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경진 Feb 01. 2021

80%의 우연

[15] 2021.01.31

“우연은 언제나 훌륭한 조수지.” 다 늦게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봤다. 작품은 여든여덟의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와 서른셋의 사진작가 JR이 트럭으로 프랑스의 지방을 돌며 현지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사진을 찍어 거대 구조물에 전시하는 이야기다.


마흔이 되고 나이의 굴레에 갇혀있는 나에게 여전히 무언가에 호기심을 갖고 몸을 움직이는 아녜스 바르다를 지켜본다는 것은 거대한 판타지에 가깝다. 부럽기 때문이었다. 그중에서도 우연에 자신을 맡겨보는 그 유연함이 그랬다.

도통 모닝요가 루틴이 잡히지 않아 수련하는 시간도, 수련과 수련 사이의 텀도 들쭉날쭉한 2020년을 보냈다. 당연하게도 요가 수련을 하는 날보다 건너뛴 날이 훨씬 많았고, 그것이 또 나를 꾸짖는 용도가 됐다. 그러다 오프닝-40분 수련-후 토크-클로징으로 이어지는 1시간 20분여 가량의 요가 소년 실시간 스트리밍을 한 번 틀어봤다. 영상의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수련 후 토크를 들으며 샤워까지 가능한 군더더기 없는 하루의 루틴이 생겼다. 9시에 일어나면 마음이 급해 수련을 빼먹거나 짧은 영상만을 찾아보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 루틴을 발견한 후부터는 기상시간과 상관없이 요가를 할 수 있었다. 30일 챌린지 중 24일을 했다. 연력에 요가한 날을 체크해주었더니 달력을 볼 때마다 뿌듯함도 함께다.


특히 매일 같은 동작을 하는 것이 아니라서 수련을 하며 자주 우연을 만났다. 완전히 처음 접해본 동작도, 예전에는 안 됐지만 지금은 조금이라도 가능해진 동작도 있었다. 예측할 수 없으면 뭐든지 좀 두려워하는 편이다. 그렇게 주춤거리다 한 발도 내딛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데 요가는 온전히 리더의 음성에 나를 맡긴다. 아마도 서서히 쌓인 변화의 조각을 스스로 알아차리면서 믿음이 되었겠지. 더 많은 우연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꽃을 받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