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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장밥 Sep 01. 2023

니가 생각하는 결혼식이 뭐냐

결혼식의 정의

이미 꽤 오래전에, 고작 며칠 전이나 몇 달 전 수준이 아니라 몇 년 전에, 가족들에게는 벌써 얘기를 해뒀었다. 결혼은 할 테지만, 결혼식은 안 하고 싶다고 말이다.(다음편 참조!) 그 때만 하더라도,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부모님의 지지를 얻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하실 줄은 몰랐다.


아빠 : 니가 생각하는 결혼식이 뭐냐


의자는 의자고, 결혼식은 결혼식이지, 결혼식이 뭐냐니. 언어란 건 컨세서스 아니었나.



지금보다 혼인 적령기가 더 빨랐던 당시 시대상을 생각해도, 스물셋에 결혼해서 스물넷에 나를 낳으셨으니, 우리 아빠는 결혼을 일찍 하신 편이었다. 그 덕택인지는 몰라도, 아빠와는 꽤나 가까운 사이였다. 부자유친 같은 옛말을 굳이 가져오지 않더라도, 정말 친함이 있었다. 오죽하면 나도 스물넷에 애를 낳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까. 부자가 모두 술을 좋아하는 터라 성인이 되고 나서는 술도 적잖게 마셨는데, 그게 또 좋았다.


그 날 역시 아빠와의 저녁 술자리였다. 집에서의 자리였고, 두둘이를 소개해드린 며칠 뒤였던 것 같다. 대화 주제는 역시나 결혼식이었다.


아빠 : 결혼을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그냥 집에 가만히 있다가, 아 이제부터 부부입니다, 그러는 거냐?


한참 이어진 대화 끝에 결국 격앙되어버린 목소리. 감정적이었다. 내 또래가 저렇게 말했다면, 나는 비꼼이나 비아냥으로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두팔 : 몇 번은 말씀 드렸잖아요. 식은 안 하고, 밥만 같이 먹자는 거죠.
아빠 : 밥은 먹는다고?
두팔 : 네, 그럼요
아빠 : 그럼 아빠랑 엄마는?
두팔 : 당연히 같이죠. 양쪽 식구가 같이 먹자는 거죠.
아빠 : 그럼 두칠(동생)이는?
두팔 : 같이죠.
아빠 : 할머니는?
두팔 : 당연히 같이 계셔야죠.
아빠 : 친척은 또 부르지 말자며
두팔 : 네, 그러니까 제가 생각하는 건, 진짜 식구. 한 지붕 아래 사는 사람들. 딱 거기까지만.
아빠 : 그럼 고모도 안 되고,
두팔 : 네, 그렇죠
아빠 : 아빠 친구는
두팔 : 그런 거 하지 말자는 거죠
아빠 : (하아)


아빠가 계속 물어보셨기 때문에 답은 했으나, 이런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혼식을 하지 말자고 했는데, 그냥 우리끼리 하고 말자 했는데, 왜 이런 대화가 더 필요하지 싶었다.


큰 의미는 없다 생각했지만, 똑같은 말을 또 했다. 결혼식을 안 할 거라는.


두팔 : 결혼은 할 건데, 결혼식을 안 한다는 말이에요


그러자 아빠는, 한 호흡 쉬고.


아빠 : 니가 생각하는 결혼식이 뭐냐


오잉,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결혼식이라 하면, 우리 모두에게 떠오르는 비슷한 풍경들이 있다. 가령 크리스탈 느낌이 나는 장식품들로 채워진 웨딩홀이랄지, 블링블링한 웨딩드레스 안에 들어간 신부와 드레스를 치켜올려주는 도우미랄지, 그 밖에 주례니 하객이니 뷔페니 화환이니 하는 것들 말이다.


그러니까 결혼식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그런 전형적인 것들을 하지 않을 거라는 말이고, 평소에 잘 보지 않는 친척이나 다른 하객들을 부르지 않겠다는 말 아닌가, 당연히.


두팔 : 우리가 결혼식 하면 생각나는 그 모습 있잖아요. 그냥 그런 거 하지 말자는 거에요.
아빠 : 아니, 그 말이 아니고, 결혼식이 뭐냐고.


그래서 결혼식이 뭐냐는 아빠의 질문 자체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우리 식구랑 저쪽 식구랑 모여서 밥 먹으면서 결혼한 걸로 하면 되지 않나.


두팔 : 무슨 얘긴지 잘 모르겠어요.
아빠 : 가만히 집에 있다가, 어느 순간, 으앗 이제 우리는 부부! 이런 것도 아니고, 둘이 밥 먹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지금까지는 서로 모르고 지냈던 사람들 여럿이 모여서 밥을 먹으면서, 자 이제 이렇게 둘이 부부~ 이러면, 그럼 이게 결혼식 아니냐.


아하, 이제서야 이해가 갔다. 결혼식의 정의 문제였다. 다시 말해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결혼식이라고 부를 수 있냐는 문제였다.


내가 ‘결혼식‘을 하지 않을 거라 했을 때의 ’결혼식‘은, 그 일반적이고 전형적인 보통의 결혼식을 말한 거였다. 그러나 사실 ’결혼식‘이라 함은, 결혼을 하는 모든 세레머니나 모든 이벤트를 아우르는 말일 수 있다. 나는 전자로, 아빠는 후자로 얘기를 하니, 서로 말이 안 통하는 거였다.


게다가 설령 ‘결혼식’을 전자, 즉 ‘보통의 결혼식’이라고 쳐도 문제는 있었다. 어디까지를 '보통'으로 볼 것인지다. 예를 들어 친구는 안 부르지만 친척은 부를 수도, 신랑 신부 입장은 없지만 턱시도와 드레스는 있을 수 있지 않은가. 사람마다 보통의 정도는 다르잖는가.


한 마디로, 아빠 입장에서 나는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고 있었던 거다. 내 입장에서는, 결혼식을 안 한다고 선언했으니까 분명하고 똑 부러지게 얘기했지, 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던 거다.


두팔 : 음, 그걸 결혼식이라고 부른다면, 네, 그럼 결혼식 맞네요. 저는 결혼식을 안 하는 게 아니라, 그런 결혼식을 원하는 건가봐요.


그렇구나.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게, 형태는 다르지만, 어쨌든 결혼식으로 부를 수도 있겠구나, 하는 걸 뒤늦었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앞으로도 우리의 결혼은 노웨딩 결혼으로 부르자. 하객도 친지도 없는 저녁 식사자리마저 결혼식으로 부르기에는 너무 결혼식의 범위가 넓어지니까 말이다.)



다음 날. 두둘과의 대화는 또 하나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두둘 : 그래요 오빠, 아버님 말씀이 맞지.
두팔 : 왜 내 편 안 들어줘요? 왜 시아버지편이야


칭얼대는 남자친구 앞에서도 두둘은 주제를 놓치지 않았다.


두둘 : 봐봐요. 나도 계속 생각하던 건데, 우리가 결혼식은 안 해도, 그래도 뭐라도 할 수 있잖아요.
두팔 : 뭐 아무것도 안 하고 밥만 먹어도 되잖아요.
두둘 : 밥만 먹어도 되긴 되는데에,


두둘은 숨을 마시고, 말을 이어갔다. 늘 웃상인 두둘도 이 때만큼은 진지한 표정이었다.


두둘 : 내 생일 때, 오빠가 케익 사다줬죠.
두팔 : 그랬죠.
두둘 : 케익에 촛불 켜고 후 불었어요 안 불었어요.
두팔 : 불었죠.
두둘 : 그렇잖아요. 매년 돌아오는 생일에도 케익에 촛불은 켜는데, 결혼하면서도 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당연히?


어 그러네.


너무도 맞는 말에 막바로 설득되었다. 왜 진작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싶을 만큼 단순한 거였다. 노웨딩에 집착한 시야가 안대를 쓴 경주마 보다도 좁구나 싶었다.

생일 케익초를 부는 모습. 그래, 친구들끼리도 생일 케익 정도는 해주는데.



결혼식을 하기 싫다는 생각에, 두 식구가 밥만 먹으면 되겠다 싶었다. 그건 ‘결혼식’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아빠와의 대화를 통해 어쩌면 그것도 ’결혼식‘이라는 걸 알았고, 두둘의 얘기 덕에 그 식사자리에 케익 하나 정도 올려 놓는 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알았다.


그렇네, 케익 정도는 할 수있겠다. 아니 어쩌면, 꼭 해야겠다. 아들, 손자, 오빠의 결혼을 축하하는 자리마저 빼앗는 건, 도리가 아니겠다. 그리고 이건 내 결혼이지만 또한 아내의 결혼인데, 비록 아내가 태어난 날을 내가 축하해주지는 못했으되, 아내가 결혼하는 날, 그것을 축하해줄 수는 있겠구나. 그리고 상대도 마찬가지겠구나. 노웨딩이라는 컨셉을 고지식하게 고집하는 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마음을 표할 수 있는 자리를 빼앗는, 불필요하게 이기적인 짓일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으면 될까. 내가 생각하는 노웨딩의 핵심은 뭐고, 서로를 축하해줄 수 있는 장치들은 뭐가 있을까.


결혼식의 정의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우리는 결혼하는 날의 모습을 상세히 그려보게 된다. (훗날, 이는 투 두 리스트와 타임 테이블로 구체화되기에 이른다.)



COOKIE : 남은 이야기

“그래도 부모님이 섭섭하시지 않게, 이것저것 잘 준비해서 했네.”

결혼을 하고 난 뒤, 우리는 결혼을 이러이러하게 했노라는 얘기를 친한 형에게 한 적이 있다. 그 형의 반응이 저랬다. 내가 너무 아무것도 안 하고 결혼을 해서, 부모님이 속상해하시면 어쩌나 걱정했었다고 한다.

생각을 못 했었다. 세레모니가 없다는 그 자제로 부모님이 서운해하실 거라는 건 말이다. 당신들의 형제나 친구들을 못 부르는 것만이 서운 포인트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참 생각이 짧고 단편적이구나, 하는 걸 또 한 번 느꼈었다.

결과적으로는 다행스러운 일이 되었다. 무언가를 그래도 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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