 일본 여행 때 자주 만난 버터를 얹은 두툼한 토스트와 커피세트다. 바삭한 식감 뒤에 찾아오는 고소한 폭신함. 하나하나 느껴지는 식빵의 촘촘한 결. 적당한 산미에 흐릿한 정신을 붙드는 커피 한 잔. 타인이 나를 위해 차려준 음식이라 더 기억에 남았을 테지만, 보드라운 식빵의 결은 값싼 식빵들과는 쉽게 구분이 되었다.


도제식빵을 먹은 날, 그때의 일본이 떠올랐다. 보드랍고 폭신하고 식빵만 먹어도 쫀득한. 도제식빵은 5,000원이었다. 그동안은 집 근처의 베이커리에서 3,600원하는 식빵을 자주 먹었다. 아주 맛있다는 후기에도 어쩔 수 없이 기존의 식빵과 비교를 했다. 나름의 현명하고도 괜찮은 소비라고 생각했는데 1,400원의 효과는 아주 뚜렷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5,000원이면 금세 행복해졌다. 맛만큼이나 나의 아침을 풍성하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이 나를 더 즐겁게 했다. 아침형 인간에게 아침의 행복은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했고, 푸석한 식빵은 종종 그 행복을 앗아갔다. 도제식빵만 있다면 매일의 시작이 순탄할 것 같았다. 엄마아빠가 만든 딸기잼과도 동생이 선물해준 카야잼과도 최근에 구입한 과카몰리딥과도 잘 어울리는 식빵을 오늘도 먹었다. 이렇게 행복할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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