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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장밥 Sep 08. 2023

결혼? 아빠랑 김밥장사나 하자

결혼 선언

세상 모든 부모가 그렇겠지만, 우리 부모님은 자식에 대한 사랑이 정말 각별하시다. 특히 남다른 것은 ‘엄마 아빠가 너희를 이정도로 사랑하고 있어’라는 그 사실을 자식들에게 십분 느낄 수 있게 한다는 거다. 재주라면 재주. 그 덕에 나와 동생은 차마 삐뚤어지지 못했다.


내가 정말 사랑받는 아들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던 순간 중 하나가 바로 결혼 얘기를 집에 했을 때였다.


두팔 : 저 근데 결혼할 거 같아요.


맥락 없이 훅. 깜빡이 없이 바로 들어갔다. 워낙 집에다가 미주알 고주알 말을 안 하는 편이라 여자친구가 있네 없네 하는 얘기조차 하지 않은 상태였던것 같다. 그러니까 부모님에게는 그냥 평시의 저녁. 지방에 사는 아들이 서울에 올라와 집밥을 하는, 너무나도 일상적인 밥상머리. 거기서 툭 얘기를 꺼낸 거다.


아직 반찬을 계속 내어오고 계신 엄마는 부엌에 우뚝 서서 놀라셨고, 아빠는 젓가락으로 집은 오징어볶음을 입에 넣지도 못 한 채 아들을 쳐다보셨다.


아빠 : 엥 결혼....? 무슨 결혼이야.


무슨 결혼이냐니. 결혼 얘기를 하면 집에서 어떤 반응일까 여러 상상을 해봤었지만 이런 경우의 수는 없었다.


아빠 : 그냥 아빠랑 같이 살자. 엄마 꼬셔서, 아빠랑 김밥장사나 하자.


당황한 나머지 아무 말이나 하신 걸까. 아니면 자식을 놓지 못하는 마음일까. 어느 쪽이 됐든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나를 정말 애정하시는구나, 하고 말이다.



예전부터 쭉 생각해오던 게 있다. 내가 결혼에 대해 무슨 말을 하든, 반려자로 누구를 소개시켜드리든, 엄마 아빠는 겸허히 받아들이셔야 한다고 말이다. 본인들이 저지르신 짓이 있으니까.


본래 아빠는 결혼을 할 생각이 없으셨단다. 할머니께도 할아버지께도 그렇게 말하셨고. 문제는 당시가 아직 남아선호사상이니 대를 잇느니 하는 문화가 남아있는 때였다는 거다. 심지어 우리 아빠는 딸이 여섯인 집안의 유일한 아들. 할아버지 할머니는 얼마나 열불이 나셨을까.


엄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빠처럼 비혼선언은 안 했을지언정, 또래보다 한참은 느지막히 했으니 엄마가 결혼을 하겠다고 할 때까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도 끙끙 앓으셨을 거다. 참고로 당시 여자 평균 초혼 연령이 23~24살쯤 됐는데, 우리 엄마는 그것보다 세네살은 더 먹고서야 결혼식을 치르셨다.


집에다 결혼 얘기를 할 때도 그렇다. 그렇게 결혼을 안 하겠다던 사람이었는데, 어느날 불쑥 결혼할 사람이라며 여자를 데려와 인사를 시켰다고 한다. 미리 언질도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둘의 나이도 일반적이지 않았다. 엄마가 여자치고 늦은 나이였던 것과 달리, 아빠는 남자치고 이른 나이였다. 그래, 그 시절 그 시대에 연상연하 커플이었던 거다. 한 두 살 차이도 아니고 무려 네 살이나.


할머니 말에 따르면,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반대를 차마 못 하셨다고 한다. 예비 며느리가 너무 예뻐보여서? 결혼을 안 하겠던 애가 말을 바꾼 게 반가워서? 둘이 천생연분처럼 너무 잘 어울려서? 아니다. 그런 게 아니라, 아빠가 사고를 친 줄 아셨댄다. 애가 생긴 줄 아셨단다. 그럴 만도 하다. 비혼주의자가 하루 아침에 돌연 입장을 바꾸고, 며느리라며 낯선 처자를 소개시켜주는데, 누가 그런 생각을 안 할 수 있을까.


엄마쪽도 마냥 순탄치는 않았다. 나름 좀 살았던 엄마네와는 달리, 친가쪽은 말 그대로 생계를 꾸려오던 집이었다. 할아버지는 달걀팔이, 닭장수, 우유배달 등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이것 저것 가리지않고 찾아하셨고, 엄마와 아빠가 결혼을 하겠다고 양가에 인사를 드리던 때에도 할머니는 시장에서 생선가게를 하고 계셨다. ‘끕’이 안 맞으니까 이 결혼은 절대 허락할 수 없다!는 아니더라도, 조금 더 잘 사는 집으로 시집가기를 바랐던 건, 모든 부모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일 거다.


다소 간의 우여곡절과 조금의 굴곡은 있었지만, 하여튼 우리 부모님은 결혼에 성공하셨고, 1년 반쯤 뒤에는 첫째 자식도 보게 된다. 그게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 두팔이다.


그러니까 다 사필귀정, 인과응보(?), 권선징악(??)이다. 내가 뭐, 결혼하겠답시고 갑자기 말을 툭 던져도, 엄마 아빠가 뭐라고 할 건 못 되는 거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우리 엄마 아빠가 뭐라 그러겠는가.



아들이 던진 돌에 엄마 아빠 마음에 일었던 너울이 잠잠해지자, 부모님은 그제서야 이런 저런 것들을 묻기 시작하셨다. 어디 살고, 몇 살이고, 직업이 뭐고, 형제는 어떻게 되고 따위의 평범한 신상 조사였다. 결혼식은 안 하겠노라는 얘기도 했지만, 예비 며느리에 대한 호기심 탓인지 신상 문의만이 가득했다. 그러다가 기습적으로, 뭉툭한 질문이 하나 훅 들어왔다. 지금까지 했던 보통의 질문은 마치 스트레이트를 꽂아 넣기 위해 던져놓았던 잽이었다는 듯한, 묵직한 질문이었다.


아빠 : 사랑하냐?


사랑하냐니. 손끝이 막 간질거렸다. 어우.


아빠 : 왜 그 사람이냐고. 처음 봤을 때부터, 아 이 사람이다 싶은, 그런 두근두근거리는 느낌이 들디?


하기사, 엄마 아빠의 만남을 들었던 나로선 충분히 이해가 되는 질문이었다. 비혼이었던 아빠가 결혼 생각을 하시게 된 건 엄마를 만나면서부터. 엄마를 본 순간, 이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라면 평생을 같이 살고 싶다, 결혼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드셨더랬지.


두팔 : 그런 건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이 중대한 얘기를 거짓으로 답하겠는가. 나는 사실대로 얘기할 수 밖에 없었다. 솔직히 우리는 첫눈에 반하진 않았다.


두팔 : 만나다보니 좋아졌어요. 그리고...
엄마 : 그리고?


옆에 계시던 엄마도 거든다.


두팔 : 제가 결혼을 한다면, 이 사람 뿐일 거에요.


이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과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얘기. 김밥장사 얘기는 차마 더 못 하시겠지.


두팔 : 저는 결혼을 하고 싶고요.


아빠가 다시 물어보셨다.


아빠 :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들디?
두팔 : 착하고, 저를 정말 좋아해줘요. 저를 그렇게 좋아하니까 저한테만 착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하여튼 그래요.
아빠 : 착하다고
두팔 : 네, 본인 입으로 본인은 안 착하대요. 근데 진짜 착해요. 가끔 저를 쳐다보면서 웃어줄 때가 있는데, 그 때 그런 눈빛은, 엄마 말고는 처음 봤어요. 그동안 살면서 봤던 모든 사람 중에 엄마 다음으로 착한 사람이고, 엄마 다음으로 저를 좋아해주는 사람이에요.


그나저나 주고 받는 대화 속에 분위기가 너무 진지해지는 듯 했다. 그래서 슬쩍 쓰는 치트키.


두팔 : 물론 이쁜 건 엄마가 훨씬 이쁘죠. 엄마만큼 이쁜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죠.
엄마 : 에게게게. 또 왜 이러실까.


분위기 전환용. 아빠도 한번 띄워드리고.


두팔 : 아빠 정도 되니까 엄마 만나셨죠.



두팔 : 나는 정말 결혼을 잘 했어요. 이게 다 아내 덕이에요.
두둘 : 나야말로 결혼 진짜 잘 했어요. 남편 너무 소중해. 소중한 사람이야.


김밥 가게를 차리는 대신, 나는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다. 아직 신혼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서로에 대한 애정표현도 적지 않다. 단순한 애정행각이 아니라, 우리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결혼을 정말 잘 했다고. 배우자를 정말 잘 골랐다고.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이라고.


물론 20년 뒤, 30년 뒤에는 또 모르는 일이다. 아, 그 때 김밥집을 차렸어야 했어, 역시 아빠말을 들었어야 했어, 생각할지도. (앗, 농담이다 진짜.)


BEHIND : 두둘의 이야기

두팔이는 사람 보는 눈이 전혀 없나봐요. 저는 전혀 착하지 않아요. 당사자가 아니라고 하는데 왜 자꾸 맞다고 하는 걸까요?

두팔이와는 다르게 저는 두팔이의 존재를 집에 일찍 공개할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워낙 집순이어서 언제나 집에 꼬박꼬박 들어가서 두문불출이었는데, 연애를 시작하니까 티가 너무 났거든요. 결혼을 하겠다고 말씀드릴 때에는 이미 두팔이의 정보를 부모님이 어느정도 아시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결혼 자체에 대한 얘기는 별로 없었어요. 저에게서 건네들은 얘기들로 두팔이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벌써 눈치 채셨거든요. 대신 결혼 자체보다는 결혼식 얘기는 있었어요. 특히 결혼식을 안 하면 나중에 후회가 없겠냐며 제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결국 큰 반대 없이 저희의 의견을 믿고 지지해주셨지만요.

결혼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건 서로를 위하는 마음인 것 같아요. 신랑 신부의 스펙이 어떻고, 결혼식이 어떻고 하는 것보다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두팔이를 보며 결혼을 잘 했다는 생각이 매일 매일 든답니다.

그런데 뭐라고요? 김밥집을 차렸어야 했어? 그럼 지금이라도 가서 김밥집이나 차리시든가요!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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