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설악산을 오른다고요?
엄마 나, 면접 다녀올게 #14
┃저.. 비가 오는데요?┃
정확히 새벽 4시 50분. 째깍거리던 벽시계가 어디 있는지 보일 만큼 형광등이 환하게 빛났다. 선생님께서 아직도 달아오른 얼굴을 나에게 보이며 기상시간이 임박했음을 전했다. 불쾌한 속내를 밝힐 수가 없어 멋쩍게 웃으며 머리만 긁적였다.
선생님은 어디론가 향했다. 난 켜진 형광등을 피해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시 눈을 감았지만 채 1분도 되지 않아 미칠듯한 데시벨의 마이크소리에 뇌가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쩌렁쩌렁 울려댔고 스피커를 찢을 것만 같았다.
아 이 무슨 시련인가. 숙취가 채 해소되기도 전에 새벽 5시를 알리는 닭모가지는 누가 비틀어야 하는가. 세면대에서 세수를 할 때쯤 돼서야 어제 내가 저지른 실수가 머릿속에서 새어 나와 나를 한번 더 괴롭혔다.
응시하기 힘든 선생님들의 눈을 요리조리 피해 가며 학생들 맨 뒤편에 서서 선생님의 멘트를 귀담아 들었다. 뒷산이 공기가 좋아 아침에 산책을 하자신다. 이 얼마나 건강한 사람들인가.
술이 확 깰 정도로 선선하고 으슬으슬한 새벽녘의 설악산 주변은 정말 싸늘했다. 수련회가 보통 9월이고 그나마 날씨가 좀 떨어지는 늦깎이 여름이라곤 하지만 한자릿수대의 온도는 정말 가늠이 안될 정도로 뼈가 시렸다.
뼈가 시린 와중에도 난 업무를 위해 카메라를 짊어지고 학생들을 상대해야 했고 늘 정해진 멘트를 적절하게 소화했다.
"첫 번째 줄 앉아주세요~ 두 번째 줄 무릎에 손~ 세 번째 줄은 앞 친구 어깨 잡아주세요~ 네 번째 줄은 고개 빠짝 들어주시고요~"
물론 이대로 될 리가 없다. 자리도 본인들 취향대로 친한 친구들끼리 엮이다 보니 얼굴은 가려지고 중구난방에 시끄럽기까지 하니 10분이면 끝날 사진촬영을 무려 30분 가까이 진행했다. 나중에 찍고 나서 보니 참 각양각색으로 얼굴을 가려놨다. 화장을 안 했다 찍을 줄 몰랐다 등등으로 그놈의 턱에 V는 왜 그렇게 놓던지..
선생님들과는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 기억이 없다. 아니 지금 기억을 짜내려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의 난 취몽사몽이었다. 공기 좋고 물 좋고 술 좋은 하루 잘 보냈다 만족감 느끼며 가벼운 구보를 마치고 선생님들 틈바구니에 끼어 아침을 코로 흡입했다.
보통 일정표를 주는 경우도 있지만 선생님 혼자 보는 경우도 더러 있다 보니 대부분은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같이 움직이는 식의 업무를 진행하곤 했다. 오전에 잠시 쉬라 하시어 잠깐의 여유가 생겼다. 딱히 어떠한 일정은 없다고 했다.
점심식사를 부랴부랴 마치고 오후 1시에 집합이라고 한다. 어쩐지 오전의 여유는 오후의 추진력을 위함이었을까? 이유를 알만한 수상함이 음습하게 찾아왔다. 맑았던 하늘은 구름이 끼기 시작하는데 이런 식이라며 야외행사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와중에 시곗바늘은 1시를 가리켰고 구름이 낀 하늘은 큰 변화 없이 검게 그을려져 있었다.
신기하게도 이번 수련회는 교감선생님이 오전부터 특별참석(?)을 해주셨다. 왜? 무엇 때문에?라는 물음은 5분도 채 되지 않아 납득이 되었다.
"우린 이제 저 산을 올라갈 겁니다."라고 가리키는 손가락은 설악산의 어느 중간지점쯤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래.. 산을 타고 싶으셨던 거구나. 이래서 오후 1시였구나.'
학생들의 경악하는 소리와 탄식이 이어졌고 여러 가지 변명들을 일축하는 교감선생님의 '갈'이 이어졌다.
"빨리 찍고 내려오면 저녁은 자유시간입니다."
채찍을 휘둘렀다면 주머니에 잔뜩 들어있는 당근을 꺼내는 법 또한 예술 그 자체였다. 심지어 나조차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자유시간'이라는 설렘. 좋다 그깟 산. 올라가 주마.
라고 다짐 한 지 몇 분이나 흐른 걸까. 무거운 카메라를 짊어지고 산을 오를 때마다 애꿎은 비는 자꾸만 떨어졌다. 선생님들께서도 '이제 그만 내려가시죠' 라는 말에도 끊임없이 'Go'를 외치던 교감선생님. 덕분에 지금도 잊지 않고 글을 쓸 정도면 그 당시의 내 절박함이란..
사실 안전불감증에 가까울 정도로 그 당시는 미쳤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무리 등산코스로 지정되어 있다지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산을 그것도 슬리퍼까지 신고 있는 학생들도 있는데 이게 말이 되나 싶다가도 또 한편으론 투덜거리면서도 잘 올라가는 걸 보면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자유시간을 갈망하는 10대의 열정을 누가 막을쏘냐.
이 산이 아닙니다! 를 외쳐대는 부하직원을 꿋꿋이 무시하며 나폴레옹교감은 정상을 향해 오직 직진이었다. 나는 씩씩 거리며 20대의 마지막 정열을 쥐어짜 내 2시간 넘도록 걷기만 했던 것 같다. 가끔 뒤를 돌아보며 학생들을 찍어주는 것 또한 사진사로서의 도리였다.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어느샌가 추적을 멈추고 맑디 맑은 하늘을 잔뜩 뽐내주고 있었다. 이렇게 금방 맑아진다고?
오랜 기억 속 산이라는 취미랑 담을 쌓은 나로선 어느 코스를 어떻게 가는지는 관심 없었고 그저 흔들바위 앞에서 학생들을 담을 때 비로소 나는 두 가지의 목소리가 교차로 들렸다.
그래도 오르길 잘했지?라는 천사의 속삭임.
이걸 또 내려가야 되는데?라는 악마의 속삭임이 공존했다.
산을 오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려가기 위해서다라고 말한 사람의 저의가 궁금한 시점이었다. 오르는 것만큼 내려오는 것도 힘들었다. 터덜거리며 발바닥으로 땅을 디딜 때마다 전해져 오는 짜릿한 충격 탓에 숙소로 도착했을 즈음엔 허벅지와 무릎이 욱신거려 계속 누워있어야만 했다.
약간의 자유시간 이후 밤엔 다른 집합을 원하는 선생님의 요청에 따라 우린 강당으로 삼삼오오 모였다. 그 작을 것 같은 숙소에도 있을 건 다 있었다.
학생 수백 명을 모을 수 있는 강당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제법 갖춰진 스피커와 마이크를 통해 여학생들의 장기자랑 시간을 열심히 카메라로 눌러 담으며 내 열정이 그들의 추억이 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냈다.
알면서 당해야 하는 캠프파이어 시간에선 슬픈 노래로 한껏 즙을 짜내거나 비웃는 친구들을 보며 MBTI란게 저때부터 유행이었다면 T와 F는 확실히 구별 지어졌을 것이다.
아련한 이틀째 밤을 지나 3일째가 되어 2박 3일의 대장정의 막을 내릴 수 있었다. 뻐근한 몸을 이끌고 집에 와서 곰곰이 들여다본 천장에서 '너 정말 수고했어 좋은 경험이었다.'라는 마음속 문구가 빼곡히 새겨진 것을 보고 잠이 들었다.
그리곤 다음 주에 설악산을 '또' 가야 된다는 사실. 그리고 같은 학교의 '야간반'이라는 말과 함께. 천장의 글자를 황급히 '취소'로 고쳐 쓰고 한숨만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