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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장밥 Sep 29. 2023

역시 돈 주고 하는 게 최고

결혼안내장 만들기

결혼식 없는 결혼. 하객이 단 한 명도 없는 결혼. 덕분에 우리의 번거로움이 많이 줄어든 건 맞다. 이미 얘기했듯이 우리는 청첩장을 만들 필요도 없었고, 누구에게까지 청첩장을 나눠주어야 할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고, 최소한 십 수번은 되었을 청첩장 모임을 주최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일반적인 결혼을 했었다면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을 일들을 구태여 고뇌해야 했다. 이름조차 생소한 결혼안내장도 그 중 하나였다.


결혼안내장. 말마따나 우리가 결혼한다는 걸 알리는 페이퍼였다.


“청첩장이고 결혼안내장이고 아무것도 만들지 말까?”


처음부터 모든 경우의 수를 헤아려 결혼안내장을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맨 처음에는 당연히 생각지도 않고 있었다. 자리를 청할 하객이 없는데, 청첩장이 무에 필요하겠나. 우리가 결혼한다는 것도, 그냥 이러이러하게 됐다고 말을 하면 그만이지 또 무어가 필요하겠나,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모님을 생각하니 얘기는 좀 달랐다. 부모님들은 우리보다 청첩장에 더 익숙한 세대였고, 무언가를 건내지 않고 자혼을 알린다는 건 자칫 성의 없고 예의 없게 보일 수 있었다. 직장 사람들에게 말씀하실 때에도 뭔가를 주면서 얘기하시는 게 더 편할 것 같았고, 멀리 계신 친지 분들께는 우편으로 결혼 소식을 전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가끔씩 우리집 우편함에 꽂혀있던 청첩장들이 생각났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안내장을 만들기로 했다.


어디에서 결혼안내장이라는 말을 들었던 건 아니다. 누군가를 초대하는 의미의 청첩장이 아니라 우리의 결혼 사실만을 알리는 의미의 단어를 적당히 생각하다가 나온 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만들고 우리만 쓰는 말인 줄 알았다. 그렇지만 아니었다. 막상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결혼안내장이라는 말은 이미 자동검색어로 뜰 정도로 여기저기서 사용하고 있던 말이다. 우리처럼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구나 하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셀프로 결혼안내장만 만들까?”


결혼안내장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즈음에는 셀프 제작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우리는 결혼안내장에 넣을 내용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식에 관한 정보들, 예컨대 날짜, 시간, 장소, 지도, 교통편 등을 모두 우겨넣어야 하는 청첩장과는 달리 결혼안내장에는 단지 우리가 결혼한다는 사실만 넣으면 그만이었다.


1안은 사진엽서였다. 우리에게 딱 맞는 형태였다. 예식에 참석하지 못하시는 분들께 사진으로나마 우리의 얼굴을 보여드리면서, 우리가 결혼한다는 내용의 짧은 몇 문장을 사진 뒷면에 적으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사진 엽서로 적당한 사진을 고르고, 문구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사진을 1장만 쓸 것이 아니라, 잘 나온 사진 몇 장을 추려 여러 버전의 엽서를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도 나눴다.


하지만 곧 난관에 부딪혔다. 첫째, 디자인이었다. 앞면에 사진을 넣고 뒷면에 글씨를 쓰면 되지 하고 간단하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시범 삼아 만들어본 가안은 허전하고 옹색하기 이를 데 없었다. 부모님들 잘 쓰시라고 만들려던 결혼안내장이었는데, 이대로는 쓰지도 못 할 저퀄리티 폐지 신세가 되기 십상이었다.


둘째, 비용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비용이 훨씬 많이 필요했던 것이다. 일반적인 사이즈의 사진을 단순 인화하는 것이 아니라 앞뒤로 양면의 인쇄를 해야해서 그런지 몰라도, 우리가 짐작했던 비용을 훨씬 넘는 것이었다. 이 때서야 비로소 알았다. 셀프로 한다는 게 참 비싼 일이라는 걸.


퀄리티도 우리가 기대했던 수준을 내기가 힘든데, 비용까지 예상 범위를 벗어나자 우리는 기성업체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청첩장을 만들어주는 업체들 말이다.


“역시 업체에서 만들자!”


청첩장 좀 받아봤다 하는 사람들은 바른손카드니 보자기카드니 하는 곳들을 분명 들어봤을 거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청첩장 제작 업체로 성업중인 곳들이다.


우리는 몇 개 업체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수없이 늘어선 디자인들을 보며 왜 다들 업체에서 청첩장을 만드는지 지체 없이 이해할 수 있었다. 혼자 꼼지락거리며 만들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제품들이 즐비해있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창의적인 디자인도 많았고, 선택 가능한 폭도 꽤나 넓었다.


어지간한 곳들은 견본품들을 무료로 보내주었다. 택배비만 내면 됐던 곳도 있고, 어디는 택배비조차 무료였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는 몇 군데서 샘플을 받아보았고, 실물을 접한 순간 셀프 결혼안내장에 대한 생각을 확실히 접었다.


역시 돈 주고 하는 게 최고였다.

한 업체에서 견본품과 함께 보내준 네잎클로버. 돈으로 감동도 사는 세상이다.



청첩장 제작 업체에서 결혼안내장을 만들면서 가장 주의했던 부분은 ‘초대’의 의미가 담겨있지는 않은가 하는 점이었다. 거의 모든 경우에 청첩장은 하객에게 주는 초대장이기 때문에 초대를 전제하고 디자인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날 비워둬’라는 뜻의 ‘save the date', ‘와주셔서 감사해요’라는 뜻의 ‘thanks to comming' 등이 그랬고, 일부는 '초대'라는 의미의 'invite'가 직접적으로 적혀있기도 했다. 결혼안내장이 자칫 청첩장으로 오해받으면 안 됐기 때문에 꼭 피해야하는 스타일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예식이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장소나 정확한 시간, 약도 등도 없는 디자인이어야 했다. 물론 ‘무하객 노웨딩’에 대한 내용도 담을 거고, 안내장을 전하면서 말로도 다시 얘기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깜빡하고 찾아오신다거나, 또는 강력한 의지로 찾아오시는 분들이 계실까 싶어서 아예 불상사의 여지를 남기지 않으려는 목적이었다.


일러스트나 텍스트로만 꾸며지지 않고 사진이 들어갈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중요했다. 사진엽서를 드리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와 같은 이유였다. 적지 않은 하객들은 예식 때 신랑이나 신부 얼굴 한 번 본 걸로 끝인데, 얼굴을 다시 볼 기회가 많지 않은데, 결혼식을 하지 않는 우리는 결혼안내장을 통해서라도 배우자의 얼굴을 보여드리자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부분들을 고려하니, 꽤나 많은 디자인이 제해졌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크게 줄어들었다.


두둘 : 오빠! 이거봐요! 나 찾았어요!
두팔 : 뭐요? 갑자기 뭘 찾아요?
두둘 : 우리 결혼안내장 있잖아요.
두팔 : 그거 내가 아까 봤다니까? 괜찮은 거 없던데요? 예식시간을 다 써야되던데?
두둘 : 아니지 아니지! 내가 찾아놨지! 결혼식 시간 안 써도 되고. 예쁘고.
두팔 : 헐 그러네? 아니 뭐야, 내가 찾을 땐 없었는데!
두둘 : 역시 내 남친은 내가 있어야 한다니까? 내 남친은 똑똑한 것 같지만, 사실은 굉장히 허술해. 으쓱으쓱.


하지만 다행스럽게 이런 부분들을 만족하면서도 우리 눈에 흡족할만큼 예쁜 디자인이 있었고, 사진엽서 느낌의 셀프 결혼안내장을 만들자고 생각했을 때보다는 비용이 약간 더 들긴 했지만, 크게 아까워하지 않고 진행하게 되었다.


많이 만들지는 않았다. 초대장 뿌리듯이 소비할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혼안내장은 초대를 위해 만든 것이 아니었고, 우리의 결혼을 조금 더 자연스럽게 안내하는 작은 도구에 불과했기 때문에 많은 부수를 제작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족한 것보단 남는 게 낫지 하는 마음에, 최소수량의 두 배인 200부를 준비했는데, 아직도 100부는 비닐 포장도 뜯지 않은 채 팬트리 한 구석에 처박아 두고 있다. 아오, 100부만 할걸.



청첩장 업체를 통해 결혼안내장을 만들었을 때, 부수적이었지만 정말 크게 체감되었던 장점 중 하나는 바로 모바일 결혼안내장이었다.


사진엽서로 된 셀프 결혼안내장도 생각하지 않았을 때, 그러니까 아무것도 안 만들어도 되겠다고 생각했을 때조차 모바일 청첩장 비스무리한 무언가는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혼 사실을 알릴 때, 하다못해 카톡 단톡방에서라도 얘기를 할 텐데, 단톡방마다 우리 사진을 올리고, 똑같은 얘기를 늘어놓는 건 너무 번거롭고 어색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뭔가 만들어서, 딱 뿌리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구체화시키지는 못 했다. 실물 결혼안내장을 만드는 일보다 훨씬 막연하고 감이 잘 안 잡혔었다.


그러던 것이 청첩장 업체에서 결혼안내장을 만듦으로써 단숨에 해결되었다. 청첩장 업체에서는 모바일 청첩장도 무료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바일 청첩장을 모바일 결혼안내장으로 활용할 때에도 앞서 얘기한 요소들을 계속 체크했다. 혹시나 초대로 오해받을 문구들은 없는지, 일시와 장소가 디테일하게 드러나지는 않는지, 우리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잘 보여줄 수 있는지.


덕분에 모바일 버전은 실물보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디자인이 더 적어졌지만, 어쨌든 적당한 레이아웃을 찾아 우리의 목적에 맞는 결혼안내를 진행할 수 있었다. (단, 다 만든 모바일 안내장을 보낼 때 '청첩장'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눈에 너무 거슬렸지만 그냥 수용하기로 했다.)


참, 모바일 결혼안내장은 부모님 버전과 우리 버전 두 가지를 만들었다. 거의 다 똑같은데 유일한 차이점은 계좌번호 유무. 부모님 버전에는 부모님 계좌번호를 넣었고, 우리 버전에는 계좌번호를 적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도 우리는 부모님들이 축의금을 얼마나 거두셨는지 모른다. 축의금 처리 문제가 또 고민거리라던데, 우리는 그것도 원천차단한 셈이다. 모바일 결혼안내장은 1개까지만 무료 제공이어서 부모님 버전을 추가로 만드느라 몇 만원을 더 쓰긴 했지만, 그정도 값은 하고도 남았다고 생각한다.



BEHIND : 두둘의 이야기

혹시라도 식이 없이 결혼하고자 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결혼안내장은 꼭 추천드립니다! 결혼식을 하지 않더라도 결혼안내장 같이 결혼을 알리는 무언가를 만드는 게 정말 좋더라고요. 특히나 부모님들에게 더 그랬던 것 같아요. 부모님들은 청첩장으로 주위에 알리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에 저희가 준비해드린 결혼안내장이 좋은 역할을 해주었어요.

종이로 만든 결혼안내장을 두팔이나 제가 쓰지는 않았어요. 결혼한다는 안내만 하면 되니까 저희는 모바일로 충분했거든요. 그렇지만 종이로 된 결혼안내장도 우리 결혼을 기념하는 기념품 같은 느낌이라 만든 것 자체로 괜찮았던 것 같아요. 굿즈 같았달까요.

모바일 결혼안내장으로 결혼을 알릴 때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말 성격이 급하구나’ 싶기도 했어요. 제대로 안 읽고 왜 시간이랑 장소가 없냐는 친구도 있었고, 심지어는 다짜고짜 사과부터 하는 친구도 있었거든요. 다른 결혼식이 있다며 참석이 어렵다고 말이죠. 분명히 가족끼리만 한다고 써!놨!는!데! 그런 친구들에게는 다시 한번 설명이 필요했답니다. 호호.

그래도 우리가 얘기하려고 했던 건 전부 얘기할 수 있었어요. 집 식구들만 모여서 밥 먹는 걸로 결혼식을 대신해서 초대를 못 한다는 것도 그렇고 사진으로 두팔이 얼굴을 소개한다는 것도 그렇고요. 우리만의 결혼 방식에 대해 후회하는 건 전혀 없지만, 그 중에서도 결혼안내장 만든 건 정말 잘 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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