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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장밥 Sep 09. 2020

닭고기 살이 말라비틀어진 이유

닭찜 : 서대문역 수정식당 & 교대역 김봉남포장마차

요즘은 아니다. 동네에 하나 있는 시장도 깔끔하다. 전통시장 현대화 사업이라던가.


예전엔 달랐다. 키가 큰 성인 남자라면, 머리에 닿을 정도로 시장의 천장은 낮았다. 제대로 된 큰 지붕이 있는 게 아니었다. 가게마다 펼친 차양비닐이 겹겹이 겹쳐져 자연스레 지붕을 이루었다. 그러니까 비라도 오는 날이면 비닐이 겹쳐진 틈새로 빗물이 흘러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아직 천장에 닿을 정도로 키가 자라지 않은 어린이들은 고개를 뒤로 젖혀 위를 올려다보곤 했다. 덕지덕지. 네모난 색종이들이 겹쳐진 콜라주 같은 모습. 어린 날 기억 속에 있는 시장의 하늘이다.


시장 건너편에는 상가촌이 있었다. 그 곳 역시 덕지덕지해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곳은 차양비닐이 아닌 건물들이 겹쳐있는 느낌이었달까. 작고 허름한 건물들이, 서로 기대어 서 있듯이 비좁게 붙어있었다. 여기는 순대공장, 저기는 만두공장. 커다란 벽돌굴뚝에서 허연 김을 내뿜는 동네 목욕탕. 


그 사이에 작은 분식집이 하나 있었다. 이름은 수정식당. 그 집 딸내미 이름이 수정이었다.



딱 그 시절 식당다운 집이었다. 희뿌연 반투명 시트지를 붙여 적당히 시야를 가린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옥색의 테이블과 옥색의 의자가 세트를 이루어 네댓자리쯤을 만들고 있었다. 살짝 낀 기름때 때문인지 걸을 때마다 바닥에서 약간의 찐득거림이 느껴졌다. 테이블 위에서도 찐득거림이 느껴지긴 마찬가지였다. 요즘 기준으로는, 분명 위생은 낙제점이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그 곳을 좋아하셨다. 이유는 딱 하나. 그 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허여멀건한 닭찜 때문이었다.


찹쌀이랄지 대추랄지, 닭 안에 뭘 넣은 것도 아니다. 겉을 튀긴 것도 아니고, 양념을 발라 구운 것도 아니다. 비법 소스장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닭 한 마리를 통째로 쪄낸 듯 했다. 그렇지만 닭껍질은 말랑하면서도 탱탱했고, 뼈에 붙어있는 살에서도 닭비린내는 나지 않았다. 맛있는 닭내음만 짙었다.


그렇지만 이 집에서 제일 기가 막혔던 건, 맛이나 냄새보다도 서비스였다. 닭뼈 제거 서비스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특급호텔보다도 더 정성스러운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부위부위, 하나하나. 테이블 위에서 닭 해체쇼가 펼쳐졌다. 재밌었다. 비좁고 허름한 상가촌에 찐득거리는 분식집에서, 주인 할머니가 손수 발라주는 닭을 먹을 수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했을까.



대개 그런 곳들이 그렇듯이, 수정식당 역시 신속한 서빙을 자랑하는 집은 아니었다. 가령 반찬이 나올 때에도, 주방에서 우리 테이블로 걸어오는 주인 할머니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셀 수 있을 정도로 천천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 분의 느긋한 성격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나이가 느껴지는 속도였다.


걷기도 이럴진대 닭을 발라주실 때는 어땠겠는가. 성격이 급한 사람이 보면 정말로 속이 터졌을지도 모른다.


채 식지 않아 모락거리는 닭을 둥글넙적한 스댕쟁반 위에 턱 올리고 다리 두 짝을 쭉쭉 찢기 시작한다. 이 때만해도 살에는 촉촉한 습기가 잔뜩이다. 세상 맛있다. 그런데 날개살, 가슴살, 갈비살, 허벅지살을 차례로 해체하면서 습기는 점점 날아간다. 처음 발라놨던 살은 작업이 끝날 때 즈음엔 결국 촉촉한 티조차 나지 않는다. 조금 과장해서, 말라비틀어져있다. 그만큼 오래 걸렸다.


그러나 그 오래 걸림이, 왠지 싫지 않았다. 허공으로 수분이 다 날아가버려서 겉표면이 말라버린 그 닭살이, 왠지 싫지 않았다.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정이었다. 오랫동안 찾아와주는 동네 단골에게 주인 할머니가 보여주신 진심 어린 성의였다. 역설적으로, 닭고기살이 말라비틀어질 수 밖에 없었던 건, 주인 할머니가 손님에 대해 갖고 있었던 애정 때문이었다.



얼마 전에 교대역 근처에서 김봉남 포장마차라는 곳을 들어갔다. 익살스러운 이름의 부추꼬꼬라는 메뉴가 있길래 별 고민 없이 그걸 주문했다.


부추꼬꼬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서빙되었다. 잘 만들어진 안주였다. 커다란 접시 한 켠에는 김치가 소담히 담기고, 또 한 켠에는 살짝 데친 부추가 담기고, 남은 켠에는 하얗게 삶은 닭이 나온다. 그런데 부추꼬꼬는 음식만 나오는 게 아니다. 사람도 함께 나온다. 주방 이모가 나오신다.


마치 수정식당 같았다. 주방 이모가 나와서 우리 테이블에서 닭을 발라주신다. 다만 수정식당과 달랐던 건, 속도였다. 빠르게 서빙된 것처럼, 닭 해체도 아주 금방이었다. 슥슥. 몇 번 하시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닭이 살만 남는다.


훨씬 세련됐다. 맛 연구도 많이 한 것 같다. 위생도 훨씬 깔끔하다. 무엇보다 닭고기살이 계속해서 촉촉하다.


그렇지만 더 괜찮아진 닭요리를 보면서도, 이유 없이 마음 한 구석이 아련했다. 추억보정일지도 모른다. 최소한 나에게는, 세련된 부추꼬꼬보다 수정식당의 퍼석한 닭이 더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음식은 입으로 먹지만, 맛은 입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다. 몸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신도시에서는 맛집을 찾기가 어렵다. 깨끗하고 잘 만들어진 프랜차이즈들은 많지만, 오래된 도시에 있는 노포의 찐맛을 따라가기 쉽지 않다. 세월이 쌓여 벽지에 배인 닭내음은 신식 체인점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오래 전에, 수정식당은 사라졌다. 상가촌이 재개발을 한 까닭이다. 그 일대는 서울에서 제일 비싸다는 대기업 아파트가 우뚝 솟았다. 말라비틀어진 닭을 팔던 그 자리에는 아파트 상가에 입주한 유명 프랜차이즈 치킨집이 닭을 튀기는 중이다.


요즘의 세련된 레스토랑에서는 단골에 대한 애정을 찾아볼 수 없다. 입으로는 친절을 외치고, 고객 감동을 또 외치지만, 그 뿐이다. 그런 곳에서 인간적인 교류를 느낀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자본을 위해 자본으로 세워진 자본주의 음식점에서는 더 이상 실현될 수 없는 일이다. 닭고기살을 발라내느라 시간이 걸려서 살이 말라비틀어진다면, 정을 느끼기는 커녕 당장에 컴플레인 대상이 될 게 뻔하다.


영영 없어진 수정식당처럼, 그때의 사람냄새들도 이제 영영 없어졌나 싶다.


이런 말 하면 꼰대려나. 그래도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다.

말라비틀어진 닭고기 한 점을 집어먹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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