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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장밥 Sep 29. 2020

이별 스테이크

등심 스테이크 : 대학로 팬쿡

특별하지 않은 날에, 대학로를 걷다가 글을 쓴다.

3년 사귄 연인과의 이별얘기다.



필요에 의한 시작된 관계였다. 공무원을 준비하는 고시생과 선생님을 준비하는 임고생. 각자 고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쉼터가 필요했다. 연인이 필요했다.


오히려 그래서였을까. 꽤나 오랜 시간동안 달달했다. 싸움도 다툼도 없이 알콩달콩했다. 행복했고, 재밌었다. 서로는 서로에게 가장 큰 존재가 되어갔다. 연인을 넘어선 끈끈함이 있었다. 수험생이라는 동지애였다.


그러나 시간이 흘렀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났다. 호르몬 분비는 끝났고, 우리는 서로에게 시들해졌다. 더 이상 상대를 예전만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마음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알았다. 헤어질 때였다.


우리는 서툴었다. 20대 대학생이었다. 삶이래봤자 한 줌이었고, 경험이래봤자 한 꼬집이었다. 능숙할 수 없었다. 이별은 차일피일 미루어졌다.



"학교야?"

"응"

"잠깐 나올래? 할 말이 있어."

"그래, 바로 나갈게"


그 날이었다.


일상처럼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때. 할 말이 있으니 잠깐 나오라는 카톡이 왔다. 문득 불안한 냄새가 스쳤지만, 애써 무시했다. 마음은 이미 눈치를 챘지만, 머리는 억지로 모른 척을 했다. 잔정이 남은 탓이었을 거다.


멀리 그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먼 발치서 어렴풋이 보이는 실루엣만으로도 충분했다. 날카로우면서도 묵직한 쇠막대가 명치를 깊이 찔러 들어오는 느낌. 무거웠다.


그 사람은 자신의 몸통보다 큰 봉투를 가슴에 안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그 사람에게 다가갈수록, 봉투 안에 든 게 무엇인지 또렷해졌다. 인형무더기였다.



우리의 만남은 인형에서 시작됐다. 안양1번가, 작은 술집. 둘이서 보는 걸로는 세 번째였을 거다. 오가는 술 몇 잔과 살짝 오르는 술기운. 그 때 건낸 것이 작은 미니어쳐 인형이었다. 친동생이 준 의미있는 인형이라고. 언젠가 오빠가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면, 이 인형을 선물해주라고 했다고. 엉뚱한 대화가 몇 마디 더 오간 뒤, 술잔을 들며 말했다. "1일 할래?"


또 다른 날, 범계역 앞. 인형뽑기 기계가 뭐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몇 번의 집게질로 십 수개의 인형들이 우수수 뽑혀나왔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웃음이 터졌다. 둘이 합쳐 손이 네 개였지만 맨손으로 다 들만큼의 양이 아니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잠깐 기다려보라는 말과 함께 옆 가게에 쪼르르 달려가 비닐봉지를 하나 얻어왔다. 그리고는 인형을 주섬주섬 주워담으며 웃었다. 어찌나 뱃심으로 웃어댔는지, 웃음과 웃음 사이로 들숨이 들어갈 틈 없었다. 구김 없는 그 웃음이 참 맑았다.


어느 번화가를 가든 인형뽑기샵은 있었고, 우리라는 참새에게 그 곳은 방앗간이었다. 인형을 뽑는 것은 으레 내 몫이었고, 인형은 그 사람의 몫이었다. 인형을 뽑은 날이면, 그 사람은 팔로 인형을 안은 채 데이트를 즐겼다. 그 사람의 방에는 인형이 쌓여갔다. 인형이 벌써 이만큼이나 모였다며 사진을 찍어 보여주곤 했다.


그러니까 봉투에 담긴 건 단순히 인형이 아니었다. 우리의 기억이었다. 인형이 담겨있던 그 봉투는 단지 짐가방이 아니었다. 우리의 추억꾸러미였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차곡히 쌓여왔던 인형들을 남김 없이 가져온 게 무슨 의미인지를. 우리, 이별의 날이구나. 이별을 말하러 왔구나.


"왔어?"

말하는 나에게 고개를 묻고, 그 사람은 한참을 울었다. 한참을 소리내어 울었다.



분명 다짐을 하고 왔을 거다. 이를 꽉 깨물고 인형을 담아왔을 거다. 그렇지만 울음이 멎어들 때쯤, 그 사람은 나를 끌어안고 있었고, 내 손은 그 사람의 등을 토닥이고 있었다. 오랜 시공간을 함께 공유한 사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름대로 굳게 먹고 왔을 마음은 어느새 물렁해진 것이다. 그러다가 동시에, 우리는 민망함을 느꼈다. 까닭 모를 우스움을 느꼈다. 잔웃음이 나왔다. 서로를 바라보았다.


"배고프지?"

"응"

"저녁이나 먹고 갈래?"

"응. 스테이크 먹을 거야"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밥이라도 한 끼해야지. 우리가 그동안 만난 게 얼만데, 이별식탁이라도 해야지. 우리는 대학로로 향했다.



고시생이었고 임고생이었다. 평소에 부유하게 데이트를 하는 커플은 아니었다. 학식을 먹는 경우도 많았고, 흡사 함바집 같은 노량진 고시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그 날은, 날이 날이었다. 마땅히 스테이크를 먹어야 할 날이었다.


그래서 간 곳이 팬쿡이었다. 비교적 감당할 수 있는 가격대의 캐주얼한 스테이크 집이라는 소리를 들어왔던 터라, 그렇지 않아도 언젠가 그 사람과 가려고 생각해둔 곳이었다. 목 늘어난 면티에 무릎 나온 추리닝. 레스토랑에 들어가기에는 둘 모두 지나치게 추레한 복장이었지만, 날이 날이니만큼 되돌아가지는 않았다. 짐짓 씩씩하게 입장했다.


들었던 대로 캐주얼한 식당이었다. 무겁지 않았고, 정통 클래식 양식 레스토랑 느낌도 아니었다. 아기자기하게 만나온 우리의 연애처럼 귀여운 집이었다. 이런 복장이어도 어색하지 않은 곳 같아서, 남아있던 약간의 민망스러움을 크게 덜 수 있었다.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등심스테이크. 오래지 않아 서빙되었다. 스테이크 아래에는 크림파스타가 한 덩이 깔려있었다. 싼 값에도 배를 채울 수 있도록 잘 설계된 메뉴였다.


가볍게 즐기기 좋은 맛이었다. 풍미는 없었지만, 호불호 없이 적당히 입에 감기는 맛이었다. 파스타의 크림 소스는 등심과 은근히 잘 어울렸다. 마치 인테리어처럼 무겁지 않은 맛이었다.



이별식탁이었다. 그러나 여느 때 같았다. 씹기 좋아야 하니까 너무 크지 않게. 씹는 맛은 느껴야 하니까 또 너무 작지 않게. 그렇게 스테이크를 딱 상대가 좋아하는 크기로 알맞게 썰어서 접시 채 건내주는 모습. 보통 커플의 보통 데이트같았다. 이별 얘기를 주고 받은 연인으로는 보이지 않았을 거다.


우리의 대화도 보통스러웠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상황일 수 있는데, 어느새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의 일상을 이야기했다. 어이 없이 우스웠다. 그래서 우리는 또 다시 웃었다. 세상에 이런 커플이 어디있느냐고. 헤어지겠다던 사람들이 같이 저녁을 먹고 있다고. 심지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평범한 얘기를 하고 있다고.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 상대에 대한 원망이나 미움은 전혀 없었다.


"우리 그냥 좀 더 만날까?"


자연스럽게 꺼낸 말에, 그러자는 대답이 망설임 없이 돌아왔다. 이럴 거면 왜 헤어지자고 했냐. 이게 뭐냐. 장난어린 말들이 오갔다. 말과 말 사이에는 웃음이 빠짐 없었다. 스테이크를 다 먹고 그 곳을 나올 때, 우리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 손이 다시 풀리는 데에는 수 개월이 더 걸렸다. 꼭 3년 정도를 채우고 나서 우리는 다시 이별을 이야기했다. 앞으로도 좋은 친구로 남자며.



나름 맛집이었다. 방문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한 때는 소문이 나서 대기줄까지 있었던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 대학로에 팬쿡은 없다. 그 곳을 기억하는 사람도 이제 많지 않다.


팬쿡이 떠나간 자리에는 다른 음식점이 들어와 성황리에 영업중이다. 마치 그 시절의 팬쿡처럼 그곳도 인기가 많다. 대기줄도 있다.


마치 우리와 같다.


우리는 서로에게 맛집이었다. 맛집을 찾아가듯, 우리는 서로를 찾아갔다. 맛집에서의 시간이 행복한 것처럼, 상대와의 시간이 행복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우리는 서로에게 없다. 기억조차 희미하다. 그 사람과 함께 했던 많은 것들이, 이제는 뿌옇다. 빛 바랜 기억이다.


서로가 떠나간 그 자리에는, 다른 누군가가 들어와 새로운 맛집이 된다. 어떤 맛집이 너무나도 마음에 든다면, 심지어 평생 독점계약을 맺기도 한다. 결혼이라는 독점계약을 말이다.



삶은 기억이 증발하는 연속이다. 몇 년 동안이나 단골로 다닌 맛집도 하루 아침에 떠나곤 한다. 그러나 곧 그 자리에 다른 맛집이 생기고, 그 곳에 다시 단골이 되면서 이전 맛집에 대한 기억은 쉽게 휘발한다. 이것을 일컬어 누군가는 세월이라고 부른다. 누군가는 나이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성장이라고 부른다.


흐릿한 예전을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사람이라는 맛집은 단 한명의 단골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누군가에게 폐업한 맛집이 되어버렸을지라도, 다시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맛집이 되기 마련이다. 우리는 다시 누군가에게 가치있는 존재가 된다.


그래서 나 역시 누군가에게 맛집이 되길 바란다. 평생을 먹어도 물리지 않는 그런 찐맛집이 될 수 있다면 더욱이 좋겠다.



딱히 예전 사람의 결혼 소식을 들어서가 아니다.


특별하지 않은 날에

그냥

대학로를 걷다가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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