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에 야간반이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사실 누가 여고에 관심을 갖겠는가. 나 또한 설악산을 또 가게 되었다는 안타까운 현실을 깨닫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니 말이다.
똑같은 레퍼토리였다. 선생님만 바뀌었고 장소는 그대로였다. 날은 생각보다 맑았고 술은 그대로였다. 여전히 적응은 어려웠고 술은 날 괴롭게 했다. 이때쯤 나는 '현타'를 느끼며 이직을 고민하던 찰나였다.
고등학교 친구 중 한 명과 어찌 연락이 닿았다. 어떻게 지내냐는 물음에 '대기업'으로 답했다. 곧 계열사 채용기간인데 너도 한 번 도전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예전 같으면 흘려 들었겠지만 그날은 뭔가 뇌리에 꽂힐 정도로 달콤한 제안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글짓기에 들어갔다. 장르는 '자소설'. 주된 내용은 설악산을 정복해 사진을 찍어주며 아이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었다는 사연 등. 나는 이력서의 다양한 부분을 채우면서도 내심 고등학교 때의 출결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마음으로 일과 이력서를 병행했다.
낮에는 업무에 충실하고 틈틈이 자기소개에 작성할 만한 내용들을 머리에 구겨 넣은 뒤 집에 오면 작문과 채용 관련 공부를 했다.
한 달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1차 합격메일을 받아 볼 수 있었다. 면접과 시험 준비까지는 약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고 아래 자그마하게 적인 글귀에는 '합격 후 허위 서류 제출 및.. 어쩌고 저쩌고'라고 적혀있었고 아직 당락이 결정된 것도 아닌데 퇴사를 해야 하나 라는 고민에 사로잡혔다.
면접 준비를 위해 참 많이도 준비했다. 어머니와 함께 '실전압축모의면접'도 하며 면접관의 예상 질문에 대한 답도 준비해 갔다. 시험도 쳐야 했기에 교재를 구입해 피나게 공부했다. 정말 초중고 통틀어서 게임시간보다 더 많이 투자했다.
면접 당일 아버지께서 자차로 직접 태워주겠다며 아침에 현관문을 같이 열고 나가려다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다시 큰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어 조심스레, 그리고 어렵게나마 엄마에게 마음속 말을 입으로 꺼냈다.
엄마, 나 면접 다녀올게
엄마는 미리 사둔 청심환을 꺼내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이 날 얼마나 많은 청심환이 팔렸을까? 약을 만지작거리며 괜히 이런저런 생각들로 마음을 다잡았다.
아버지의 배웅시간은 무척이나 짧았다. 찰나의 시간이 흘러감에도 긴장감은 시간을 따라 심장을 꾹꾹 눌러 터트릴 정도로 뛰게 만들었다.
정문 앞에서 나를 내려주셨고, 곧바로 주머니에서 청심환을 꺼내 힘껏 씹으며 결의를 다졌다. 아버지께 꼭 붙겠습니다 인사하고 넥타이를 한번 더 점검했다. 여기저기서 다가오는 면접자들과 함께 전쟁터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시험은 어떻게 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저 본능에 충실하며 지금껏 준비해 온 대로 도전했고 무사히 잘 치를 수 있었다. 시험과 면접을 동시에 치르는 일정이라 오전엔 시험 오후엔 면접 일정이었다.
간단한 식사 후 오후 면접일정을 위해 복도의 큰 공간에 서로들 마주 보고 앉아 면접을 기다렸다. 복도는 각자들의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벽과 천장을 여기저기 때려댔다.
중얼거리는 그 환경에 오래 노출될수록 신경은 더욱 예민해지고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긴장감이 더해지니 손은 계속 땀이 차올랐고 입은 바짝 타들어갔다.
1시간여를 기다려 곧 내 이름이 호명되는 것을 듣고 제자리에 벌떡 일어나 다른 면접자들과 함께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목례 후 지정해 주는 자리에 앉았다. 나 말고 3명. 총 4명의 면접자와 3명의 면접관이 마주 보고 앉는 정적의 시간이 짧게나마 흘렀다. 삼키는 침조차도 표정을 망가뜨릴까 면접관을 마주 보며 입술 끝을 살짝 올리며 억지웃음을 지어댔다.
면접관 한분이 순서대로 1분 자기소개를 요청했고 3번째 순서인 나는 앞선 두 명의 멘트를 들으며 마음을 다잡았고 내 순서가 호명됨과 동시에 천천히 일어나 준비해 온 대로 정확히 55초 정도를 채워 자기소개를 끝마쳤다.
이 1분 자기소개를 위해 엄마와 나는 매일 타이머를 체크하며 문장을 짜 맞추고 발음을 끊임없이 연습했기에 누구보다 자신 있었고 기대했다.
그 뒤로도 이어진 질문에 가끔씩 막히는 다른 면접자들 대비 난 정말 준비해 온 대로 질문이 나왔기에 '몰래카메라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적재적소에 답변을 뱉어냈다.
"우리 회사의 주력 아이템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도 나 혼자만 여러 가지 아이템을 말하며 또박또박하고 정확하게 홈페이지에서 찾아냈던 내용들을 읊으며 면접관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짧은 듯 길고 험난한 시간을 거쳐 면접은 마무리되었다.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인사를 마치고 덜렁이는 다리를 간신히 붙잡고 면접장을 빠져나왔다. 완벽하게 면접을 잘 치르고 나왔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채워냈다.
오죽하면 다른 면접자들이 "합격 축하드립니다. 정말 많이 준비하셨네요!"라고 할 정도였으니 어깨에 뽕이 가득 차오르다 못해 어깨로 걸어 다니고 있었다.
'면접비'라는 이름의 흰 봉투를 받아 쥐고 합격의 기쁨을 미리 누리기라도 하는 듯 나는 자만심이 가득하다 못해 터져 나갈 만큼 만족했다. 너무 정답에 가깝게 질문이 완벽했기에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면접이 이렇게 쉬울 수 있는 건가? 실소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집을 향해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예비합격자의 느낌을 한 껏 누리고 있었다. 합격하고 번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보기도 했고 드디어 제대로 된 직장을 갖게 되었다는 생각에 부풀어있었다.
어머니에게 전화해 합격이 가까워졌음을 알리고 나는 가득 찬 뽕을 지금의 근무 중인 직장까지 가져왔다.
합격이 결정되면 입사도 빠르게 이루어져야 하고 채용 관련 신체검사나 다양한 준비과정들이 있기에 나는 고민 끝에 직장을 퇴사하기로 결심했다.
오실장에게 어렵게 이러이러한 일이 있음을 말씀드리고 사직서를 내밀었다. 오실장은 아쉬워하는 한편 내 앞날을 응원해 주었고 어렵게 모은 적금은 꼭 유용하게 쓰길 바란다며 그렇게 독려해 주셨다. 첫 직장을 관두려는 심정은 아쉬움과 시원 섭섭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짧은 인수인계 기간 중에 합격자발표가 있을 예정이었기에 들뜬 마음은 쉬이 내려앉지 못하고 매일 하늘을 거닐다 또 혹시나 하는 불안감 또한 채워지고 있었다.
대망의 합격자 발표날. 아침부터 잠을 설쳤다. 점심시간 동안 휴대폰만 계속 쳐다보았고 근무 중에도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리고 오후 3시쯤 되었을까?
띵-똥 소리와 함께 SMS가 도착했고, 서두에 적힌 회사명을 보고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바로 회사를 뛰쳐나왔다.
사람이 없는 조용한 길목으로 들어서서 휴대폰을 황급히 꺼내 방금 온 문자를 열어보았다.
"당사의 채용에 참석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귀하의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 금번 면접결과 불합격 소식을 전해드리게 되어 진심으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머리를 망치로 두드려 맞은 느낌이었다.
'불합격', '안타깝게' 두 단어가 반복되어 내 눈을 어지럽혔다.
나는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었나?
역량이 뛰어난 나를 왜 회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나? 그저 겉치레뿐인 말일까? 역량이 나보다 더 뛰어난 자가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역량이 많이 부족해도 회사에서 채워줄 수 있기 때문이었을까?
눈앞이 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캄캄해지고 있었다.
프로게이머의 꿈을 접어야 했던 당시의 참담함이 다시 밀려오는 듯했다. 불쾌하고 가슴이 찢어질 듯한 슬픔이 잇따라 덮쳐왔고, 그 감정이 머리를 짓누르듯 계속 압박이 느껴졌다. 관자놀이가 삐걱거리며 머릿속을 울렸고, 흥분 때문인지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손과 발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며헛구역질이 나와 골목 구석에 쭈그린 채 연신 구역질을 해댔다. 충혈된 눈에선 마치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두 번째 실패를 맛보았다. 누군가의 노력에 비하면 보잘것없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나에게 있어 이번 채용을 준비하는 과정과 노력은 그 어떠한 타인의 노력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적어도 나 스스로는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피나게 노력했고 또 한편으론 방심을 하고 있었다. 면접에서 너무 잘 풀렸던 탓에 자신감이 넘쳤고 또 오만했다.
한참을 골목어귀에 주저앉아 끙끙 앓으며 눈물이 맺힐 무렵 어렴풋이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예방주사 맞은 셈 치자.'
한 번의 큰 예방주사 덕분에 눈앞이 캄캄해지는 경험 앞에서도 정신을 부여잡을 수 있었다. 다만 기대를 안 했더라면 후회조차 하지 않았을 텐데 너무 많은 기대와 또 당연하게 합격할 거라 예측했던 맹목적인 믿음 탓에 반전영화처럼 뒤통수를 강하게 맞은 느낌이 들어 괴로웠다.
차마 소리도 지르지 못해 회사에서도, 퇴근길 버스 안에서도. 집까지 걸어가는 길에서 조차도 그 감정을 온전히 토해내지 못하고 난 속으로 앓았다.
집에 돌아와 면접에 떨어졌다며 어머니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어머니는 실망하는 눈치가 전혀 아니었다. 그저 또 다른 기회를 찾으면 된다며 고작 그 정도로 우울해할 필요가 없다며 오히려 덤덤히 얘기하셨다.
그러기에 나는 오히려 눈물을 숨겼지만 떨리는 목소리만큼은 참아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너무도 태연했고실망감 또한 내비치지 않았다. 아직 시작일 뿐이라 하셨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발가락만 쳐다보며 고개를 우측으로 한번, 두 번 그렇게 계속 갸우뚱하며 나는 어머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우물쭈물하며 어렵게 꺼냈다.
엄마, 이게 생각보다 참. 쉽지 않네. 될 것 같았는데 된 것 같았는데 된 게 아니었네.
눈물은 꽉 다문 입술을 비껴 막무가내로 흘러 바닥을 적셨다. 마침내 묵혀둔 감정들이 터져 나오듯 울음을 토해냈고, 처참한 실패의 고통이 그때처럼 다시 몰려왔다. 엄마는 말없이 내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자만심에 휩싸여 퇴사를 선언했던 나 자신을 되돌리기엔 이미 늦었고, 사실 돌이킬 마음조차 없었다. 자존심은 그때 이미 최고조에 달했고, 내 롤러코스터는 이제 막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직 스릴을 느껴보기도 전에 벌써 내려와 있었다.
부끄러움보다 더 컸던 것은 그려냈던 미래의 모습들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려서였다. 애초에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에 신이 나있었고 우쭐댔으며 거만했다. 그렇기에 더욱 비참하고 잔인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좌절과 실패가 아닌 '無' 그 자체가 되어버린 자그마한 욕심들이 바스러졌다.
나는 충분히 실패했고, 그 대가로 마음의 병을 얻었다. 치유된 줄 알았던 괴로운 그때 그날은 슬픔과 우울에 휩싸인 채로 다시 다가왔다. 깨져버린 희망 속에서 건져낸 것은 박탈감뿐이었고,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휘몰아쳤다.
내 나이 24살, 한참이나 어리고 미숙했던 나는 두 번째 실패를 맛보았다.
학창 시절의 이야기. 그리고 첫 직장을 퇴사하기까지의 이야기. 제가 처음 준비했고 실제 글로써 엮어 브런치북으로 내어보는 것까지 욕심이었고 목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