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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장밥 Sep 16. 2020

아버지는 왜 만두집에 들어가셨을까

찐만두 : 서촌 취천루

이미 셔터는 반쯤 닫혀있었다. 늦은 시간에 하늘은 어둑했고, 인파로 가득했을 명동 거리에는 그들이 남기고 간 몇 줌의 쓰레기만 놓여있을 뿐이었다.


벌써 아버지는 취해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무엇이 그리 기분이 좋으셨는지, 저녁을 먹는데 밥보다 술을 더 많이 드셨기 때문이다. 껄껄거리며 거나하게 술을 먹고 음식점을 나온 지, 이제 10분 남짓 되었을까. 취해있는 것도, 배가 불러있는 것도 당연한 때였다. 그러다 우연히 집에 가는 길에 마주쳤다. 반쯤 닫힌 셔터 사이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는 곳을 말이다.


"오, 아직 문을 안 닫았나 보구나. 여기 잠깐만 있어봐라."


맞은편에 있는 커다란 백화점에 비해 너무도 작고 허름한 가게였다. 불친절한 간판에는 한자가 석 자 적혀있었다. 그 곳으로 향하는 아버지의 발걸음은 마치 오랫동안 잘 아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 같았다.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나를 남겨두고, 한산한 밤 거리의 어둠을 비집고 가며, 아버지는 셔터 밑으로 몸을 숙여 들어갔다. 아주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아버지가 한 발은 매장에 남기고서 다시 몸을 숙여 셔터 밑으로 고개를 빼꼼 내민 채 우리를 보며 부르셨다.


"이야, 해주신대! 얼른 들어와라."


이 집이 무얼 하는 집인지도 모른 채, 아버지를 흉내내듯 몸을 수그려 들어갔다. 새어나오는 불빛이 거뭇한 풍경과 대비되어 눈에 띄었던 곳. 투박한 간판을 걸고 무심하게 우리 식구를 맞이해주었던 곳. 이것이 그 집과 나와의 첫 만남이었다. 만두집, 취천루다.


그 날, 우리는 이미 잔뜩 배가 불러있었다. 그 이전에 먹었던 게 뭐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확실히 기억나는 건, 우리 모두 배가 부른 상태였다는 사실과, 여기서 뭘 어떻게 더 먹냐며 아버지께 그냥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씀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굳이 만두집을 또 들어가신 거다. 흥이 올라 두 발쯤 앞장서서 만두집을 향하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선명하다.


식구는 넷이었지만 만두는 딱 두 판만 시켰다. 소고기만두 한 판과 교자만두 한 판. 당연했다. 모두가 한껏 배불렀던 상태였으니 말이다. 그 집 만두는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후식으로는 결코 적은 양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만두는 그리 오래걸리지 않아 테이블 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올챙이배가 볼록 나온 아들딸이 참도 잘 먹었기 때문이다. 고기의 향, 피의 두께, 입술에 느껴지는 온도 따위가 생각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 때의 기분만은 또렷이 떠오른다. 참 맛있었다.


20년은 더 된 이야기다.


만두집은 명동 거리를 휩쓴 화장품 열풍을 이기지 못하고, 자리를 내어준 지 오래다. 옛날 그 자리에는, 이미 유명 브랜드 화장품숍이 들어서있다. 만두집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만두집은 부활했다. 명동에서 차로 10분쯤 떨어진 경복궁 서촌에서 다시 영업을 하고 있다. 만두만 팔던 그 때와 달리, 지금은 짜장면과 탕수육도 만드는 중화요리집이 되었다. 테이블도 더 많아졌고, 젊은 손님들도 더 많아졌다. 그렇지만 간판에는 지금도 세 글자의 한자만이 적혀있다. 그래서인지 이 집의 간판을 볼 때면, 저절로 그 날 밤 아버지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오늘따라 다시 궁금하다. 그 날, 아버지는 왜 만두집을 들어가셨을까. 무엇 때문에 그렇게 신이 나셨던 걸까. 이미 저녁을 먹을대로 먹은 두 꼬맹이가 만두를 우걱우걱 먹는 모습을 보며 어떤 감정을 느끼셨을까.


어느덧 훌쩍 자라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 된 아들놈이 만두 한 판을 사들고 아버지께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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